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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하면 내 아들이랑 결혼시켜줄게" 수술 도중 몰래 피임시술시킨 어머니

송원형 기자 입력 2013. 05. 13. 03:10 수정 2013. 05. 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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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남자 어머니와 의사는 위자료 합계 2000만원 줘야"

대구 인근 4년제 대학에 다니던 A(여·27)씨와 B씨는 2009년 11월부터 만나 이듬해 10월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이들은 약혼식을 한 다음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양쪽 집안은 상견례까지 했지만 혼수 등에 대한 의견 차이로 약혼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1년 1월 여자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남자의 어머니(54)는 "낙태를 하면 결혼을 시켜주겠다"고 말했고, 여자는 이에 동의했다. 며칠 후 여자와 남자, 남자의 어머니와 이모할머니 4명이 대구의 산부인과를 찾았다. 낙태 수술을 했고, 수술비는 남자 어머니가 냈다.

여자는 수술 다음 날 시어머니가 될 남자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어제 정신이 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 했습니다. 같이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때까지 실망 안겨 드린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남자 어머니 생각은 달랐다. 여자가 낙태 수술 후 마취 때문에 자고 있을 때, 남자 어머니는 의사에게 여자 자궁에 피임 기구인 루프(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막는 기구)를 넣어 달라고 했다. 의사는 "낙태 수술 직후에는 루프가 빠질 가능성이 있다. 한 달 후 자궁이 안정되면 넣는 것이 낫다"며 거절했지만, 남자 어머니는 "서울에 둘이 살고 있어 또 임신할 수 있으니 루프를 넣어 달라"고 사정했고, 의사는 여자 동의 없이 루프 시술을 했다.

여자는 이후 의사가 루프 시술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이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의 결혼은 결국 무산됐고, 여자는 그해 2월 루프 제거 시술을 받았다. 다섯 달 뒤 여자는 낙태죄로, 남자와 남자 어머니는 낙태방조죄로 대구지법에서 각각 벌금 30만원씩 약식명령을 받았다. 의사는 불법 낙태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2월 같은 법원에서 징역 6개월과 자격정지 1년의 형을 선고 유예하는 판결을 받았다. 여자는 약식명령을 받은 직후 "남자 어머니가 낙태하면 결혼식을 올려주겠다고 회유·강요하고, 의사와 함께 나 몰래 피임 시술까지 했다"며 남자 어머니와 의사 등을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남자 어머니는 법정에서 "기형아 위험이 있어 낙태 수술을 받게 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았고, 다른 산부인과에선 태아의 심박동이 정상이라고 판단했다"며 "남자 어머니가 거짓말로 낙태 수술을 받게 했다는 의심이 들지만, 여자 스스로 낙태를 결정하고 실행한 이상 위자료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임 시술과 관련해선 "남자 어머니와 의사는 여자에게 위자료 합계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여자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피임 시술뿐 아니라 남자 어머니가 '시어머니가 될 지위'를 이용해 결혼을 시켜주겠다고 속여 낙태 수술을 한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부(재판장 김수일)는 "남자 어머니가 낙태 수술 병원을 예약하고 수술비를 지급하는 등 낙태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점, 의사의 거절에도 피임 시술을 거듭 요청한 점, 아들의 결혼이 무산된 점 등을 볼 때 결혼을 시켜줄 의사가 없이 낙태를 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며 "남자 어머니와 의사는 합계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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