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교사 1명이 아이 20명 돌보고 하루 12시간 근무까지

이성희·김한솔 기자 2013. 4. 2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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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근무환경 실태.. 현장의 목소리

보육교사 박민영씨(37·가명)는 올해 만 4~5세(6~7세)반을 맡은 이후 목이 잠겨 요즘엔 말하는 것도 힘들다. 그가 맡은 아이들은 모두 19명. 궁금한 게 많은 아이들과 놀아주다보면 목이 성할 날이 없다. 오전 간식부터 점심, 오후 간식을 챙겨 먹이는 것도 오롯이 그의 몫이다. 아이들이 화장실을 갈 때도, 낮잠을 잘 때도 일일이 박씨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2시간 근무는 예삿일이다. 따로 정해진 휴식시간은 없다. 아이들 점심 지도하면서 짬짬이 밥을 먹는데, 그게 점심시간이다. 박씨는 "순수하게 주어진 점심시간은 채 4분이 안되는 것 같다"며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편식지도하다 보면 앉아 있을 시간도 없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화장실도 어린이용 변기를 이용한다. 배식대 등 어린이집 시설 대부분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보육교사에 대한 배려는 없다. 박씨는 보육교사 대부분 무릎관절염이나 허리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영아들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안을 때,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무엇 하나를 건넬 때도 허리를 굽혀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한 어린이집에서 영·유아들이 보육교사들과 놀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열악한 처우 구조적 문제에아동학대 사건 '색안경'까지보육교사 94% "이직 고민"

보육교사 8년차 최영은씨(28)의 하루도 박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오후 7시30분 퇴근할 때까지 정신없이 바쁘다. 아이들이 오후에 낮잠을 자지만 이것저것 챙기다보면 1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아이 20명의 '일일대화장'에 배변·체열 상황, 식단, 활동 상황 등을 일일이 기록해야 한다. 또 아이들이 잘 자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일하지만 퇴근 이후에도 정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상담일지와 안전교육일지, 관찰일지, 적응일지 뭉치는 아예 퇴근하면서 집으로 가져간다. 최씨는 어린이집에서 자주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건 아이들을 폭행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보육교사의 몸과 마음이 지쳐 벌어지는 일인 만큼 구조적인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우리는 정말 아무런 보호막이 없다"고 한탄했다.

최근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보육교사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육교사들은 열악한 처우 속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 있다. 보육교사의 열악한 환경이 보육의 질을 떨어뜨려 결국 아이들에게까지 피해가 미칠 수도 있다.

현재 보육교사 1명당 만 1세 미만은 3명, 만 1세(3세)는 5명, 만 2세(4세)는 7명, 만 3세(5세)는 15명, 만 4~5세(6~7세)는 20명을 책임지게 돼 있다.

그러나 초과인원 지침에 따라 연령대마다 2~3명의 아이를 더 받을 수 있어 만 4~5세반은 최악의 경우 교사 1명당 23명까지 맡을 수 있다. 한 보육교사는 "엄마들도 자기 자식 1~2명 돌보는 걸 힘들어하는데, 교사 1명에게 발달 수준이 전혀 다른 10~20명의 아이들을 맡기는 것은 비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보육정책"이라며 "초과 보육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객관적인 근무환경도 열악했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보육교사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1월 발표한 '보육교사 근무현황'을 보면 월평균 임금은 111만5900원에 불과했다.

이들의 평일 하루 근무시간은 평균 9시간12분이며, 보육교사 56.6%가 주당 5~7시간 미만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77.2%는 시간외 근무수당을 받지 못했다. 또 보육교사 중 66.3%가 연차휴가가 없다고 했고 40.6%는 출산휴가도 없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육교사 중 93.7%가 이직을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연맹 소속 보육협의회에서 개소한 보육교사고충상담센터의 김호연 센터장은 "지난해 보육교사의 스트레스 실태 조사를 했을 때 위장장애와 수면장애 등의 위험수치가 높았다"며 "이제 보육현장 정상화를 위한 대안이 공론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보육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보육교사의 처우 문제를 해결하고 인권 감수성 교육도 함께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성희·김한솔 기자 mong2@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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