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쉬고싶다"고? vs "남자가 애낳나?"

안정준 기자 입력 2013. 6. 9. 05:06 수정 2013. 6. 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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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딩블루스]'유명무실' 남성 육아휴직, '아빠 어디가?'는 남 일

[머니투데이 안정준기자][[직딩블루스]'유명무실' 남성 육아휴직, '아빠 어디가?'는 남 일]

일러스트=임종철

"둘째요? 제가 육아휴직을 쓴다면 가질 수도 있겠죠. 아내가 다니는 회사는 여성도 육아휴직을 가기 힘든 분위기인데다 아내 직위와 연봉이 저보다 높아 제가 육아휴직을 쓰는 게 더 가능할 법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회사에서도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쓰기는 눈치가 보여요. 다른 부서에서는 누가 육아휴직 갔다는 말도 들리기는 하는데..."

A전자업체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이민상씨(34·가명)는 둘째를 갖겠느냐는 질문에 말문을 흐렸다. 2년 전 첫째 아들을 본 직후만 해도 "얼른 둘째 딸 낳고 싶다"던 이씨였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하지 못했다. 첫째 출산 후 아내가 육아휴직을 쓰지 못해 골머리를 앓았다. 둘째 출산 후에도 아내가 육아휴직을 가기 힘들 텐데 그 때 부터는 지옥이다. 장모님은 조카를 돌보느라 여력이 없다. 이씨 어머니는 4년 전 돌아가셨다. 결국 이씨 본인이 육아휴직을 가야 하는 상황. 이씨의 회사는 명목상 1년 육아휴직을 남성 근로자에게도 허용해 주지만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 눈치가 보인다.

육아휴직의 '꿈'을 그려볼 수라도 있는 이씨는 그나마 다행이다. B자동차업체 구매부서에서 일하는 김현호씨(33세·가명)에게 육아휴직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남성 근로자들 비중이 훨씬 많은 회사 특성상 여성 근로자들이 육아휴직을 내는 것조차 힘들어요. 남성 근로자는 아예 육아휴직의 '육'자도 꺼내기 힘든 상황입니다. 제가 알기로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사내 커플로 1년 전 결혼에 골인한 김씨 부부는 첫째 아이도 갖기 버겁다. 둘째는 언감생심이다. "사내 커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위기속에 결혼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녀 생각을 하니 막막합니다."

국내에 '아빠 육아휴직'이 처음 시작된 것은 2001년. 임신과 출산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 출산율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2008년부터는 육아휴직 대상자가 만 6세 이하의 영유아 부모로 확대되고 부부가 모두 일을 하면 1년씩 2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민간 기업에서 실제로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 근로자는 아직도 드물다. 그 숫자가 늘고 있기는 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 신청자는 6만4069명이고 이 가운데 남성 근로자는 179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1402명과 비교해 27.6% 증가한 수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성이 전체 육아휴직자 중 차지하는 비중은 3%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이용자의 40% 안팎은 공무원이다. 민간기업에 다니는 남성들에게 육아휴직은 여전히 '남의 일'이다.

남성 육아휴직이 아직도 걸음마 단계인 가장 큰 이유로는 남성 중심적인 사내문화가 꼽힌다.

김씨는 "전무님 대리 시절에는 업무 때문에 첫 째 태어나는 거도 못 봤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는데 남자가 애 낳고 키우는데 뭐 할게 있다고 투덜거리느냐는 핀잔을 많이 듣습니다"고 말했다.

육아 휴직기간 기업이 대체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은 이유도 한 몫 한다. 김씨는 "육아휴직 1년을 내면 그 기간에도 제 자리는 정원으로 잡힙니다. 회사에서는 제 자리를 채울 대체인력을 구한다고 해도 숙련도가 낮아 불안하다고 합니다"고 토로했다.

육아휴직을 '악용'하는 일부 직원들 때문에 회사에서 남성 육아휴직을 더더욱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측면도 있다. 이씨는 "얼마 전 한 남자 직원이 '용기 있게' 육아휴직을 냈는데 휴직 기간에 어학 공부를 했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이후로 진짜로 육아휴직이 필요한 남자 직원들이 얘기를 꺼내기 더욱 힘들어졌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추락을 거듭하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성도 육아휴직을 갈 수 있는 풍토가 조성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993년 남성 육아휴직제를 도입해 이 제도가 성숙 단계에 접어든 노르웨이가 좋은 사례다. 남성 육아휴직률이 90%가 넘는 노르웨이의 출산율은 가임기 여성 1명당 1.9명으로 유럽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인 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970년 4.53명에서 1995년 1.63명, 2010년 1.23명으로 급감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 1.23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OECD 평균(1.74명)에 비해서는 0.51명, 1위를 기록한 이스라엘(3.03명)과 비교하면 1.8명이나 적은 수준.

"요즘 인기 TV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성장기 자녀가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사회성도 좋아지지 않을까요? 당장은 힘들겠지만 아빠도 마음 놓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직장 아빠들의 바램은 아직까지 소리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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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안정준기자 7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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