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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안 만나주면 고발한다" 남친의 협박수단 된 낙태죄

입력 2013. 06. 30. 21:00 수정 2013. 07. 0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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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결별 갈등에 여친 고발

위헌논란 속 악용 늘어

20대 후반의 ㄱ씨는 지난해 7월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남자친구를 사랑했지만 그와 사이에 생긴 아이를 낳을 수는 없었다. 남자친구는 술을 마시면 행패를 부리곤 했다. 욕을 하며 때리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수술 뒤 둘의 관계는 회복되는 듯했다. 남자친구는 술버릇을 고치고 다시 아이를 갖자고 약속했다. 수술 몇달 뒤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하기도 전 다시 남자친구의 나쁜 버릇은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임신중절 수술의 아픈 기억도 결별을 앞당기게 했다.

파혼은 간단치 않았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이혼절차는 필요 없었지만, 결혼에 들어간 비용이 문제가 됐다. 비용 문제로 다투던 남자친구는 낙태죄를 들고나왔다. 그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며 올해 초 ㄱ씨를 '낙태죄'로 고발했다. ㄱ씨는 현재 재판을 받는 중이다.

낙태죄로 여성을 협박하는 남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형법 269조는 낙태를 한 여성은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의 벌금형을 받게 하고 있다. 아이를 임신하게 한 남성들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는 비열한 남성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30대 초반인 ㄴ씨는 지난 4월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ㄴ씨에게 매달리던 남자친구는 돌연 협박하기 시작했다.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지난해 받은 임신중절 수술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ㄴ씨는 임신 당시 유산의 위험이 있었던데다 남자친구도 반대하지 않아 수술을 결정했다. ㄴ씨는 "남자친구가 별 관심이 없어서 친구와 함께 (임신중절 수술을 하러) 병원에 갔을 정도다. 헤어지자고 했더니 협박을 할 줄은 몰랐다. 너무 고통스럽고 불안하다"며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전화상담을 받았다.

올해 상반기 낙태죄 고발 협박과 관련해 여성민우회에 상담이 들어온 것만 3건이다. 지난해 전체 3건이었던 데 견줘 갑절로 늘어난 셈이다. 실제 낙태죄로 고발당해 기소된 ㄱ씨 사례는 관련 상담을 시작한 뒤 처음이다.

2011~2012년 2년간 검찰에 접수된 낙태죄 사건 40여건 중 실제 기소된 것은 10건 안팎으로 기소율은 낮은 편이다. 낙태죄는 그간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많았고 국민 법감정상 중범죄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낙태죄가 여성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현상은 법의 맹점을 재확인해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의 여경 활동가는 "낙태죄로 협박받는 여성들의 상담 의뢰가 늘어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낙태죄가 재산상 다툼이나 이혼 과정에서 협박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낙태죄가 본래의 취지와 달리 잘못 활용되는 현실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낙태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으며, 당시 재판관 의견은 4 대 4로 첨예하게 갈렸다.

최유빈 기자 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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