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오마이뉴스

원세훈 원장님 말씀은 과연 '비밀'일까?

입력 2013. 03. 20. 18:26 수정 2013. 03. 20. 18:26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取중眞담]은 < 오마이뉴스 >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 편집자말 >

지난 18일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원세훈 지시사항' 문건

ⓒ < 뉴스타파 > 영상 캡쳐

국가정보원(원장 오세훈)의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하 '원세훈 지시사항') 문건이 공개된 직후 민주통합당 소속 한 의원은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도 그 문건이 왔지. 그런데 이게 원본이 아니어서 폭로할 수가 없더라고."

그런데 국정원은 바로 문건이 '사실'임을 인정해버렸다. "비밀인 정보기관 수장의 발언내용이 외부에 유출돼 깊은 유감이다"라고 밝히면서 말이다. 고도의 훈련을 바탕으로 정보수집 업무를 맡고 있는 국가정보기관이 이렇게 신속하게 '사실'이라고 인정한 걸 보면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분은 영 개운치 않다.

국정원장의 발언을 왜 전직원이 보는 인트라망에 올렸을까?

국정원은 '원세훈 지시사항' 문건이 공개된 직후 제보자 색출작업에 들어갔다. 국정원 대변인도 "(원세훈 지시사항 문건의) 유출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내부감찰을 진행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기자와 만난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밖으로 유출되지 않아야 할 것이 유출됐다"며 "이것은 심각한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인트라망에 올려진 자료는 원천적으로 출력이 불가능하다. 당연히 '원본'이 유출될 수는 없다. 결국 내부직원이 '원세훈 지시사항'을 옮겨적은 뒤 이것을 외부로 유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도 '내부자 제보'에 무게를 두고 내부감찰을 벌이고 있다.

'보안'이 생명인 정보기관에서 내부의 얘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주 치명적이다. 그것도 국정원장의 내부발언이 공개됐으니 국정원으로서는 '멘붕'에 빠질 만하다. 그런데 국정원장이 각 부서장과 지역지부장이 참석하는 '확대부서장회의'에서 한 발언을 전 직원들이 볼 수 있는 인트라망에 올려놓은 것 자체가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원세훈 지시사항'은 총 25건이다. '확대부서장 회의'가 평균 한 달에 한 번 열렸다고 하니 이는 원세훈 원장의 재임 2년치 분량이다. 원세훈 지시사항은 '원장님 지시·강조말씀'이라고 이름 붙어진 내부게시판에 올려졌다. 이 게시판은 내부 직원들이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국정원장이 각 부서장과 지역 지부장에게 직접 구두로 지시해도 충분한데 왜 이렇게 전 직원들이 볼 수 있는 게시판에 지시사항을 올린 것일까? 진선미 의원은 지난 18일 < 오마이뉴스 > 와 한 인터뷰에서 '이 의문'을 이렇게 분석했다.

"원세훈 원장을 두고 단순한 행정직이었지 정보업무를 한 적이 없다는 문제제기가 나온 적이 있다. 자기 발언을 게시판에 올린 것은 자기가 조직을 장악했다고 단언한 것 아닌가? 게다가 그 사람들은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6급 인사까지 직접 챙겼다는 원세훈 원장이 지나치게 '조직장악'을 자신했다가 이렇게 '원세훈 지시사항' 문건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작 국가정보기관에 가장 중요한 '내부보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세훈 원장이 '정권안보'에만 치중한 탓인지도 모른다.

국정원은 '원세훈 지시사항'이 '비밀'이라면서도 스스로 원장의 또다른 발언을 언론에 공개했다.

ⓒ 국정원 해명자료

"비밀"이라는 국정원장 발언을 스스로 언론에 공개

국정원의 허술함은 지난 18일 배포한 해명자료에서도 드러났다. 국정원은 "비밀인 정보기관 수장의 발언내용이 외부에 유출되고 국가안보를 위한 정당한 지시와 활동이 '정치개입'으로 왜곡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진선미 의원이 공개한 '원세훈 지시사항'이 사실이었음을 순순히 인정한 것이다. 국정원으로서는 아주 빠르게 정공법으로 대처한 셈이다. 문제는 "비밀"이라고 규정한 "정보기관 수장의 발언내용"을 자진해서 공개하는 '모순'을 드러냈다는 데 있다.

국정원은 이날 해명자료와 함께 두 개의 첨부자료를 배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치중립 관련 원장 발언내용'이었다. 여기에는 원세훈 원장이 취임한 지난 2009년 2월부터 대선직전인 지난 2012년 11월 23일까지 전 부서장회의에서 한 9건의 발언이 실려 있다.

"내년 정치일정과 관련 공무원들과 정치세력이 연계되지 않도록 해야 하나, 이에 앞서 우리 院 직원부터 더욱 조심해야 할 것임."(2011년 6월 17일 전부서장회의)

"大選이 다가왔는데 그동안 우리가 노력한 결과, 政治개입 논란에 휘말리지 않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음. 앞으로도 부서장 이하 全직원들이 선거과정에서 물의를 야기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고, 문제 발생시에는 연대책임을 물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람."(2012년 10월 19일 전부서장회의)

국정원으로서는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 이후 지금까지 정치중립 확행 및 본연의 업무수행을 강조"해왔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런 발언을 소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선미 의원이 공개한 '원세훈 지시사항'은 "비밀"이라고 규정해놓고 비밀인 원장의 또다른 발언을 이렇게 공개해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허술한 국정원을 두고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렇게 꼬집었다.

"국정원이 순진한 건지 무능한 건지 모르겠다."

Copyrights ⓒ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