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윤나와 함께 떠나는 도서관 여행

입력 2013. 3. 18. 09:48 수정 2013. 3. 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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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하나씩은 도서관이 있다. 작은 어린이 도서관이든 제법 큰 시립도서관이든 저마다 다른 콘셉트와 멋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그러나 아직은 도서관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최고의 독서 교육은 그저 아이 곁에 책을 놓아두는 거라고 하지 않던가. 도서관에서 엄마와 함께 읽고 자고 노는 시간. 아이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여행이다.

아직 한파가 가시지 않은 평일 오후의 광화문. 비즈니스맨들이 바쁘게 오가는 빌딩 숲에 작은 쉼터가 하나 생겼다. 구시청을 개조한 서울도서관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자 역사의 더께가 앉은 고풍스러운 멋에 절로 마음이 고요해진다. 서가에서 마음이 끌리는 책을 아무거나 꺼내 책 마루에 걸터앉아 보내는 시간. 바쁜 일상은 일시 정지되고 여유와 한가로움이 찾아온다.

◆ 마음껏 쉬고 놀 수 있는 최적의 공간

이곳에서 만난 이윤나 작가는 "도서관은 공기처럼 책이 아이를 감싸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많은 부모가 갖고 있는 도서관에 대한 인식은 아직 옛날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출간한 < 엄마표 도서관 여행 > 을 보면, 서울시내 17개 도서관을 둘러본 그녀는 많은 도서관의 새로운 모습에 감탄하고 반성한다.

"도서관은 조용히 앉아서 책만 읽는 곳, 공부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제 생각이 무척 고루했다는 걸 서울시내 곳곳의 도서관에 다니면서 확인할 수 있었죠. 제가 본 도서관은 아이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이었어요."

잘나가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이기도 한 이윤나 씨는 '서울 도서관 탐방'에 대한 기획을 하다가 도서관에 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사람이 '도서관은 지루하다'며 만류했지만, 서울시내 도서관을 돌아보면서 오히려 아이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소중한 장소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요즘 도시 아이들이 나중에 크면 어린 시절에 대해 어떤 추억을 갖게 될까요? 학교와 학원만 오가던 회색빛 거리, 문제집과 스마트폰 게임만으로도 빠듯했던 일상이 전부 아닐까요? 어린 시절에는 직·간접적인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하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가능할 리가 없죠. 여행을 떠나기에는 시간이나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한숨 쉬는 엄마가 많은데, 해법은 도서관에 있었어요."

일상에서 그냥 보고 지나치던 도서관을 '여행의 목적지로 삼아보자'는 것이 이윤나 씨가 제안하는 '엄마표 도서관 여행'이다.

"집을 조금만 벗어나도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각을 길러줄 수 있거든요. 서울시내 도서관에 다니다 보면 같은 서울이라도 굉장히 다양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어요. 광진정보도서관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열람실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숲속작은도서관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노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시립어린이도서관 곁의 사직공원, 이진아기념도서관 옆의 독립공원에서는 산책과 역사 공부를 함께 할 수도 있고요. 도서관 여행은 테마가 무궁무진하답니다."

지난여름에 방문한 동작어린이도서관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놀이터 시설이 잘 되어 있어 그곳에서 신나게 뛰놀다가 땀을 식히기 위해 도서관으로 들어와 책을 읽기도 하고,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한다. 몸도 마음도 자라는 시간이다.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만난 어떤 아이는 매일 학원에 안 가고 도서관에 온대요. 신기해서 왜 매일 오느냐고 물어봤더니, 책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영화도 볼 수 있어서래요. 이유를 듣고 보니 도서관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이렇게 어려서부터 도서관과 친하게 지낸 아이들은 분명 그 안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들에게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키지 않으니 발걸음이 향할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어린아이를 데리고 조용한 도서관에 갔다가 행여 난감한 상황이라도 벌어질까 봐 부담스럽기도 하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갈 수 있는 공간이 생각보다 별로 없어요. 그래서 많은 엄마가 백화점에 가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더라고요. 문화센터도 있고 쇼핑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거죠. 그런데 요즘 도서관에는 '아기방', '가족열람실' 등 영·유아부터 초등학생 자녀까지 연령대별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어요. 무료로 책은 물론 영화도 보여주고,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해주죠.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이나 카페테리아를 마련해놓은 도서관도 많아지고 있고요."

요즘 도서관은 조용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책 안의 정보를 입력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다르게 생각하는 훈련도 할 수 있다.

늘 창의적인 카피를 생각해야 하는 직업이라 이윤나 씨는 틈날 때마다 도서관에 들른다. 특정한 책을 보기 위해 들르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그저 천천히 서가 사이를 거닐면서 책 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도서관은 그 자체로 '아이디어의 보고'인 것 같아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답답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책 제목만 봐도 막혔던 게 뚫리는 기분이 들어요. 외국에는 '도서관 천사'라는 말이 있는데,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 고민을 해결해줄 책을 눈앞에 가져다주는 천사예요. 저는 도서관 천사를 꽤 여러 번 만난 것 같아요."

이윤나 씨는 아이는 물론 엄마에게도 도서관 천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육아와 가사로 지친 엄마들에게 아이와 함께하는 도서관 나들이는 휴식과 힐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는 엄마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라는 거예요. 아이들은 도서관을 편안해 하는데, 엄마들이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냥 쉬러 왔다, 혹은 놀러왔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즐겨보세요. 평소와 다르게 립스틱도 발라보고 편하지만 예쁜 옷도 챙겨 입고요. 아이가 책에 집중하는 동안 엄마도 그림책 하나를 꺼내 넘겨보세요. 그 고운 색감과 언어에 어지러웠던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끼실 거예요."

백화점이 금전적인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면 도서관은 정신적인 허영을 부릴 수 있는 공간이다. 반드시 아이 교육 때문에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시간을 꾸며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간다면 도서관 나들이가 사뭇 즐거운 외출로 변한다.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도서관에 갈 필요가 있는 사람은 바로 '엄마'가 아닐까요? 엄마에게는 평화와 사색의 시간이 절실하거든요. 자신에게 다가온 변화와 현실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그러면서도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해요. 모든 엄마는 수없이 많은 질문과 고민에 계속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 고비를 넘을 수 있는 지식과 지혜가 도서관에 다 있거든요."

도서관 여행은 단순히 아이에게 책을 읽히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는 뜻이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고, 고요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지혜를 쌓아나가는 시간. 엄마표 도서관 여행이 새로운 나들이 트렌드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며 그녀는 도서관 문을 나섰다.

◇ 이윤나 작가의 추천 도서관

1. 서울도서관

구서울시청을 리모델링한 서울도서관은 다른 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있는 공간이 아주 많다. 무려 8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건물인 만큼 아이에게 보여줄 것도 이야기해줄 것도 많다. 그래서 서울도서관을 탐방할 때는 5층에서 1층으로 거꾸로 살펴 내려오기를 권한다. 5층에서 구청사의 흔적을 전시해놓은 갤러리를 구경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도 하고, 4층의 세계자료실에서는 외국의 다양한 자료를 접하며 큰 꿈을 가져볼 수도 있다. 3층은 서울과 관련된 기록이 한데 모여 있어 역사 공부도 된다. 이제 거대한 책 세상에 풍덩 빠져들 시간. 1, 2층을 통째로 쓰고 있는 도서 열람실에서는 잠시 다리를 쉬며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 수도 있다. 문의 02-2133-0302, lib.seoul.go.kr

2. 송파어린이도서관

동화 속 세상처럼 알록달록하게 꾸민 예쁜 공간이 인상적인 도서관이다.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넘쳐흐르고 모험이 계속되고 꿈이 자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화려하고 섬세한 인테리어는 기본,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은 아이의 상상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발달시킨다. 1층은 학령기 이전 유아들과 아기들을 위한 공간, 2층은 초등학생을 위한 열람실과 동아리방으로 나뉘어 있어 연령에 맞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3층 물동그라미극장에서는 수시로 공연과 영화 상영이 이루어져 문화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문의 02-418-0303, www.spclib.or.kr

3. 광진정보도서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환상적인 곳이다. 도서관은 책으로 둘러싸인 답답한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줄 것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푸른 강물을 옆에 끼고 책을 읽는 기분은 그 어떤 여흥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1층에는 세미나실과 이야기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임 공간이 있고, 2층에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할 수 있는 아기 열람실과 가족 열람실이 있다. 노천카페와 영화음악 감상실 등 휴게 공간도 잘 구비되어 있어 심신을 쉬게 하는 데 최적의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의 02-3437-5092, www.gwangjinlib.or.kr

4. 은평구립도서관

이 도서관 앞에 서는 순간 아이는 마치 거대한 성안으로 모험을 떠나는 기사가 된 것처럼 심장이 두근두근할지도 모른다.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의 엄격한 직선으로 그린 콘크리트 건물이 마치 갑옷을 두른 듯 웅장하기 때문이다. 불광동 산기슭에 오밀조밀 들어선 주택가 사이를 한참 올라가야 하지만 이 또한 멋진 성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거뜬할 것이다. 도서관 앞에 우뚝 선 5개의 기둥은 마을 앞에 세워두던 '솟대'와 같은 의미라고 한다.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어린이 열람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갑갑해지면 '응석대'라는 이름의 테라스에서 바람을 쐬는 것도 좋다. 문의 02-385-1671, www.eplib.or.kr

◇ 도서관 여행의 책읽기 원칙

도서관 여행은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마음 편하고 즐거운 외출이어야 한다. 아이에게 독서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요하지 말자. 이윤나 씨가 제안하는 책읽기에 관한 10가지 권리를 지킨다면 엄마보다 아이가 먼저 도서관 여행을 반기게 될 것이다.

하나, 책을 읽지 않을 권리_ 도서관에서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리자. 표지만 구경해도 좋고, 문화 공간에 전시된 그림을 바라보거나 휴게 공간에서 잠시 쉬는 것도 좋다. 공부하러 간 게 아니라 놀러간 거니까.

둘, 건너뛰며 읽을 권리_ 책을 몇 권 이상 읽고 가야 한다는 편견도 버리자. 읽기 싫은 부분은 건너뛰어도 괜찮다고 아이에게 말해주자. 책읽기에 대한 강박관념을 없애는 것도 훌륭한 독서 교육이다.

셋, 끝까지 읽을 권리_ 마찬가지로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 읽다가 재미가 없으면 그 곁의 다른 책을 얼른 집어 들자. 널린 게 책인데 뭐 어떠랴.

넷, 다시 읽을 권리_ 아이들은 뭐 하나에 꽂히면 무섭게 파고드는 특성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읽는다. 엄마 마음이야 집에 없는 새로운 책을 읽었으면 좋겠지만, 아이가 다시 읽고 싶은 책은 그대로 두는 편이 좋다.

다섯,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_ 좋은 책 나쁜 책이 따로 없다. 책을 구분하는 엄마의 편견을 아이에게 똑같이 적용하려 한다면 아이는 책을 고를 때마다 엄마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여섯, 마음대로 상상하며 빠져들 권리_ 책을 읽다가 책장이 안 넘어간다 싶으면 애가 산만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잔소리를 하기 일쑤다. 적어도 도서관에서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도와주자.

일곱,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_ 도서관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색다르게 꾸며놓았다. 장소에 따라 바닥에 엎드려 읽어도 되고 누워서 읽어도 상관없다. 책 읽는 환경이 더욱 아늑해질 수 있도록 작은 무릎담요라도 챙겨가면 어떨까.

여덟,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_ 여러 권의 책을 쌓아두고 이 책 저 책 펼쳐가며 부산스럽게 책을 읽는 아이. 엄마 눈에는 이상해 보이지만 아이는 나름대로 독서를 즐기고 있는 중이니 존중해야 한다.

아홉, 소리 내서 읽을 권리_ 도서관에 따라 사정이 다르지만, 룰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은 적극적인 독서의 한 방법이다. 굳이 시끄럽다고 말리지는 말자.

열,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_ 책을 읽고 나면 꼭 느낌이 어땠는지 물어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자. 감상을 얘기해야 한다는 부담이 오히려 제대로 된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

취재:홍유진(프리랜서) | 사진:최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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