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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北개입설 광주 모독 행위"

입력 2013. 05. 18. 03:05 수정 2013. 05. 1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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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군 통역 맡았던 인요한씨

[동아일보]

일부 탈북자들이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주장을 잇달아 제기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광주 시민군과 외신 인터뷰 통역을 맡았던 인요한 연세의료원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54·사진)은 16일 채널A 프로그램인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광주시민이 북한의 지시를 받고 협조했다는 건 광주 시민을 모독하고 한 번 더 죽이는 것"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인 소장은 "오히려 (당시 광주 시민군 대표로부터) '내부에서 (간첩으로 추정되는) 수상한 사람을 잡아 맞서고 있던 군인들에게 백기를 들고 그 사람을 넘겨주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설사 1980년 남파 공작원이 광주에 침투했더라도 시민군은 철저하게 가려내려 했다는 얘기다. 그는 "(시민군은) 아침에 반공 구호를 외치고 (시위를) 시작했다"고도 했다.

실제로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은 시위 때마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불렀다. 1980년 5월 25일 시민군들이 배포한 전단에는 '후손들에게 떳떳한 민주사회를 안겨 주도록 하자', '민주인사 석방'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특히 '김일성은 순수한 광주의거를 오판 말라'는 문구도 있다. 북한이 시민군을 조종했다면 포함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전단은 정수만 전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이 보관하고 있다.

1980년 5월 25일 광주시내에 배포된 '광주 민주시민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전단. 3차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 때 배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단 끝 단락에는 '김일성은 순수한 광주의거를 오판 말라'(점선 안)고 적혀 있다. 당시 각종 전단에는 북한의 경거망동을 경고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정수만 전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장 제공

▼ 당시 시민군 '김일성, 순수한 광주의거 오판말라' 전단 뿌려 ▼

논란은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한 일부 북한 이탈 주민이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면서 비롯됐다. 북한군 특수부대 장교 출신이라는 탈북자 임천용 씨는 13일 TV조선 프로그램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5·18은 북한군 1개 대대(600명)가 침투해 광주시민을 사살하고 선동한 폭동"이라며 "광주시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라 북한 게릴라"라고 주장했다.

5·18 당시 북한군으로 광주에 남파됐다고 주장하는 탈북자 김명국(가명) 씨는 15일 채널A 프로그램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해 "광주 폭동 때 참가했던 사람들 가운데 조장, 부조장들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다" "머리 좀 긴 애들은 다 (북한) 전투원"이라는 등의 말을 했다.

○ 북한 개입설 주장한 신군부도 "사실 아니다"

5·18의 북한 개입설을 처음 제기한 것은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신군부였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자신들의 주장이 과장이었다고 털어놨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 예비역 육군 대장은 1980년 5월 21일 '소요는 고정간첩, 불순분자 깡패들에 의하여 조종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을 배포했다. 하지만 이 전 사령관은 1995년 검찰 조사에서 북한 개입설에 대해 "다소 과장된 점이 있는데 당시로서는 그런 의심이 있어 그랬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학봉 전 국군보안사령부 정보처장도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성명으로 보이고 그 당시 분석 경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진술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이 개입한 폭동'으로 왜곡했던 신군부의 주장은 그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5·18을 현장에서 샅샅이 취재하고 그 내용을 기초로 '10일간의 취재수첩'을 펴낸 김영택 전 동아일보 기자는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980년 5월 18일 오후 4시 정각, 금남로 횡단보도에 도열해 있던 얼룩무늬 공수부대 군인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 전원 체포하라'는 명령에 따라 시민들을 진압봉으로 두들겨 패기 시작하면서 5·18이 시작됐다"며 "당시 동아일보 광주지사에도 착검한 M16 소총을 들이밀고 들어와 피신해온 청년 3명과 업무를 보고 있던 직원들을 마구 구타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어 "계엄군의 만행에 시민들이 어쩔 수 없이 대응한 것을 두고 어떻게 북한 개입설을 얘기하나"라며 "그들의 증언대로라면 북한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제집처럼 대한민국에 들락거리며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인데 그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말했다. 김 전 기자는 1989년 국회에서 열린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2시간 넘게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체에 대해 증언한 바 있다.

○ 사법부도 "북한군 침투설은 사실 아냐"

대법원은 올 1월 보수논객 지만원 씨 사건에 대해 "5·18민주화운동에 관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지 씨는 "광주 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을 선동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등의 주장을 했다가 2008년 9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다만 지 씨가 5·18 피해자 개개인을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점을 들어 수구 성향의 일부 단체들은 마치 법원이 5·18은 북한군이 침투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지 씨 주장을 받아들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일부 탈북자들도 편승하고 있다.

송선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 왜곡은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 번 고통을 주고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파렴치한 행위"라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북한 개입설 같은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길진균·권오혁 기자·광주=정승호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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