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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시월드 대 처월드] 설날 하루 '집안일' 해주면..13만원?

김태훈 기자 입력 2013. 02. 10. 11:37 수정 2013. 02. 1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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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2시간 일할 경우 약 13만5000원·남성, 차량운전·묘소벌초 가치는 9만8000원

결혼 3년차 며느리인 박은진씨(30)는 지난해 추석 이틀에 걸쳐 19시간을 명절노동을 하는 데 썼다. 추석 전날 오전 11시에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할 일이 이어졌다. 장 보기, 나물 및 생선 다듬기, 전 부치기, 산적 꿰기, 송편 빚기 등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오후 11시까지 약 11시간 이상을 일했다. 추석인 다음날도 오전 7시부터 청소와 설거지, 자녀 돌보기 등 일상적인 가사노동을 병행하며 오후 3시 시댁을 떠날 때까지 쉴 틈 없이 일했다. 박씨가 명절 기간에 시댁에서 일한 노동가치를 환산하면 얼마가 될까.

인천의 한 공원묘지를 찾은 가족이 조상의 묘를 정돈하며 성묘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30대주부 가사노동 가치 월 314만6000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제공하는 '전업주부 연봉찾기' 서비스의 계산방식을 빌리면 설 명절 기간 중 하루 12시간 가사노동을 했을 경우 일당은 약 13만5000원 수준이다. 박씨처럼 총 19시간을 일했다면 약 21만4000원을 번 셈이 된다. 계산방식은 전년도 전체 노동자 시간당 평균임금에 노동시간을 곱하는 식이다. 이 방식은 전업주부가 노동시장에 뛰어들 경우 평균적인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을 가정해 마련된 계산방식이다. 이 방식대로 계산하면 가정 내 활동이 가장 많은 30대 주부(서울 및 6대 광역시 거주 기준)의 가사노동 가치는 월급으로 환산하면 약 314만 6000원 수준이다. 30대 전업주부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자녀를 보살피는 데 3시간 18분, 음식 준비 및 정리에 1시간 55분, 청소 및 집 관리에 1시간 13분 등으로 하루 평균 9시간 19분이 가사노동에 소요된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평균임금이 낮은 현실을 고려해 노동시장에서 매겨지는 가치로 따져보면 어떨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0대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약 226만5000원이다. 가사노동의 특성상 휴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급은 7981원이다. 명절 기간 12시간을 일한다고 봤을 때 일당은 약 9만5800원 수준이 된다. 2013년 기준 최저임금인 시간당 4860원을 적용해도 일당은 10만원이 넘는다. 휴일 노동으로 1.5배 할증된 시급을 적용하고 하루 8시간 초과 노동분에 다시 1.5배 할증을 적용하면 약 10만2000원 수준이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한 방식으로 계산된 수치와는 거리가 있다. 서울의 한 가사도우미 전문 파견업체에 문의한 결과 업체에 따라 수수료에 차이가 있지만 시간당 약 2000원에서 3000원가량이 업체 몫으로 들어가고 보통 수준의 숙련도를 지닌 가사도우미 손에 들어오는 금액은 시급 5000원 안팎이었다. 아기 돌보기인지 단순 청소 및 집 정리인지 업무내용에 따라 달라지지만 가장 숙련된 가사도우미가 업체로부터 받는 시급이 6000원을 넘는 수준이었다. 야간근무나 초과근무에 대한 할증은 별도로 붙지 않아 12시간 동안 유아를 돌봤다고 해도 가사노동자가 받는 일당은 7만원대에 그쳤다. 이 업체 관계자는 "명절일 경우 웃돈을 더 얹어주고 도우미를 부르지만 6시간을 일해도 6만원을 채우기 힘들다"고 말했다.

주부 본인이 산정한 본인의 가사노동 환산금액도 시장에서 절하되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반영해 단순 계산방식에 비해 크게 낮은 액수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2년 여성가족패널조사'에 따르면 본인이 산정한 가사노동 환산액은 2010년 기준 월평균 121만1900원이었다. 한편 응답자들은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월 평균 약 27만원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 가사노동자에게 지급한 금액은 약 46만원에 달했다. 실제로 가사노동자를 쓰는 과정에서 중개업체에 수수료로 들어가는 몫을 감안하더라도 여성 자신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가사노동에 지친 주부들로부터 원성을 듣는 남편들의 명절노동 가치도 환산해봤다. 성묘를 위해 승용차를 몰고 이동해 조상 묘소의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는 과정을 모두 노동시간에 포함시켰다. 김수현씨(43)의 본가인 경북 의성에서 선산까지는 승용차로 약 40분 거리, 김씨 일가가 성묘하면서 벌초하는 분묘는 4기다. 지난 추석에 김씨와 함께 벌초를 한 가족은 김씨를 포함해 모두 4명으로, 예초기를 사용한 벌초에 약 2시간이 소요됐다. 전업주부의 경우와 같이 시간당 평균임금을 적용하면 4시간 일한 김씨의 일당은 약 4만5000원이다. 묘 1기 당 벌초대행업체가 받는 금액 7만원에 왕복 운전시간에 대한 보수를 적용해도 약 9만8000원 수준이다. 성묘가 명절 기간 중 1회에 그치는 데 비해 가사노동은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명절노동을 화폐단위로 환산해도 여성의 노동부담이 월등하다.

"명절 가사노동 주로 여자가 한다" 62%

여성가족부의 2010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명절에 주로 일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2.3%가 '여자들이 주로 한다'고 응답했고, 32.7%는 '며느리들이 주로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가 모두 같이 한다'고 응답한 이는 4.9%에 불과했다. 명절과 제사 음식 마련 방식도 63.3%가 '가정에서 직접' 만들고 31.5%는 '일부 만들기 어려운 것은 산다'고 응답해 명절 기간 중 가사노동의 대부분이 여성에게만 집중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여성정책개발원의 김경주 연구원은 여성에 편중된 명절 가사노동에 대해 "명절이 아닌 평소에도 기혼남성이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시간은 기혼여성의 10분의 1에 불과한 실정이라 개선이 시급하다"면서 "평소의 가사노동 수요는 그대로 존재하면서 음식 장만과 정리업무 부담이 과다하게 높아지는 명절에는 가사노동이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시각을 벗어나 남녀가 동등하게 분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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