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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한테 성폭행..노예 삶 산 지적장애 국화씨의 '7년의 지옥'

입력 2013. 03. 13. 20:20 수정 2013. 03. 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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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쏙] 여국화씨의 눈물

13일 강원도 원주의 초등학교 6학년생 3명이 20대 지적장애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올해 1월 인천의 무료급식소 운영자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드러난 10대 자매도, 8일 충남 서천에서 마을 주민 2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50대 여성도 지적장애인이었다. 지적장애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력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이 집계한 장애인 대상 성폭력은 2007년 199건에서 2012년 656건으로 5년 동안 3배 이상으로 늘었는데, 피해자의 70% 이상이 지적장애인이다.

오빠와 양육시설서 자란 여씨성인 돼선 갈 곳 없어 떠돌다맡겨진 농가서 노예 같은 생활

지난해 충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수양딸을 5년 넘게 성폭행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사건을 통해 지적장애 여성이 성범죄의 위험에 노출되는 과정과 끔찍한 범죄가 은폐되는 사회구조, 정부의 지적장애인 보호제도의 문제점 등을 살펴봤다.

■ 7년의 지옥

여국화(가명·28)씨는 1985년 세 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지적장애가 있었다. 어머니는 가출했고 아버지는 여씨가 6살 때 세상을 떠났다. 역시 지적장애가 있는 오빠와 함께 여씨는 충북 청주의 한 양육시설에서 자랐다. 2005년 7월 여씨는 성인이 됐다는 이유로 양육시설을 떠나야 했다.

결혼한 언니(37)는 여씨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양육시설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 집을 전전하다 여씨는 그해 가을 아는 언니의 소개로 아무 연고도 없던 충남의 한 농가에 맡겨졌다. '7년의 지옥'이 시작됐다.

여씨가 '아빠'와 '엄마'라고 부르게 된 임아무개(49)씨와 조아무개(64)씨는 여씨에게 일만 시켰다. 새벽 5시에 일어나 1만평이나 되는 논밭을 뛰어다니며 일을 거들었다. 짚을 나르고 오이를 기르고 집안 청소를 했다.

2007년 봄 여씨는 스물두살이 됐다. 아빠가 여씨를 집 앞 저수지 낚시터로 불러냈다. 아빠는 여씨를 배에 태워 물 위에 뜬 좌대로 데려갔다. 그는 "한번만 안아보자"는 아빠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아빠는 짐승으로 변했다. 저수지 한가운데, 도망칠 곳도 도와줄 이도 없었다. 그날부터 아빠는 수시로 못된 짓을 했다. 여씨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 건지도 모른 채 울기만 했다. 어느 날 여씨의 배가 불러왔다. 아빠는 "엄마한테는 '낚시터 손님한테 당했다'고 말해라"고 했다. 엄마는 여씨를 산부인과로 데려갔다. 임신 4개월째였다.

"병원 갔어요. 검사받고 약 먹고 누워 있었는데 배가 아팠어요. 아기집에서 아기 죽었어요. 화장실에서 이렇게 동그란 게 나와 가지고." 7살 수준의 지적 능력을 지닌 여씨는 기억을 떠올리며 입술을 떨었다.

스물둘에 시작된 '아빠'의 성폭력집 찾아온 경찰관에 발각면사무소선 깜깜·주민들은 쉬쉬

■ 방치와 탈출

여씨가 살던 마을의 면사무소 복지 담당 직원은 여씨의 집에 거의 가보지 않았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우리 면에서 관리해야 하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만 270명인데, 하루에 한 명씩 방문해도 1년에 한 번씩 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적장애인은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와 함께 관리된다. 2005년 10월부터 7년 동안 매달 50여만원씩 여씨에게 지급된 장애인수당을 임씨 부부가 가로채 생활비로 썼지만 면사무소는 이런 사정을 알지 못했다.

충남 ㄷ파출소 임종완(49) 경사는 충남지방경찰청으로부터 관할 지역의 장애인들을 살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비가 내리던 지난해 8월 중순 어느 날 오후, 외진 산자락에 자리한 임씨의 집을 찾았다. 여씨가 아빠 임씨와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오이를 따고 있었다. 여씨는 말 한마디 없이 아빠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옷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 조씨가 집에서 나왔다. 손톱을 짙은 색 매니큐어로 치장했다. 반면 허름한 옷차림의 여씨는 손이 나무껍질처럼 거칠었다.

다음날부터 이웃들을 탐문하기 시작한 임 경사에게 한 노인이 털어놓았다. "아이고, 내가 이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처녀를 데려와서 시집도 안 보내고 맨날 일만 시켜. 임씨가 이상한 짓도 하는 것 같고." 임 경사는 곧장 임씨 집에 들이닥쳤다.

임씨를 격리시킨 뒤 임 경사와 면사무소 직원이 여씨와 대화를 시작했다. 여씨는 고개를 숙인 채 울기만 했다. 임 경사가 여씨의 옷장을 열었다. 임신부용 복대가 보였다. 여씨는 그제야 지난 7년간의 고통을 입 밖으로 더듬더듬 꺼냈다.

임씨가 구속된 뒤 마을 사람들은 임씨의 범죄에 혀를 차면서도 그를 감싸려 했다. 마을의 한 할머니(79)가 조심스레 말했다. "젊은 사람이 너무 안됐시유. 자식이 없으니께 자식 좀 만들어 보려고 했나? 좀 봐주면 좋겄는디…."

십수년 전 외지에서 건너온 임씨는 자신의 농기계로 주민들의 농사일을 제법 도왔다. 젊은 사람이 드문 마을에서 40대인 임씨는 귀한 일꾼이었다. 이 마을 이장 이아무개(60)씨는 임씨를 위해 주민 20여명으로부터 탄원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성폭력 당해도 뭔지 몰라신고 자체 어려워…대책 시급국가서 기본적 성교육 나서야

■ 합의 요구하는 '아빠'

시급한 대책은 여씨처럼 수년째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장애 여성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지적장애인들은 대체로 성폭력을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신고 자체가 어렵다"며 "지적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성교육을 국가가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2010년 진행한 '성폭력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조사에 응한 성폭력 피해 장애인 중 37%가 '그냥 당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이유는 '그 사람의 행동이 성폭력인지 몰라서'가 25%, '어떤 행동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가 22.2%였다.

사법부도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장애인이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일쑤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형사1부(재판장 이동욱)는 1월16일 임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폭행·협박을 동원한 장애인 성폭행으로 보아 징역 10년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그보다 처벌 수위가 낮은 '위계에 의한 간음'으로 본 것이다.

여씨는 사건이 알려진 뒤 한 복지시설에 입소했다. 여씨가 원할 때까지 평생 머무를 수 있다. '아빠' 임씨는 여씨에 대한 피해 보상으로 1000만원을 법원에 맡기고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지적장애 인구는 16만7000여명이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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