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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케냐에 사과" 식민 통치 범죄행위 첫 배상

이훈성기자 입력 2013. 06. 07. 03:43 수정 2013. 06. 07.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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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마우마우 봉기' 진압하며 고문 등 가혹행위"5200명에 341억원 지급" 외무장관, 의회서 직접 발표법적 책임 인정은 안해 한계

영국 정부가 1950년대 케냐 독립투쟁조직 마우마우의 봉기를 무력진압하고 조직원에게 가혹행위를 가한 것을 공개 사과하고 피해자 5,200여명에게 1,990만파운드(341억원)를 배상하겠다고 6일 밝혔다. 1963년까지 케냐를 통치하는 등 1980년까지 식민국 지위를 유지했던 영국이 식민지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를 배상하는 것은 처음이다.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은 이날 의회에 출석해 "영국 정부는 케냐인들이 식민지 정부로부터 고문을 비롯한 여러 가혹행위로 고통받은 것을 인정한다"며 "이로 인해 케냐 독립운동에 차질을 준 것을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헤이그는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인 케냐인 5,228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고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 식민통치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를 건립하는 비용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인당 배상 금액은 케냐 평균 연소득의 5배 정도다.

피해자 측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케냐인 피해자들을 대리해온 법무법인 리데이의 마틴 데이 대표는 "영국 정부가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다"며 "피해자들은 아직도 육체적, 정신적 상처로 고통받고 있고 이중 다수는 봉기와 무관하게 체포돼 고문받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은 영국 정부가 지난달 마우마우 출신 케냐인 3명과 배상금 합의를 위한 협상에 나서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다. 당초 영국은 "식민지 정부의 법적 책임은 케냐 독립과 함께 케냐 정부로 승계됐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2009년 영국 법원이 피해자들의 소송을 받아들여 재판을 시작하자 소송 시효가 지났다는 논리를 폈다. 지난해 10월 원고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한이 있다는 항소법원의 판결로 패소 가능성이 커지자 개별 합의에 나섰지만 케냐변호사협회가 피해자 8,000여명을 모집하는 등 줄소송이 이어질 조짐이 보이자 결국 일괄 배상을 결정했다.

헤이그는 "이번 결정이 식민지 정부의 행위에 대한 영국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며 다른 옛 영국 식민지에 선례가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950년대 키프로스 식민당국에 맞서다가 고문을 당한 그리스계 독립투쟁조직 에오카 대원들이 소송을 준비하는 등 옛 영국 식민지에서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케냐 주요 부족인 키쿠유족이 결성한 마우마우는 1950년대 영국을 상대로 무장 독립투쟁을 했다. 이에 식민지 정부는 1952~60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했고 가담자들을 불법 감금해 고문을 자행했다. 케냐 인권위원회는 이 기간에 16만명이 구금됐고 9만명이 살해되거나 불구가 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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