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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국정원 문건은 1000만 서울시민 모독한 것"

입력 2013. 05. 21. 09:50 수정 2013. 05. 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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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치공작' 박원순 시장 인터뷰 "시 운영하며 여러 방해 느꼈다"

마을공동체·해고자 복직 등복지정책을 좌파·종북 매도민주주의 사회에선 용납안돼검찰수사 물론 국정조사 해야5·18을 '북한 공작' 거짓선동독일이었다면 처벌 받을 일

지난 15일 <한겨레> 보도로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이 공개됐다. 여기엔 정부기관과 새누리당, 민간단체, 학계, 언론 등을 총동원해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정치공작 내용이 담겨 있다. 박 시장을 '범좌파벨트의 허브'라고 비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문건이 공개되고 5일 만인 20일 오전 서울시청 청사에서 '국정원 정치공작의 대상'이 된 박 시장을 만났다.

박 시장은 이 문건을 꼼꼼히 읽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우면산 산사태 원인 재조사 △마을공동체 사업 △두꺼비 하우징(주택 개·보수 사업) △지하철 해고 노동자 복직 등 서울시의 거의 모든 정책을 종북·좌파 정책이라고 비난한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국정원 문건을 본 소감을 묻자 박 시장은 "이 문건을 국정원이 작성했다면 1000만 서울시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어투였다. "정치공작이나 사찰은 우리 헌법의 품격을 모독하는 행위다. 그리고 피와 땀, 희생과 헌신으로 마련한 민주주의의 성취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1000만 시민의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당선된 시장을 종북·좌파라고 매도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시를 운영하면서 실제로 여러 방해를 느꼈다고 했다. "(국정원 문건) 기사를 보기 전에는 느낌 같은 것만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정책에는 반대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기사를 보고 (국정원이)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실체는 수사기관이 밝혀야 할 내용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검찰이 고소나 고발이 있으면 수사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문제는 친고죄가 아니지 않나. 그런 인식은 문제라고 본다. 검찰 수사는 물론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또 현 정부도 엄중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자신을 종북·좌파로 본 이유에 대해 박 시장은 웃으며 말문을 열었지만 표정은 굳어졌다.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종북·좌파라고 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종북이나 좌파라는 말은 아주 자의적이고 왜곡된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이라고 본다. 많은 전문가나 주민, 시민단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울시 정책을 만들어 왔다. 문건은 서울시 복지정책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시의 '서울시민복지기준'이 유엔 공공행정대상을 받았다. 어떤 시민은 '이제 유엔도 종북·좌파라고 하겠다'며 실소를 보내기도 하더라. 건전한 비판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으로 (종북·좌파라) 공격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인내의 한도를 넘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의 공작'이라고 거짓선동하는 등 민주화 역사에 대한 퇴행적 평가가 이뤄지는 데 대해서도 우려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선 나치를 찬양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 처벌받는다. 또 건전한 시민의식을 기르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도 있다. 영국 같은 경우 시민의식을 교육하는 재단들이 많이 있다. 시민의식이 극단적인 집단에 휘둘리게 되면 어떤 파멸을 가져왔는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극단적 시각은 사회를 전체주의로 몰고 갈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어떤 점에서는 건전한 시민의식을 기르는 데 방심해온 게 아닌가 한다"고 진단했다.

국정원 문건 사건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철저한 진상조사와 응분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다만 과거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끝나선 안 된다. 과거를 넘어 다시는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문건 사건은 '역사의 퇴보'이므로, 진상조사는 '성찰의 계기'여야 한다고 박 시장은 힘줘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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