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부산 어린이집 학대 사건.."보육교사는 무죄다"

김태훈 기자 2013. 4. 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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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맞을 각오로 쓰는 보육교사를 위한 변명

부산 공립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유아 학대 사건으로 며칠간 '워킹맘' '워킹파'들의 분노가 들끓었습니다. CCTV에 잡힌 보육교사의 폭행장면이 끔찍했을 뿐더러 17개월 여자 아이의 등에 선명히 남은 시퍼런 멍도 보는 이를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말도 못하는 여린 아이를 그렇게 팬 보육교사는 책임을 져 마땅합니다.

하지만 여론은 모든 보육교사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어린이집 학대사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잔인한 인신공격성 글과 비난글이 대부분입니다. 보건복지부의 보육담당 공무원들, 보육 전문가라는 분들도 "보육교사의 '인식'이 제일 큰 문제"라며 처벌과 단속만 궁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이렇게 모든 보육교사가 단체로 뭇매를 맞아야 할 일일까요? 보육교사도 우리의 딸이자 동생, 언니, 누나입니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얼마 받고 일하는지 정책 책임자나 전문가라고 명함 들고 다니시는 분들은 살펴본 적 있나요?

보육교사의 살인적인 근무환경

애 키워본 분들이면 잘 아실 겁니다. 옛날과 달리 손 많이 갑니다. 저도 아들 둘 키우고 있어서 실상을 절절히 압니다. 평일에 퇴근하면 애들이 빨리 잠 들기만을 바라게 되고, 주말 하루 두 놈과 씨름하고 나면 팔다리 허리가 얼얼합니다. 아무리 제 자식이지만 열불이 나서 속이 뒤집힐 때가 한두번 아닙니다.

하물며 남의 애를 떼로 돌보는 보육교사의 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보육교사들은 만 0세 아이의 경우 교사 한명이 3명을 돌봅니다. 이 정도면 합리적인 노동이라고 생각하실만 합니다. 그 다음부터가 문젭니다. 1세 아이는 교사 한명이 5명, 2세는 교사 한명이 7명을 책임집니다. 다음 단계는 더 황당해집니다. 3세는 교사 한명이 15명, 4세부터는 교사 한명이 20명을 돌봅니다. 규정이 이렇다는 거고 현실은 더 가혹합니다. 아이 두어명 추가하는 것을 허용해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말도 안통하고 통제도 안되는 아이를 저렇게 많이 돌보라고 하면 하시겠습니까. 만 3세, 그러니까 우리나이로 4살이죠, 그런 녀석들 15명을 보육교사 한명이 돌본다? 사람이 할 짓 아닙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극한 업무입니다.

보육교사들은 이런 일은 하루에 9시간 합니다. 쉬는 시간, 점심 시간도 보장 안됩니다. "선생님은 점심 먹을테니 여러분들도 알아서 식사하세요" "10분간 쉬는 시간이니 여러분들은 그동안 자율학습하고, 쉬한 사람은 스스로 기저귀 깔아 끼세요" 이게 됩니까? 보육교사들은 아이들 낮잠 시간에야 겨우 서둘러 점심 챙겨먹습니다. 그리고 애들 깨기 전에 매일 부모들한테 보낼 생활기록부 씁니다.

이러고 받는 월급이 20만명 보육교사 평균 140만원입니다. 가정 어린이집은 98만원부터 시작합니다. 경력 10년, 20년쯤 돼야 2백만원 받습니다. 부모들 초중고교 교사들한테 촌지 갖다 바치지 말고 보육교사한테 드려야 합니다.

취재하고 기사 쓰다보면 어린이집 CCTV 영상 자주 보게 되는데 영상 속 보육교사들 고생 참 많습니다. 율동을 하나 해도 크고 격하게 합니다. 그래야 애들이 주목하니까요. 반면에 아이들은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면서 어린이집을 전쟁터로 만듭니다. 대부분 보육교사들은 그런 아이들을 마법에 가까운 기술로 도닥여 키워주고 있습니다.

CCTV 의무화? 보육교사는 노예?

전국 4만 3천 어린이집에 의무적으로 CCTV를 달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CCTV로 보육교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녹화하면서 감시하자는 취지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부모들이 실시간으로 CCTV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육교사를 밀착 감시해서 학대의 씨앗을 없애자는 뜻일테지요.

이 법 발의한 국회의원, 이런 주장에 동조해서 인터넷 포탈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운동하고 계신 분들 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 자신들을 누가 하루 종일 감시한다면 기분이 어떨지. 국회의 의원회관 의원님들 방에 CCTV를 설치하도록 해서 모든 국민이 실시간 감시하게 하면 국회의원들 어떤 기분일까요? 이 법 발의한 의원부터 자진해서 CCTV 달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관실, 보육기반과에 CCTV 달아서 모두가 시청하면 보육 담당 공무원들 어떤 기분일까요? 보육교사는 노예가 아닙니다. 이런 잔인한 법을 도대체 누가 생각해냈습니까.

이번 부산 어린이집을 포함해 사회문제로 떠들썩하게 다뤄졌던 어린이집 학대사건들 보시면 모두 CCTV 영상 있습니다. CCTV 없어서 아동 폭력 발생한 거 아닙니다. 제발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사태를 직시합시다.

통제하고 처벌하고...보육교사를 탄압하라

보건복지부는 이번 달부터 9월까지 지자체와 합동으로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에 대해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폭력 추방, 안전사고 예방이 주 목적입니다. 또 올해부터는 각 자치단체에 15명 규모의 보육 모니터링단이 꾸려졌습니다. 부모와 보육전문가로 구성된 모니터링단은 관내 보육시설을 돌면서 시설과 교사를 감시합니다.

보육교사와 시설을 처벌하는 법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가 이뤄진 보육시설에 대해선 정부의 보육료 지원을 중단합니다. 아동학대를 한 보육교사에 대해선 10년 이상 보육시설 취업을 금지하는 법안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CCTV 의무화 법안도 국회에 발의돼 있고요.

오로지 보육교사를 통제하고 처벌하고 감시하자는 정책입니다. 어린이집은 범죄 집단이고 보육교사는 범죄집단 조직원입니까. 그들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보려는 시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이런 사건이 터지고 모든 보육교사를 범죄인 취급하면 보육교사들은 자기 직업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될 겁니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애초부터 가질 수 없는 환경이었고요. 보육교사들 열악한 근무여건에 먼저 관심을 가져보는 너른 마음 기대하면 안될까요? 보육교사들이 어린이집을 지옥같은 직장으로 여기고 있는데 어떻게 그곳에서 '사랑이 싹트는 보육'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김태훈 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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