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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녀 등 뒤에 서 있는 '늑대'

이경원 기자 입력 2013. 08. 02. 10:54 수정 2013. 08. 0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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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의 계절, 지하철 성추행을 피하는 방법

출근시간,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수상쩍은 한 남성이 승강장을 두리번거립니다. 발견한 잠복 형사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그 남성을 지켜봅니다. 20분쯤 지났을까. 이 남성은 곧바로 짧은 치마를 입은 한 여성을 따라 타고, 잠복 형사들도 그 뒤를 따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남성은 여성의 몸 뒤에 밀착하더니 성추행을 합니다. 이어 벌어지는 검거작전. 잠복경찰은 살그머니 경찰 신분증을 꺼냅니다.

경찰 : 경찰입니다. 같이 내리시죠.

성추행범 : 왜요?

경찰 : 몰라서 물으세요?

보통 성추행범들은 처음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합니다. 증거가 어디 있겠냐 싶은 거죠. 하지만 잠복 경찰은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를 다 해놓습니다. 잠복 형사들은 이미 성추행 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놉니다.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밖에 없는 거죠. 체포된 사람은 40대 직장인, 세 살 배기 딸까지 있는 어엿한 가장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경찰이 피해자를 만나 처벌 의사를 묻습니다. 물론 최근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되면서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아도 검거가 가능하지만, 피해자의 의사도 처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경찰 : 성추행 당하셨죠?

피해여성 : 제 뒤에 있던 사람, 좀 이상해요.

경찰 : 그 사람 지금 다른 경찰이 검거했습니다. 처벌 원하시나요?

피해여성 : 당연하죠.

지하철경찰대 사무실에 끌려간 성추행범. 경찰 조사가 시작됩니다. 증거도 확실하겠다, 피해자도 분명하겠다, 성추행범은 발을 뺄 수 없습니다. 이내 혐의를 순순히 시인합니다.

경찰 : 그 여성분은 평생 상처를 안고 사실 텐데, 왜 그러셨어요?

성추행범 : 그렇다면 저는 더 큰 상처를 안고 살겠습니다.

성추행범의 공통점

지하철 성추행범의 검거 과정입니다. 잠복 경찰과 지하철 성추행범을 동행취재한 건 지난 2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성추행범에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인파로 붐비는 출퇴근 지하철 안, 우연히 여성과 몸이 닿은 일을 계기로 관심을 갖습니다. 사람이 많이 밀리는 척 하면서 여성에게 다가가는 거죠. 이제부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여성들이 많은 칸을 타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른 칸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성추행범이 됩니다. 승강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여성이 나타나면 곧바로 달라붙은 뒤, 뒤따라가 성추행을 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요즘 성추행범도 지능화되고 있습니다. 워낙 언론에서 보도가 많이 되다보니, 어떻게 행동하면 잠복 경찰의 표적이 된다더라, 이런 교훈(?)을 배워가는 거죠. 보도해 드린 대로, 고개를 자꾸 두리번거리면 수상쩍은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 스크린 도어를 살피며 잠복 경찰의 유무를 살피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치 빠른 추행범은 지하철을 타는 척 하다가 도망가기까지 합니다.

성추행을 피하는 방법

지하철 성범죄로 검거된 사람은 2010년 1,192명, 2011년 1,273명이었습니다. 특히 노출이 심한 여름철에는 하루에 3~4명이 검거됩니다. 서울 지하철 경찰대의 수는 100여 명이고, 수사 인력은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인데, 전날 야근 당직자를 빼고, 하루에 3~4팀이 가동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쉽게 말해 잠복 경찰이 나가면 한 명은 잡는다는 얘깁니다. 동행취재를 하면서 만난 한 경찰은, 널린 게 성추행범인데 수사 인력이 적어 더 검거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합니다. 잡히지 않는 성추행범이 더 많다는 얘깁니다.

자연히, 피해자들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촌역에서 10분 동안, 지나가는 여성 4분을 붙잡고 인터뷰를 부탁했는데, 모두 피해 경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난히 몸을 밀착하거나, 특정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대는 식으로 성추행했다고 말합니다. 무서워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고 하고, 어떤 여성은 그 이후로 치마를 잘 못 입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제 기사가 나간 뒤 "고작 성추행 당하고 상처가 남는다고? 여자라고 괜히 엄살떠는 거 아니야?"라는 댓글이 여럿 달렸던데, 이분들 얘기 들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성추행범을 피할 수 있을까요. 소리를 지르고 다그쳐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럴 경우 도망가기 십상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주변에 정의로운 시민이 없는 이상, 여성분 혼자 붙잡기는 어렵습니다. 심한 경우,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112로 신고하는 건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문자를 보내도 차이는 없다고 합니다. 객차 번호와 함께 인상착의를 보내는 식입니다. "1726호 성추행범, 빨간색 상의에 청바지, 안경 씀" 이렇게 간략히 보내면, 곧바로 각 지하철역에 있는 경찰대에 전파되고, 경찰대 형사들이 현장에 출동합니다.

예방도 필요합니다. 환승통로와 가까운 승강장은 항상 사람으로 붐비기 때문에, 성추행범이 자주 몰리는 곳입니다. 일단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또 승강장이 양 옆이 아니라 가운데 있어 맞은 편 열차로 쉽게 건너갈 수 있는 역, 보통 '섬식 승강장'으로 불리는데, 이런 역은 성추행범이 자주 몰리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추행범은 이 곳 저 곳 이동하면서 성추행할 대상을 찾는데, 지하철을 옮겨 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또, 누군가 바싹 몸을 붙이는 게 느껴지면 가능한 옆으로 빠지고, 가능한 불쾌감을 나타내는 게 좋습니다.

또 하나. 성추행범은 한 번 처벌 받으면 정신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지하철 성추행범들,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저씨, 오빠, 동생이라는 것, 많이 들으셨을 텐데요. 평범한 만큼, 사이코패스나 강간범에 비해서는 다행히 자기 잘못을 잘 뉘우친다고 합니다. 물론 체면 때문이겠지만요. 어쨌든 제2의, 제3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신고 정신이 필요합니다. 절대 눈감아 줘서는 안 됩니다.이경원 기자 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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