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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고승욱] 대동강

입력 2013. 02. 15. 19:14 수정 2013. 02. 1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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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대동강은 참으로 먼 곳이다. 서울에서 250㎞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도 브라질의 아마존강보다 찾아가기 어렵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평양을 방문한 사람이 많이 늘었고, 미국과 중국에서는 평양을 관광하는 상품도 출시됐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대동강은 그저 사진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대동강은 아주 익숙하게 다가온다. 노랫말에 들어있고, 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이야기에도 담겨 있다. '도깨비 대동강 건너듯 하다'처럼 속담도 적지 않다. 조강(祖江)과 서강(西江)이 한강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평양 시내를 흐르는 보통강이 대동강의 지류라는 것쯤은 안다. 냉면집은 물론이고 중국음식점도 있다. 실향민은 커녕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도 심리적으로는 무척 가깝다.

고려 고종 때 문신인 최자는 '여러 물이 모여서 돌아 흐르므로 대동강이라 한다(洌水所匯名以大同)'는 시구로 대동강의 어원을 설명했다. 대동강이라는 말은 고려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전에 만들어진 책에는 패수(浿水)라고 적혀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성덕왕 34년(735년)에 신라와 당나라가 패수를 경계로 영토를 나눴다는 기록이 있다. 실학자 정약용은 고대 중국의 지리서 수경(水經)의 주석을 달면서 "패수는 대동강이다"라고 했다.

학자들은 패수를 고대 우리 민족과 한(漢)족의 경계를 이루는 강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보고 있다. 한반도 북쪽 광활한 땅을 근거지로 삼았던 우리 민족이 따뜻하고 비옥한 한반도로 조금씩 이동하면서 패수라는 이름의 강도 점점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대동강을 패수라고 불렀고, 이후 압록강이 중국과의 국경이 된 뒤에도 그 이름을 유지하게 됐다고 한다.

모레는 '대동강 얼음도 녹는다'는 우수(雨水)다. 그런데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핵 얼음'은 좀처럼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을밀대를 바라보며 대동강에서 잡은 숭어로 끓인 탕을 맛보고 싶다는 낭만적인 생각은 좀처럼 끼어들 여지가 없다.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비롯된 한반도의 겨울은 40년 만에 가장 추웠다는 평양의 날씨보다 더 매서운 듯하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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