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국립국어원장의 고백 "띄어쓰기, 나도 자신 없다"

유석재 기자 2013. 5. 2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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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 국어 규정에 反旗

"'불어(佛語)'는 붙여 쓰는 것이 맞고, '프랑스 어'는 띄어 쓰는 것이 맞게 돼 있습니다. 똑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한 단어가 됐다가 두 단어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말은 어렵다는 인식을 가져옵니다."

전직 국립국어원장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행 띄어쓰기 규정이 국어를 망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2006~2009년 노무현·이명박 두 정부에 걸쳐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이상규(60 ·사진) 경북대 국문과 교수다. 이 교수는 오는 25일 한글학회 주최로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에서 열리는 '616돌 세종날 기념 전국 국어학 학술 대회'에서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디지털 시대 한글의 미래'를 발표한다.

이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솔직히 말해서 나도 글을 쓸 때 띄어쓰기가 자신 없다"고 털어놨다. 한자로만 된 '동해' '남해'는 붙여 쓰지만, '외래어+한자어' 구성인 '카리브 해' '에게 해'는 띄어 쓰게 돼 있다. '가슴속에 품은 희망'은 '가슴속'이지만 '총알이 가슴 속에 박혔다'는 '가슴 속'이다. '가슴속'이란 말은 '마음속'과 같은 뜻일 때만 한 단어로 붙여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돼지고기' '쇠고기'는 붙여 쓰지만, 올라 있지 않은 '멧돼지 고기' '토끼 고기'는 띄어 써야 한다. '큰돈'은 붙여 쓰고 '작은 돈'은 띄어 써야 한다. 이 교수는 "국민의 불편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합성어가 단어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조어(造語) 생산력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그는 무리한 현행 사이시옷(ㅅ) 규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우리말+한자어'로 구성된 단어는 중간에 사이시옷을 넣게 돼 있다. '등교길' '차값'은 틀리고 '등굣길' '찻값'이 맞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등교낄' '차깝'으로 읽히게 되기 때문에 언어의 된소리화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외래어표기법에서 된소리 표기를 규제하는 것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사이시옷은 제대로 쓰이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국립국어원의 수학 용어 조사 결과, 인터넷에서 '최대값'이라고 잘못 쓴 사례는 '최댓값'이라고 맞게 쓴 사례의 51.2배나 됐다.

이 교수는 "현재 국가가 주도하는 어문 규범은 국어의 생태와 국민의 실제 사용을 도외시하고 있다"면서 "사전 편찬 사업을 민간에 이양하는 등의 개선책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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