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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노무현 수사' 때 "명품시계 밝히자" 주문도

입력 2013. 06. 30. 20:30 수정 2013. 07. 0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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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정원 개혁 더 늦추면 안된다/①정재계·시민단체·언론까지 뻗친 '촉수'

참여정부때 없앤 '상시출입'…이름만 바꿔 수백명 활동정치 현안·비리 수집에 사찰 논란…매일 보고서 올려정보관의 전망위 정보 수집은 명백한 '불법·월권'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무단 공개해 여의도 정치권이 발칵 뒤집힌 24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국회를 '출입'하는 국정원 직원이 참석한 술자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정치인 보좌관, 정치부 기자, 증권사 관계자, 여론조사업체 대표 등이 동석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을 두고 입씨름이 오가다가 증권사 관계자가 꺼낸, 참여정부 인사가 관여됐다는 주가조작 사건으로 대화 주제가 옮겨갔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푸념이 쏟아졌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와 업무 협조를 명분으로 국회 본관 6층 사무실에 상주하는 간부급 직원 2명 외에도 국회를 상대로 전방위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는 4명 이상의 정보관을 운용하고 있다.

과거 국정원에는 '조정관'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있었다. 정부 각 부처는 물론, 법원, 검찰 등에 상시 출입하며 기관장 인사와 정책, 비리 동향 등을 수집하고, 각종 민원 처리는 물론 기관 사이의 업무 갈등을 정리·조정하는 역할까지 맡은 국정원 직원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부처에 상주하는 이 조정관 제도는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가 국정원의 구조적인 정치개입을 막기 위한 조처 가운데 하나로 없앴다. 그러나 이들은 정보관(IO, Intelligence Officer), 연락관 등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고 있다.

수백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정보관·연락관들은 국회,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 법원, 검찰, 언론사, 기업, 금융권, 호텔, 대학, 시민단체 등을 드나들며 온갖 정보를 수집한 뒤 매일 오후 국정원에 이를 정리한 일일 보고서를 올린다. 이 가운데 일부 민감한 정보들은 국정원 상부에서 분석·가공한 뒤 대통령에게 직보하기도 한다. 더욱이 이들 정보관·연락관들 가운데는 정보수집 차원을 넘어서는 행위를 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와이티엔>(YTN)에 대한 방송 중단 압력,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대학교 시국선언 동향 파악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적극 개입하면서 정치관여·사찰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국가안보 상관없는 밑바닥 얘기까지 샅샅이…'명백한 불법'

■ 무엇을 캐고 다니나 기관별로 '담당'이 정해져 있는 정보관들은 장관 등 기관장부터 주요 실·국장까지 고위 간부들을 두루 접촉한다. 신분을 철저히 숨겨야 하는 정보기관 직원이면서도 "이곳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이라며 스스로 신분을 노출한다.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만 인쇄된 명함을 건네주는 것이 전부다. 실제 국정원 직원인지도 확인하기 쉽지 않을 정도다.

 정보관들은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로 식사 약속을 잡는다. 부처 현안과 인사 동향을 파악하는 게 주요 업무다. 특히 고위 간부에 대한 조직 내부의 평가를 수집하는 데 집중한다. 인사 불만이 터져나오는 술자리 얘기 등 시시콜콜한 내용도 빠뜨리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기초연금 등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복지공약이 청와대 관심 사항으로 떠오르면서, 공약 추진 상황과 관련 여론 파악이 정보관의 주요 업무가 됐다.

일부 '힘없는' 부처는 국정원 정보관을 '문제 해결 창구'로 활용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한 부처 관계자는 "부처 간에 업무를 두고 갈등을 빚을 때 정보관에게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정보관이 '보고서'를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중앙정부에 아쉬운 소리를 하기 마련인 지자체들도 국정원 정보관을 활용한다고 한다. 호남지역 지자체의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와 연결되는 끈이 없다 보니 지역 국정원 정보관에게 여론을 반영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고위 공무원이나 공기업 간부들은 국정원 정보관이 작성하는 인사존안자료에 매우 민감하다. 이들의 요구에 삐딱하게 대응했다가는 자칫 좋지 않은 평가가 청와대에 보고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특정 건설업체에 공사를 주도록 공기업 대표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는데, 공기업 인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정원 인사평가자료가 압력의 근거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정부 기관의 한 관계자는 "정보관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면 자신의 개인정보가 나쁘게 올라가 승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이나 법원도 예외가 아니다. 검찰 출입 국정원 정보관은 검사장·차장검사·부장검사를 수시로 찾아다니며 진행중인 수사 내용 등 구체적인 정보를 캐묻는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보안 문제가 있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정보관들이 1년에 한번씩 쓰는 인사존안자료를 의식해 적당히 답해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할 때는 대검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이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을 찾아가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를 하는 대신 (박연차 회장이 건넸다는) 명품시계 건을 밝히자"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국정원에는 경제팀이 따로 있다. 과거에 '경제단'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들은 대기업과 경제단체 등을 두루 맡고 있다. 이들은 보통 기업체들의 직제에 맞춰 '전무', '부사장' 등의 호칭으로 불린다. 주로 임원들을 만나는데, 같은 기업 안에서도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제 현안이나 아직 발표되지 않은 기업 실적, 투자 계획 등을 꼼꼼히 챙긴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수사 개입검찰에 "명품시계 밝히자" 주문'정부부처 상대 보안정보 수집'국정원법·시행령 포괄적 해석인사불만·정치인 성향 '이잡듯'언제든 정치공작 보고서 될수도

  ■ 법적 근거는 있나?정보관들은 '1일 1건' 보고서 작성이 의무화돼 있다. 오후 4시께부터 보고서를 만들어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일부 정보관들은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할 경우 평소 관리해온 언론인, 각 정당의 전략통 등에게 '코멘트'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런 보고서들은 국정원 국익정보국과 국익전략실 등을 거치면서 걸러지고 가공된다. 국정원 정보관을 지낸 한 인사는 "밑에서는 조각 정보를 올리지만 상부에서는 전국에서 올라오는 수백건의 보고서를 모자이크처럼 짜맞춰 큰 그림을 그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다음날 아침 국정원장 책상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정보를 '생산'하는 정보관이 조직 안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보관들의 이런 활동은 법적 근거가 없다. 국가정보원법은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범위를 '대공, 대정부 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으로 한정하고 있다. 국정원이 정보관들을 통해 국가안보와 직접 연관이 없는 밑바닥 얘기까지 쓸어담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자 월권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자신들의 활동 근거를 국정원법의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배포'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 조항(제3조 1항)에서 찾는다. 국정원법은 '기획·조정 업무'의 구체적인 범위를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돌려놨는데, 관련 시행령은 정부 부처 등을 상대로 한 '보안정보 수집·작성' 등을 규정해 놓았다. 이 역시 보안정보에 한정돼 있지만 국정원은 이를 포괄적으로 해석해 기관장의 행적부터 인사 불만, 대통령에 대한 정치인들의 평가, 정부정책 추진 상황 등을 이 잡듯이 훑어낸다.

국정원은 동향정보뿐 아니라 정부정책을 점검하는 '정책정보'도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책 점검은 국무총리실의 국무조정 업무 등을 통해 하면 되는 일이다. 사정기관의 한 고위 인사는 "그렇게 수집된, 때로는 '증권가 찌라시' 수준의 국정원 정보라는 것들이 국정 운영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볼 때"라고 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정보관의 업무는 언제든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정치권 관련 보고서는 '정치공작 보고서'로, 언론 관련 보고서는 '언론공작 보고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와이티엔>을 담당하는 국정원 정보관이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단독 기사를 방송하지 못하도록 와이티엔 보도국 간부에게 요청해 이를 '관철'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정원은 참여정부 시절 제이유(JU)그룹 다단계 사기사건 범죄정보를 수집해 뇌물을 받았다는 정·관계 인사 리스트를 작성한 뒤 이를 언론에 흘린 '전과'도 있다.

국정원 정보관 출신인 한 인사는 자신이 했던 업무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냥 보기에도 하는 일이 이상하지 않나.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도 없고…."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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