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왕" 눈물 삼킨 미소 뒤에는..인권 '피멍'

2013. 4. 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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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폭력' 사건으로 본 실태폭언.. 인격모독 .. 성희롱.. 잘못 없는데도 사과 일쑤간·쓸개 다 내놓고 살아.. 회사선 참으라고만 하니

#1. 모 항공사 여승무원으로 일하던 최미진(가명·28)씨는 얼마 전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뒀다. 기내 서비스를 할 때마다 "보조개가 예쁘다"며 치근덕거리거나 얼굴 생김새를 지적하는 승객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최씨는 "신고 있는 스타킹을 벗어달라는 요구까지 받은 동료도 있다"며 "성희롱당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회사 방침 때문에 참았다"고 승무원 당시 겪었던 불쾌한 일을 털어놨다.

#2. 충남 천안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로 근무하는 박미영(가명·30·여)씨는 최근 고객에게서 심한 욕설을 듣고도 오히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운동이 끝난 후 이뤄지는 고객서비스 평가에서 '매우 불만족'으로 평가받게 되면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이다. 박씨는 "그린까지 남은 거리를 정확히 알려주고 골프채도 바꿔 줬는데 공이 그린을 벗어나자 고객이 자신의 실력은 생각 안 하고 욕설부터 했다"며 "그보다 심한 모욕도 비일비재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나온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포스코에너지 한 임원이 항공기 내에서 승무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해 국제적 망신을 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감정노동자'인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인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비스업 성장과 함께 감정노동자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서비스업 종사자는 서비스업 성장에 따라 10여년 전에 비해 44.8% 증가했다. 사업체수는 2001년 201만5000개에서 2011년 248만7000개로, 종사자는 같은 기간 648만2000명에서 938만2000명으로 각각 늘었다. 국민 5명 중 1명이 서비스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서비스업이 성장하면서 감정노동자수가 큰 폭으로 늘었지만 이들을 대하는 고객들의 태도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다. 걸핏하면 욕설을 하기가 일쑤이고 심하면 이번 기내 난동사건에서 보듯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김태흥 감정노동연구소장은 "'손님은 왕이다'라는 한국 특유의 사고방식에 물질만능주의가 결합하면서 돈을 내는 사람은 종업원들을 아무렇게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외국인 손님과 한국인 손님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들은 "한국 손님들이 노동자를 더 함부로 다룬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계 항공사에서 일하는 승무원 박정미(가명·27·여)씨는 "불가능한 서비스를 요구했을 때 미안하다고 하면 외국 손님들은 이해하는데, 한국 손님들은 상황 설명은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고 말했다.

감정노동자들의 피해가 잇따르자 최근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민원전화를 받는 직원들의 감정노동 고통을 줄이기 위해 심리상담실을 확대 운영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민간기업에서는 '고객만족=매출증대'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감정노동자들이 악성 고객의 횡포를 그대로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감정노동이 심한 대표적 업종에서 악성 고객에 대한 제재에 나서면 감정노동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며 "기업에서는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심리치료 등을 강화하고, 감정노동이 심한 부서는 순환 근무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환·오현태·박영준 기자 kkh@segye.com

앨리 러셀 혹실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사회학)가 1983년 '감정노동(The Managed Heart)'이라는 저서를 통해 처음 언급한 개념으로,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정형화된 행위나 감정으로 고객을 대해야 하는 노동을 뜻한다. 은행원과 승무원, 전화상담원, 골프장 캐디 등 직접 고객을 응대하면서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서비스해야 하는 직업 종사자들이 감정노동자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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