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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쫓기는 달탐사..러시아에 또 손벌리나

박근태 기자 입력 2013. 04. 04. 17:11 수정 2013. 04. 0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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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첫 우주로켓이 될 한국형발사체(KSLV-2) 사업에 나로호 개발에 참여했던 러시아를 다시 참여시키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정부가 기술개발 등 과학적 논의 없이 개발 일정을 앞당기면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 외국과의 협력이 사실상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나로호도 국내기술로 개발을 추진하다가 정부가 사업 일정을 앞당기면서 핵심기술인 1단 액체로켓을 러시아에서 통째로 들여와 기술 확보에 실패했다는 논란을 불렀다. 이 때문에 과학계에서는 달 탐사도 기술 확보라는 목표와는 거리가 먼 '이벤트'에 그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4일 복수의 우주개발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2020년까지 달에 탐사선을 보내는 국책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러시아를 KSLV-2 사업에 참여시키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박태학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장은 "2020년으로 예정된 달 탐사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KSLV-2 개발을 조기에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러시아를 포함한 기타 국가와의 다양한 협력에 대해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열린 한국과 러시아 정부간 회의에서 러시아측이 KSLV-2 액체 엔진의 독자개발이 불가피한 경우 1단 엔진을 또다시 제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달 2일 국회에서 열린 심포지움에서 2021년에 개발하기로 한 300톤(t)급 3단형 한국형 발사체를 2년 앞당겨 2019년에 발사하고 2020년까지 달 궤도선 및 달 탐사선을 발사하겠다고 밝혔다.

KSLV-2 사업이 앞당겨진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 발언이 발단이 됐다. 당시 대선후보이던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6일 3차 TV 토론에서 "나로호 3차 발사가 지연되고 있지만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박차를 가할 때"라며 "2020년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인지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당초 2025년으로 계획된 무인 달 탐사선 발사를 5년 앞당겨 202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도 올해 1월 30일 나로호 발사 성공 후 "한국형 발사체 개발도 정부 의지나 재정 투입에 따라서 당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일정 단축은 항우연 내부에서도 "한국형 발사체와 달 탐사 프로젝트가 자칫 제2의 나로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게 하고 있다. 지난달 항우연에서 발사체 관련 연구원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내부 토론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지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로호의 두차례 발사 실패와 3차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발사체 운용 기술과 우주센터 건설 등 상당한 분야에서 기술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기간을 벗어나 10년 넘게 표류한 것은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의 무리한 일정 단축 지시 때문이다.

당시 북한 대포동 미사일 발사에 자극받은 청와대의 압력에 2002년 정부는 시간이 걸리는 자력 개발 대신 러시아 기술 도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도 지난해 12월 12일 북한의 은하 3호 로켓 발사 성공 직후 우주개발 일정을 단축하는 얘기가 나왔다는 점이 유사하다. 북한과 우주개발 경쟁에서 다소 밀리면서 체제경쟁에서 밀린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또 다시 서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항우연은 최근 KSLV-2의 1단 엔진으로 사용될 75톤급 액체로켓 엔진 설계도를 완성한데 이어 터보펌브, 연소기, 가스발생기 등 4가지 주요 구성품 개발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를 시험할 시험시설을 아직까지 갖추고 있지 못하다. 정부와 항우연은 2016년까지 나로우주센터 시험시설을 완공할 계획이어서 엔진 조립을 완료해도 성능시험을 국내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75톤급 액체로켓은 이르면 2015년에서야 연소시험에 들어가고 2018년쯤 실제 비행시험이 이뤄진다. 또 이 엔진을 4개 묶은 300톤급 로켓은 2020년과 2021년 시험발사가 예정돼 있었다.

학계에서는 선진국의 경우 새로운 로켓을 개발하는 데 5~7년이 걸리나, 우리처럼 설비가 없고 엔진부터 로켓 4개를 묶는 신기술(클러스터링)까지 한꺼번에 개발해 발사하려면 최소한 10년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내 대학의 한 교수는 "우주로켓을 처음 개발할 때는 시행착오가 많아 지금 일정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돈을 아무리 집중적으로 투자해도 1년 정도 단축이면 모를까 2년은 무리한 얘기"라고 말했다

핵심 엔진 기술을 보유한 러시아와 KSLV-2를 공동 개발하면서 무리한 일정에 쫓겨 또 다시 해외에서 엔진을 도입하는 편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가 달 탐사를 서두르는 가운데 우주개발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형발사체 사업을 총괄할 미래창조과학부가 40일 넘게 공전되면서 국책사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미래부에는 우주원자력정책관(국장급)이 우주개발을 담당하지만 최문기 장관 후보자의 임명이 불투명해지면서 국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다.

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현재로선 기술적으로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인력과 예산이 예정대로 확보되고 정부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우주개발 특성상 100% 국내 기술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하지만 논란이 있는 엔진 기술만큼은 국내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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