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다큐]발레리나 강수진 "나는 내일을 믿지 않는다"

2013. 2. 21.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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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보지않고 달려왔다. 쉴새없이 달려왔더니 어느새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5년 후, 10년 후의 거창한 계획에 목을 매며 살았던 인생도 아니었다. 기다림의 시간도 있었지만 그저 하루하루에 충실했고 시간은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아직도 머나먼 미래를 보기보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 뿐이다. 그런 그가 잠시 자신의 옛 과거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프리마돈나 강수진(46)이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출간하고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발레란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보기 위함일까, 아니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다른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까닭이었을까. 궁금증 한가득, 짧은 인터뷰 시간에 아쉬움 한가득 담고 있는 기자 앞에 누구보다 밝게 웃으며 명랑 쾌활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그가 있다.

지난달 말 방한했을 당시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발레리나 강수진, 그를 만났다.

▶오늘만 보고 달려온 나의 인생, 내 인생을 돌아본 326페이지의 이야기

=그가 책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통해 지난 45년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제보다 오늘이 중요했던 그가 무슨 마음을 먹은 것일까.

"처음엔 책을 쓸 느낌이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제 나이도 마흔여섯이고 출판사에서 제의가 왔을 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써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흔여섯의 나이, 이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나보다.

"발레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만 쓴 책이 아니에요. 부족하지만 조금이나마 제 인생에서 저에게 도움됐던 일들, 느낀 점들, 경험담들이 조언의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해보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2년 전에 에세이 발간을 제안받았고 시간이 좀 지났지만 결국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책 쓰는 일도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한국어, 터키어까지, 5개 국어가 가능한 그도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편집자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책에 담아야겠단 생각에 수정하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수줍었던 일곱살 소녀 강수진, 30여년이 지난 후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리나가 됐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달콤한 결과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아름다운 자태 뒤엔 여기저기 상처난 못생긴 발이 있다. 오늘의 삶이 중요하다고 믿는 강수진. 내일을 미루어 걱정하기보다 오늘을 열심히 살면 내일은 자연히 좋은 결말을 맞게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쓰며 배운 것도 많다. "옛날 일들은 옛날 이야기로 접는다"고도 했지만 잊었던 추억들도 다시 돌아왔다. 힘들었던 일들은 지금 웃음으로 넘기고 자신의 짝사랑 얘기, 고생했던 기억들, 아팠던 이야기들, 나만의 열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책에 담았다. 자신이 몰랐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어머니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재밌었다"고 말했다.

▶곪고 부르튼 발, 긍정으로 사는 연습벌레

=발레리나 강수진의 인생 대부분은 유명한 그의 발 사진 하나만으로도 모든 게 다 설명이 된다.

누군가 그에게 발을 보여달라고 요청하면 부끄러움 때문이라도 당연히 거절한다. 하지만 사진을 한 번쯤 보여주는 건 괜찮다는 강수진.

남편 툰치 소크멘과 재미삼아 찍은 사진이 10여년 전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유명세를 탔다. 자신의 발이 아닌데도 그의 것이 맞다며 우기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노인의 발을 자기 발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도 봤다.

울퉁불퉁한 발가락, 굵어진 마디, 상처난 발톱, 누구보다 열심히 하루를 살았던 인생을 반증하는 그의 발은 어느 누구의 발보다 아름답다. 최고의 무용수에게 주는 훈장처럼 그의 발은 영예의 상징이다.

무용수로 함께 한 남편의 혹독한 연습 덕택에 지금의 발을 얻었고 브누아 드 라 당스 상, 수석무용수의 자리를 얻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강연, 모임 등 여러 자리에서 그의 발을 노력과 근면, 희망의 상징으로 삼았다.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의 발레소녀 강수진은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저녁 9시30분. 기숙사의 다른 이들이 모두다 잠에 들어야 하는 시간,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나와 달빛을 조명삼아 혼자 연습을 했다. 그것도 2년 동안. 덜컥 유학길에 오른 사춘기 소녀의 친구는 발레뿐이었다. 불어도, 영어도 못했던 강수진이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 달밤의 발레 연습은 스스로를 이기기 위한 수단이자 오늘을 사는 방법이었다.

연습시간만 20만 시간. 그는 학업 때문에, 연습 때문에 부족한 시간을 채우고자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 본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초년병 시절 발가락 피부가 허물어지고 곪아 토슈즈에 돼지비계를 넣고 연습한 이야기는 잘 알려진 에피소드. 하루에 18시간씩 연습하고 한 시즌 200~250켤레의 토슈즈를 갈아 신었다니 발이 제대로 남아날 리 없다.

▶살찐 강수진, 탈출구는 연습, 그리고 근면과 성실함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지하방. 독일 특유의 어두운 회색하늘과 차가운 날씨, 이제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무용수가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했다.

1985년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의 마리카 베소브라소바(Marika Besobrasova) 선생님 집에서 1년간의 연수를 마친 강수진은 드디어 프로 무용수로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다. 하지만 강수진이라고 시련이 없었을까. 발레단에서의 첫 해는 유난히 추웠다.

"그해가 굉장히 추웠어요. 영하 20도였나. 나 스스로를 밀어야 나가지. 지하방에 곰팡이와 함께 살았는데 매일 아침에 출근하는 게 정말 별로였어요."

열차를 타고 가는 20분의 출근길도 달갑지 않았을터다. 강수진은 자신이 어느 정도 바닥에 와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그를 지하에서 이끌어낸 건 마리카 선생님이었다.

"땅 아래서 살 때요. 끔찍하죠. 지하방에서 살면 병들어요. 옷가지에서 냄새도 나고 정신적으로도 어두워져요. 햇빛이 들어도 지하에서 사는데 얼마나 들어오겠어요. 곰팡이랑 같이 사는 게 그 때 당시엔 별로 힘든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제 친구와 마리카 선생님이 제가 사는 걸 보고 싶어 찾아와 저를 보곤 거기서 끌어내셨어요."

독하게 연습만 할 것 같고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노력으로만 무장돼 있을 것 같던 강수진도 일탈과 어려움의 시기가 있었다. 폭식을 거듭한 살찐 강수진이라니, 상상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힘들어질땐 다 똑같아요. 분야가 달라도 마음은 비슷할 거예요. 의욕이 없어지죠."

선생님의 이끌림에 지하방을 떠나 발레단의 프랑스인 선배와 함께 지냈다. 매일 미친듯 연습에 몰입했다. 1994년 솔리스트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주역을 맡을때까지 8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최고의 자리인 수석무용수가 될 때까지 무려 11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어두움의 시대는 한 번만 오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고 시험을 잘 봤어도 자신이 익숙해질때까진 힘들어요. 전 항상 1~2년 걸리더라고요. 모나코 갔을때도 1~2년 헤맸어요."

지금의 목소리는 당시의 어두움이 전혀 없다. 헤맸던 그 시간들이 그를 최고의 무용수로 성장하게 만든 비결인 듯 보였다.

그랬다. 강수진은 그의 책에서 외국어에 능통하게 된 비결이 '절박함'과 '치열함'이라고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두움 따위는 사치였다.

=강수진은 어린시절 자신을 '수줍었던 아이'라고 고백했다. 휘경동 시장통에서 어머니 치맛자락을 놓쳐 큰 소리로 울지도 못했던 꼬마아이. 18세의 강수진도 다르지 않았다. 첫사랑을 찾아 먼 길 달려왔지만 눈앞에서 고백도 하지 못했다.

46세의 강수진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웠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낼만큼 당당하다. 발레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스스로 극복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지금 다른 모습으로 서있다.

시작은 발레가 아니었다. 성격을 바꾸길 원했거나 뭘 바라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어려서 피아노를 했다가 재미를 붙이지 못했고 선화학교에 들어간 것도 한국 고전무용으로 들어갔지 발레는 아니었다.

"큰 꿈은 없었어요. 그 때도 지금처럼 엄마가 해준 밥하고 김치 먹었을 때가 제일 좋았죠. 그냥 과정이잖아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거쳐가는 것. 무용전공으로 중학교에 들어갔고, 공부했고, 그게 전부였어요. 위대한 무용가가 돼야겠다, 그런 건 없었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창한 비전, 꿈은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를 사는데 충실했다. 12살,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던 발레도 실은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전공을 바꾼 것이었다.

"어머니는 공부를 강요하는 분은 아니었어요. 꼭 뭐가 돼야한다 이러셨으면 다 반대방향으로 갔을 걸요. 전 지금도 하기 싫은 건 '싫어, 그럴 필요없어' 이렇게 얘기해요."

선화에서 발레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캐서린 베스트 선생님, 선화에서 모나코로 자신을 이끌어준 '독재자' 마리카 선생님, 그들은 강수진의 발레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어머니만큼 중요한 존재다.

1982년, 한국을 방문한 마리카 선생님을 따라 모나코로 발레 유학을 떠났다. "힘든 걸 알면 당연히 못가죠, 모르고 갔으니 부딪친거죠"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웃음만이 남는다. 1985년 로잔콩쿨 우승. 뉴욕, 런던, 파리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지만 마리카 선생님은 강수진에게 자신과 함께 좀 더 공부할 것을 권했다.

"선생님이 같이 살며 모나코에서 공부하자고 했어요. 매일 선생님 차를 타고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 졸업하고도 1년간 선생님 댁에서 했던 건 발레 공부보다 인생 공부였던 것 같아요."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최연소 입단. 1997년 수석무용수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에 강수진은 최고의 자리를 누구보다 오래 지키고 있다. 그냥 착실했던 인생이 정답인가. 유난히 그의 이 말이 귀에 들어온다.

"다들 믿지 않는데 다른 사람처럼 뭘 바라고 온 게 아니예요. 뭘 이루고자 해서 온 게 아니죠. 사람들이 절 인정해줘서 이 자리에 온 거라고 생각해요. 하프솔로 됐을 때, 솔리스트 됐을 때, 프리마 발레리나(수석무용수) 됐을 때 그냥 그저 좋았어요. 그런데 그건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만들어주는 거잖아요. 감사드리죠. 아직까지도 갈 길이 멀어요."

=얼마 전 책을 출간한 강수진이 한국에 와서 한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기업 임원들에게는 자신을 경영하는 법을, 발레리나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에겐 꿈과 희망을, 직장인들에겐 그만의 삶의 방식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이런 강연들도 그에겐 새로운 경험이다. 무용에 빠진 소녀가 이제 느즈막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재미를 알게된 걸까.

"강연이란 거 진짜 힘들더라고요. 2년 전에 올라섰을때는 무용했을 때보다 더 떨렸어요. 그냥 보통 말로 표현해서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건 문제가 아닌데 무대에 올라와 얘기하는 건 다른 거잖아요. 경험을 많이하게 되니까 저로선 참 좋아요."

새로운 경험이다. 연단에 서기 전 긴장감과 떨림도 있다. 말로 자신을 드러내니 무용과도 비슷한 듯 하다. 그래도 처음에 했던 강연과 비교하면 많이 발전했다며 뿌듯해한다.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떨림은 항상 있죠. 그런데 강연은 태어나서 처음이잖아요. 혼자서 사람들 앞에서 떠들고 하니까 혀가 다 떨리더라고요. 무용과는 완전히 다른 도전이었어요. 스스로 '수진아, 너 참 좋은 경험 한 번 했다' 이렇게 말했죠."

그러면서 또 연습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걸 잊지 않는다. 그걸 보니 연습벌레가 맞긴 맞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조금 익숙해질만 하니 이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이 있다.

나이 때문인지 사람들은 자꾸 그에게 은퇴 이야기를 묻는다. 그 때마다 강수진은 "언젠가는"이라고 운을 뗀다. 내일을 깊이 고민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게 그가 지금껏 해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을 충실히 사는 순간 다른 모습의 강수진이 내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해요. 저도 언젠가는 활동을 그만둘 날이 오겠죠. 제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때 여러가지 제안이 오지 않을까요. 그 때 최선을 다 해 할 수 있다고 100% 믿었을 때 해보고 싶어요."

스스로도 어떤 모습이 될 지는 아직 모른다. 안무를 하게 될 지, 선생님을 하게 될 지, 코치를 하게 될 지,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 뒀다. 강연도 그 중에 하나다. 지금 많이 배우고 하다 보면 그 때 가서 열심히 살 수 있는 여러 선택지가 나올 거라 믿는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런 덕담을 건넸다.

"오늘에 충실하고 오늘을 열심히 사세요. 후회 없이 열심히 살라고요. 내일을 위해 좋으니까."

이 한 줄이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인듯 했다. '오늘'만이 강수진이 믿는 유일한 것, 그래서 책 제목도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이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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