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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0만원으로 지은 '뽁뽁이집', 돈 벌려면 못 지었죠

입력 2013. 07. 03. 20:50 수정 2013. 07. 0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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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젊은건축가상 '제이와이아키텍츠'

"돈벌이에 초점을 맞추면 할 수 있는 일은 무척 제한됩니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 벗어나면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3 젊은 건축가 상' 수상자 3팀 가운데 마지막으로 호명된 제이와이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원유민, 조장희, 안현희씨는 '젊은 건축가' 가운데서도 가장 젊다.

3명 중 연장자인 원유민씨가 32살에 불과하다. 게다가 사무소를 차려 일을 시작한 지 15개월에 지나지 않은 새내기다. 45살까지가 대상이고 이미 두드러지는 성과를 낸 건축가들의 등용문 같은 이 상의 역대 수상자들과 비교하면 건축계 내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의 수상은 실로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다. 심사위원들은 최악의 불경기 속에서 많은 건축가들이 꿈을 잃고 건축의 길을 떠나는 상황에서 패기로 자기 길을 뚫어가는 이들의 도전정신, 그리고 적은 예산에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을 높게 평가해 수상자로 결정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적 건축, 그리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젊은 건축가다운 열정을 보여준 덕분이다.

연장자가 32살, 역대 최연소 수상팀북향 지붕에 비닐 겹쳐서 단열·채광적은 예산으로 완성도 높은 집 지어재능기부로 시작한 프로젝트 14개"돈에서 멀어지니 할 일이 보였어요"

세 사람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2월 완공한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의 '뽁뽁이 집'. 집에 불이 나 2평짜리 창고 건물에서 겨울을 나야 했던 부부와 네 자녀를 위한 집 고쳐짓기 프로젝트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부탁을 받은 일인데, 예산은 4200만원. 집터는 북향인데다 뒤로는 대나무 숲이어서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는 곳이었다. 쓸 만한 벽 일부를 남기고 털어낸 다음 목구조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씌웠다. 문제는 채광. 그래서 고른 천장 재료가 포장할 때 쓰는 비닐 '뽁뽁이'. 빛을 투과하면서 단열효과가 있어서였다. 북향 지붕에 뽁뽁이 25장을 겹쳐 단열재로 만들어 넣고, 폴리카보네이트로 마감했다. 평소 어둑어둑하던 집 안에 아침 햇빛과 저녁 어스름이, 그리고 후드득 빗소리까지 따라 들어왔다.

다음 프로젝트는 전남 장흥에서 부부와 다섯 자녀를 위해 지은 '집 속의 집'. 낡을 대로 낡아 쥐소굴이 된 집은 고치기보다 새로 짓는 게 나은 상황. 하지만 이번에도 비용은 4000만원뿐. 컨테이너 상자 두개를 이어 안채로 하고 맞은편에 또 하나를 세워 사랑채로 하게 된다. 그래 봤자 15.8평. 7명이 쓰기엔 턱없이 좁다. 2차 해법은 컨테이너 상자집을 철골 지붕으로 덮는 '집 속의 집'. 지붕 일부를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로 덮어 햇빛을 끌어들이고 포장마차에서 쓰는 두꺼운 비닐막으로 사방을 두르게 된다. 20평이 새로 생겨 35.8평의 집이 만들어진다. 평당 시공비는 111만원. 일반 단독주택 공사비가 최소 평당 400만원 정도이니 그 4분의 1 수준이다.

"지금 젊은 건축가들은 살아남기 힘듭니다.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심하고 경험 없는 젊은이한테 찾아올 건축주는 없죠. 그래서 생존수단으로 택한 것이 저변 넓히기였어요. 돈에서 조금 멀어지니 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구요.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더군요." 원씨의 말에 안현희씨가 맞장구쳤다. "이렇게 판이 커질 줄 몰랐어요."

네덜란드 유학을 마친 뒤 현지 건축회사에 다니던 원씨는 그곳 건축가들이 존경을 받는 반면 한국에서는 일부를 빼고는 건축업자나 시공업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유명 건축가들이 노동자를 위한 공동주택을 저비용으로 설계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게 일상적이라는 것. 동기 조씨한테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조씨가 공감했고, 원씨가 귀국해 사무실을 낸 뒤 안현희씨가 합류했다.

이런 식으로 이들이 사회 참여형 또는 재능기부까지 닥치는 대로 뛰어들어 진행한 프로젝트가 벌써 14개다.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간 전남 강진 아동센터를 지으면서는 농어촌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방과후 갈 데가 없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원유민씨는 "10살 안팎 어린이가 '나 같은 촌닭은 공부할 필요 없다. 공부해봤자 엄마 아빠처럼 가난하게 살 테니까'라고 말하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돈 안 되는 프로젝트만 하면 어쩌려느냐고 묻자 "돈 안 되는 일도 할 뿐"이라며 "그런 일이 늘어나면 돈 되는 일도 늘어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계속 활동했더라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씨의 마지막 말에 뼈가 들어 있는 듯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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