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우리들의 별천지] 레고 동호회 '브릭마스터'

조재희 기자 입력 2013. 07. 31. 03:13 수정 2013. 07. 3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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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 레고 달인들이 모였다

지난 3월 23일부터 3주간 문화역 서울 284(옛 서울역사)에서 열린 '여가의 새 발견'전(展)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코너는 바로 2층에 꾸며졌던 레고(LEGO) 전시였다.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레고 전시는 4월 26일부터 시작된 '연장전'에선 2배 이상 확장된 면적에서 더 많은 작품을 갖추고 관람객을 맞이했다.

IT 커뮤니티인 클리앙의 '레고당'과 함께 이 전시를 주최한 곳은 바로 다음카페에 있는 레고 동호회 '브릭마스터( cafe.daum.net/brickmaster)'. 레고를 주제로 매달 발행되는 잡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오는 8월 1일부터 18일까진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에서 '아빠 같이 가'란 제목으로 두 번째 전시회도 연다. 레고 브릭으로 광화문과 세종문화회관, 청계천 등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작은 서울 프로젝트'와 미니 피겨(약 3.8㎝ 크기의 레고 사람) 3000여개가 등장하는 '스타워즈 황제의 시찰'을 선보일 예정이다.

브릭마스터는 2009년 10월 22일 만들어진 젊은 동호회다. 회원들의 연령대는 30대 중반이 주축인 가운데 대학교 1학년생부터 40대 중반까지 퍼져 있다. 영화배우 지진희씨도 몇 달 전부터 활동 중이다.

회원 수는 적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전국에 회원들이 흩어져 있다. 전국 회원이 모이는 엠티는 드물고, 보통은 같은 지역 회원들끼리 모인다. 동호회 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목요일 저녁, 영등포에서 모이는 '황금마차'다. 영등포에 오래전부터 있던 한 가게에서 따온 이름이다. 회장이자 카페 지기인 유병탁씨는 "회원 대부분이 술을 못 하기도 하고, 비용 부담 때문에 만나기 어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트에서 자주 모인다"며 "밤 10시면 마트가 문을 닫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는 시간도 늦지 않아 모임에 간다고 해도 가족이 반대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활동으로는 해마다 봄가을에 열리는 레고 벼룩시장이 있다. 회원뿐 아니라 비회원들도 참여해 자유롭게 레고를 사고파는 오프라인 장터다. 2011년부터 시작해 지난 4월엔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네 번째 행사를 열었다.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도 열고, 어묵 등 간식거리도 나눠줬다. 회원 수보다 많은 500여명이 몰릴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5만2000여명이 다녀간 지난봄 서울역 전시회는 동호회에 큰 터닝포인트였다. 많은 회원이 합심해 전시회를 준비하며 더 끈끈한 모임으로 거듭나게 됐다. 유 회장은 "업체 후원 없이 동호회 자체적으로 레고 전시회를 열기는 국내 처음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브릭 작품 제작 과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요즘은 LDD(레고 디지털 디자이너)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가상으로 미리 만들어보고 주문해서 완성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브릭마스터 회원 중엔 실물이나 사진, 또는 상상을 바탕으로 브릭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설명서가 없는, 그래서 창작가 본인이 아니면 복원하기 어렵다는 게 매력이라고 했다.

브릭 구매도 창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보통 건물 한 동을 만드는 데 쓰이는 브릭은 1500~2000개. 실제 건물처럼 색상을 2~3가지만 쓰려면 한 색상당 수백 개씩이나 되는 물량을 국내에선 구하기 어렵다. 이때 회원들이 주로 찾는 곳이 최근 김정주 NXC 회장이 인수해서 화제가 된 오픈마켓 '브릭링크'다. 여기서도 원하는 물량을 다 확보하지 못하면 미국에 있는 특별회원에게 SOS를 치기도 한다.

회원 중엔 '아이에게 레고를 사주다가 나도 빠졌다'는 이들이 많다. 박형준씨는 "큰아이에게 듀플로(유아용 레고)를 사줬는데 조립하다 보니 어느새 내 취미가 됐다"고 말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시작한 고참(?)도 있다. 김민철씨는 "생일 때 부모님이 사주신 레고가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한(恨)'이 이끈 경우도 있다. 문종식씨는 "어렸을 때 레고는 정말 부잣집 아이들만 할 수 있는 비싼 장난감이었다"며 "어린 시절 레고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레고를 즐기는 이들이니만큼 김정주 회장의 브릭링크 인수에 대해선 반기는 반응이 많았다. "레고를 아이들 장난감으로만 보는 시각이 덜어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는 목소리부터 "한국 애호가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정욱씨는 "헤비 유저인 점을 들어 지금 회사에서 잘리면 취직을 부탁하겠다"며 웃었다. 물론 "나랑은 상관없다"는 답도 있었고, 상업적인 이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서울시청 전시회에 집중하기 위해 당분간은 회원 가입을 막아놨지만, 성인이고, 20문 20답 작성과 실명 공개 등의 요건만 지키면 가입이 가능하다. 단, 활동이 저조하면 정기적으로 탈퇴시키는 규칙이 있다. 유 회장은 "회원들이 정보만 얻어가는 곳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하는 모임을 추구하다 보니 폐쇄적이라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열정을 불사를 의지가 있는 분은 언제든 환영한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스스럼없이 농담을 건네고,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뭉치는 끈끈함, 그게 브릭마스터의 매력입니다."

※ '우리들의 별천지' 제보 이메일 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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