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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는 무슨.. 내 꿈은 이제 편의점 알바"

정락인 기자 입력 2013. 04. 03. 13:55 수정 2013. 04. 0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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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을 실은 탈선 전차는 언제 멈출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학생이 목숨을 버려야 할까.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반복되는 학교폭력과 학생 자살, 이번에는 대구에서 고교생 최 아무개군(15)이 목숨을 끊었다.

최군은 3월11일 오후 7시40분 자신이 살던 아파트 23층에서 투신했다. 그는 동급생들에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추행 등 폭행을 당해왔다. 담임교사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최군은 자살로써 학교폭력에 항거했다.

최군의 목숨은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다. 폭행당한 사실을 안 학교에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대처했다면 죽지 않았을 수 있다. 학교폭력과 학생 자살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슬픈 현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아파트 옥상에서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가 나의 자녀,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일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벼랑 끝에 선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언제쯤 이 비극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꿈을 잃고 폭력에 멍든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그 손을 잡지 못하고 있다.

< 시사저널 > 제1160호 커버스토리로 다룬 '열네 살 학생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 ⓒ 시사저널 유장훈

교실에서 방치되며 폭행당해

지난해 1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중학교 1학년인 이경환군의 '폭행 일기'가 공개돼 충격을 줬다. 이군은 2011년 3월 서울 강서구의 ㄱ중학교에 입학했고, 그 다음 날부터 이른바 '일진'으로 불리는 같은 반 학생들의 상습적인 성추행과 폭행에 시달려야 했다. 그해 말까지 무려 10개월간이나 지속됐다.

일기 내용은 충격적이다. 물건을 빼앗기는 것은 예사이고, 성기를 만지거나 때리는 등 놀림의 대상이었다. 숨이 막히도록 가슴을 맞고 엉덩이에 시퍼런 멍이 들 때까지 차였다. 날이 갈수록 폭행 강도는 세졌다. 이군은 이 모든 과정을 자신의 일기에 날짜별로 자세히 기록했는데, 이것이 바로 '폭행 일기'다.

< 시사저널 > 은 학교폭력 희생자인 이군의 일기 원본을 입수해 이를 자세히 공개했다(제1160호 커버스토리 참조). 이군이 다니던 ㄱ중학교는 폭행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했다. 이군은 정글과도 같은 교실에서 혼자였다. 친구도, 선생님도, 학교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다.

이군은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담임선생은 폭행 사실을 알았으면 부모에게 연락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학교는 쉬쉬하며 덮으려고만 했다. 학교가 오히려 폭력을 키우고 있다. 선생님을 따랐는데 배신감이 든다"며 학교의 무관심에 분노했다. 그러면서 담임교사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원했다. 이군에게 학교는 '배움의 장소'가 아닌 '지옥'이었다.

기사가 보도되자 < 시사저널 > 편집국으로 전국에서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 이군을 통해 학교폭력을 실감했고 피해자인 이군을 돕겠다며 부모의 연락처를 묻기도 했다.

기자에게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내오는 독자도 있었다. 경찰에서는 가해 학생들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관할 강서교육청과 학교측에서도 진상 파악에 나섰다. 이군은 보호하는 차원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년 2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이군은 어떻게 변했을까. 폭력의 악몽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을까. 기자는 3월20일 오후, 이군 부모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군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기자가 '아버님, 어떻게 지내세요, 경환이 학교생활 잘 하지요?'라고 물었더니 대뜸 "아니요, 더 힘들어졌어요"라고 힘없이 대답했다. 의외였다. 그래도 폭력을 당할 때보다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군과 그 가족은 그 후에도 출구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지난해 2월 이군과 가족들은 서울 가양동을 떠나 마포구의 한 공공 임대아파트로 이사했다. 이군의 집은 1998년 외환위기 때 아버지 이씨(49)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그 충격으로 이씨는 간경화와 무혈성 괴사라는 지병을 얻었다. 여기에 목 디스크까지 심해져 거동이 불편하고, 급기야 지체 2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10월에는 쓸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과 장애보조금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어려운 처지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아버지인 이 아무개씨가 아들 방에서 책상을 살펴보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이사-전학-은둔형 외톨이 전락

없는 살림에 이사는 큰 부담이었다. 당장 입주가 가능한 공공 임대아파트는 마포구에 있었다. 그런데 보증금과 월세가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가양동에서는 보증금 2500만원에 5만원의 월세를 내며 살았는데, 마포에서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 15만원을 내야 했다. 부족한 보증금을 채우기 위해 3000만원은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수입은 없는데 지출이 두 배나 늘어났고, 은행 빚도 떠안아야 했다. 이군 가족의 생활은 더욱 팍팍해졌다.

이군은 지난해 3월 마포구에 있는 한 중학교 2학년에 편입학했다. 지금은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해야 할 중3 수험생이다. 그런데 이군에게 학교폭력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기자가 지난해 1월 확인한 초등학교 6학년 때 이군의 생활통지표를 보면 성적이 상위권에 있었다. 지각이나 결석 한번 하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담임교사는 행동 특성 평가와 종합 의견을 통해 '학습 능력이 좋고, 학습 태도가 적극적이어서 전 교과 성적이 우수하다. 발표를 잘 하고 내용도 좋으며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한다'고 적었다.

이군의 장래 희망은 기자나 인권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에서다. 이씨 가족에게는 경환이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따돌림과 폭행은 이런 기대와 열망을 하루아침에 짓밟았다.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지만 정작 자신이 그 피해자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학교폭력을 당하면서 상위권을 맴돌던 학교 성적은 중위권으로 내려앉았다. 조퇴와 결석이 반복됐다.

이런 상황은 전학 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 이씨에게 경환이의 성적을 물었더니 "수학이 37점이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밑바닥을 맴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군은 학습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다. 대학 진학도 장래의 꿈도 포기했다. 기자나 인권 변호사는 과거의 꿈일 뿐이다. 얼마 전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묻자 '편의점 알바'라고 적었다고 한다. 이것이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15살 중학교 2학년의 모습이다.

난폭한 성격으로 변해

정작 심각한 것은 이군의 정신 상태였다. 그는 학교폭력을 당한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을 복용했다. 한때 심리 치료(미술·음악)를 받았으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그마저도 포기했다. 지금은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물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앓았던 정서 불안과 대인 기피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대인 공포증까지 겹쳤다.

학교에서는 교우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어쩌다가 친구들이 장난을 걸어와도 폭력 트라우마 때문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 아버지 이씨는 "전학한 후 유일하게 친구 한 명을 사귀었는데 반에서 왕따당하는 아이, 외톨이였다. 친구 집에 가지도 않고, 친구가 놀러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학교도 의무 교육이라 마지못해 다닌다. 벌써부터 고등학교에는 진학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서 보이는 증상도 예사롭지 않다. 학교에서 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다. 화장실 갈 때와 밥 먹을 때 외에는 밖에 나오지 않는다. 부모와도 대화가 단절됐다. 이군의 부모가 가끔 방문을 따고 들어가면 책상 밑에 쪼그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지난여름 30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에도 창문을 연 적이 없다고 한다.

어떤 때는 잔인하고 폭력성이 강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다. 폭행당하던 때가 떠오르면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면서 성격도 난폭해진다. 아버지 이씨는 "자신이 당한 폭력을 잊고, 대리만족이나 복수를 한다고 생각해 게임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긴다. 그렇다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군 부모는 경환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면 지리산에 있는 대안학교에라도 보낼 참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지금의 형편으로는 엄두도 못 낸다. 3월19일에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액세서리점을 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노점상이라도 해야 경환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수 있어서다.

기자는 이군의 솔직한 심경을 들어보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아버지 이씨는 "지금 상태에서 폭행당한 일을 떠올리면 충격을 받을 것이 염려된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씨는 "너무 억울하다. 우리 애는 학교폭력 피해자다. 그런데 경환이는 꿈도 희망도 잃고,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못하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하늘도 땅도 무심하다"며 울먹였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렇게 끝이 없다.

숨기기에 급급했던 학교

학교폭력을 방관한 학교와 교사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ㄱ중학교는 경환이가 학생들로부터 괴롭힘과 폭행을 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군도 상담교사를 찾아가 폭행당한 사실을 호소한 적이 있다. 담임교사는 교실에서 폭행 모습을 목격한 적도 있지만 모른 척했다. 이군의 일기에는 '(친구들이 폭행할 때) 선생님도 교실에 있었지만 별다른 조치나 관심도 없고, 혼도 안 내고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대목이 들어 있다. 나중에 폭행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ㄱ중학교는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아버지 이씨가 교장과 교사 등을 직무유기로 고소하자 학교측에서는 이군 집을 찾아가 고소 취하 조건으로 합의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학교측의 축소·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ㄱ중학교가 강서교육지원청에 이군과 담임교사의 상담 내용을 보고한 것을 보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어 있었다. 아버지 이씨는 학교측이 조직적으로 축소·은폐, 거짓말로 일관한다며 관계 기관에 진정서를 내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학교에서는 재발 방지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했다"고 지적한다. 이군의 부모가 학교측을 상대로 낸 소송을 취하하지 않자 재차 말을 바꾸는 등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폭행을 막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실을 인정했으면서도, 나중에는 폭행이 없었다고 발뺌했다"고 전했다. 결국 학교측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법적인 책임은 벗어났다. 하지만 교사의 양심과 도덕적·윤리적인 책임에서는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반성 없는 가해자들

이군을 집단으로 괴롭히고 폭행한 학생들은 일곱 명(남자 6명, 여자 1명)이다. 이군의 일기가 세상에 공개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폭행을 주도한 정 아무개군은 이군의 집에서 폭행했다는 '자필 진술서'를 썼다. 나머지 6명의 가해 학생도 사과문을 썼고, ㄱ중학교 생활지도 교사가 이군의 집을 방문해 이를 전달했다. 가해 학생들의 부모는 이군의 집에 찾아와 무릎 꿇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가해 학생들은 경찰 조사를 받고 전원 기소돼 재판에 회부됐다. 가정법원 소년부에서 열린 재판에서 가해 학생 중 4명은 무죄, 3명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군 아버지는 "유죄를 받은 애들도 가장 경미한 처벌이 내려졌다"며 씁쓸해했다.

가해 학생 중 정 아무개군은 이군 아버지를 '무고죄'로 고소했지만 기각됐다. 이군 아버지도 가해 학생인 정군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검찰이 기소해 재판에서 선고 유예가 내려졌으나 항고한 상태다. 정군의 어머니 지 아무개씨는 지난해 3월29일 기자에게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제목의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여기에서 그는 '이○○씨(이군 아버지)가 얼마나 거짓말을 잘 하는지, 이○○(피해 학생)가 얼마나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하는지 증거 자료를 보여주겠다'며 같은 반 아이들이 쓴 자술서와 보건교사의 의견서 일부를 첨부했다.

정락인 기자 / freedom@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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