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에 출근해 퇴근 없는 하루, 참 길고 길다

2013. 8. 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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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가람 기자]

지난 봄에 야심차게 시작한 '결핍육아'는 '장난감 없이 살기' 한 편에서 멈춰버렸다. 막내 백일이 지난 뒤 5월 중순경 친정엄마와 친정의 너른 마당을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온 후 육아일기는커녕 아이들 사진도 겨우 몇 장 찍었다. 결코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나홀로 5세, 3세, 1세 아이들 셋을 키워내는 일은 그야말로 육아 전쟁을 방불케 하는 고된 일상이다.

친정에서 막내 백일을 지내고 서울로 올라올 때는 막내 임신 이후 쉬고 있었던 글쓰기 작업도 재개하려 했지만, 책상 앞에 앉을 시간도 없다. 세 아이들 씻겨 재우다 보면 나는 샤워도 못하는 날이 태반인 정신없는 '엄마의 날들'이지만, '나의 하루'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세 아이들이 겨우 잠든 밤, 거실 정리와 산처럼 쌓인 설거지, 빨래들을 뒤로 하고 책상 앞에 겨우 앉았다. 막내가 깨기 전에 어서 내팽개쳐져 있던 나를 바로 세워 한 자라도 써봐야지.

분명 이 일기를 6월 중순경에 시작했는데 벌써 8월이다. 세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는 너무 긴데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다. 야속하게도. 그러나 아이들은 여름날 오이 자라듯 자라고 있다. - 기자 말

▲ 잠자는 천사들

자주 깨는 막내

ⓒ 정가람

[오전 6 : 15] 남편의 출근 배웅

지난밤에도 나는 잠을 설쳤다. 몇 번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나 우는 아이에게 비몽사몽 젖을 물렸던 것 같다. 첫 아이 임신 이후 지금까지 만 4년이 넘도록 밤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잔 적이 하루나 있었을까. 아이들 곁에서 불침번을 서며 쪽잠을 자는 일이 이젠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해가 갈수록 아침은 무겁고 힘들기만 하다.

오전 8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늦어도 6시 15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아침은 못차려줘도 빈 속으로 출근시키지 않으려 여러 가지를 준비해봤지만, 세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기른 4년 동안 남편 출근길 배웅은 못하고 자는 일이 더 많았다.

그러나 막내를 낳고 나니 남편도 나도 30대 후반에 들어서 건강관리가 절실한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있어 건강한 부모, 건강한 부부로 바로 서는 일도 중요해 요즘 유행인 '해독주스'를 만들어 함께 먹기로 했다.

'해독주스'의 효과는 뒤로 하더라도 출근 준비하는 남편과 함께 일어나 뭔가를 나눠 마시고, 출근길 배웅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밀려났던 생활의 한 부분을 바로 잡는 것 같다. 반쯤 눈을 감고 흐느적거리는 한이 있어도 아침을 일찍 시작하려 애를 쓰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 좋은아침!

일찍 일어나는 막내

ⓒ 정가람

[오전 6 : 30]일찍 일어나는 막내

▲ 우량아 막내

백일사진

ⓒ 정가람

어쩜 아이들은 엄마가 옆에 없는 걸 자면서도 귀신같이 알까? 남편이 출근하기도 전에 막내가 깨서 운다.덕분에 남편은 막내의 배웅까지 받지만 남편이 출근하면 다시 자려고 했던 난 만 6개월에 10kg인 우량아 막내를 한 손으로 안고 퇴근한 적 없던 육아의 전쟁터로 이른 출근을 한다.

다시 젖을 물려 막내를 재워 보지만 날씨가 더워 그런지 막내는 쉬 잠들지 않고 결국 첫째 까꿍이까지 깨버렸다. 까꿍이는 일어나자마자 오늘은 뭘 하고 놀 거냐, 오늘은 자기랑 놀아줄 거냐 묻는다.

약속을 하면 꼭 지켜야 하는 다섯 살 아이이기에 아무 말이나 할 수 없어 말을 얼버무리다 복지관 유아발레 가는 요일인 걸 체크하곤 발레 하나로 오전을 넘기기로 했다.

[오전 9시]세 아이 모두 기상... 육아전쟁터 출근

오전 9시 전후로 두돌을 지나면서 낮잠을 자지 않는 둘째 산들이까지 일어나면 본격적인 육아의 하루가 시작된다. 눈 뜨면 밥상을 차려줘야 했는데 여름이라 입맛이 없어 그런지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길래 얼마 전부터 은근슬쩍 아침을 건너뛰고 있는 중이다. 간단하게 빵과 우유, 씨리얼로 때우고 있다.

다행히 아직 아무도 기관(유치원·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아 잔뜩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아침이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좀 미안했지만 하루 한 끼만 이렇게 차려도 수고로움이 얼마나 덜한지….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이렇게 아침을 가볍게 먹고 나면 점심도 저녁도 다 잘 먹기에 더운 날씨 핑계까지 대며 하루 두 끼 밥상된 지 두 달이 넘었다.

▲ TV없이 육아는

불가능한 걸까?

ⓒ 정가람

[오전 10시]'TV 없는 육아'는 어려워

대충 아침을 챙겨 먹여도 설거지 거리는 나온다. 배부르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노는 아이들이지만 내가 먼저 TV를 틀고 세 아이들 모두 소파에 앉힌다. 돌 전 유아에게 TV가 좋을 거 하나 없는 거 나도 안다. 그러나 막내가 누나, 형 옆에 나란히 앉아 TV에 집중해주는 얼마간의 시간 동안 설거지도 하고 점심도 빨리 해놓아야 우는 막내 업고 종종거리는 걸 최대한 덜 할 수 있다. 하기에 'TV 없는 육아'는 시도도 못하고 있다.

TV를 틀어줘도 다섯 살인 까꿍이만 TV 앞에 오래 붙어 있는다. 세 살인 산들이는 수시로 내게 와 뭔가를 요구하고 막내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보채기 시작한다. 혼자 앉는 게 가능해지자 움직이고 싶은 욕구와 호시심이 강해진 막내는 업힌 채 가만히 서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할 수 없이 설거지도 채 끝내지 못하고 젖을 물려 달래고 앉아있자니 두돌 지나 겨우 젖을 떼고 있는 산들이가 저도 한 입만 달라고 보채고, TV 보던 까꿍이도 심심한 지 "엄마 찌찌 맛있는데, 나도 먹고 싶은데~" 하며 거들고 나선다. 날도 더운데 애 셋이 다 내게 달려드니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에어컨 전원 버튼을 누른다. 이번 달엔 전기세가 얼마나 나오려나. 다자녀 전기세 할인 정책도 바뀌어서 최대 8000원 밖에 못 받는다던데.

[낮 12 : 30]국있던 밥상에서 일품요리로

작년까지만 해도 한여름에도 국은 꼭 끓여 밥상을 차렸다. 그런데 애가 셋이 되고 나니, 게다가 여름이 시작되고 나니 일주일에 한 번 국 끓이기도 '덥다'. 늘 국을 먹었던 까꿍이는 오늘도 국이 없다고, 반찬 칸이 세 칸인 식판의 한 칸이 비었다며 잔소리를 해댄다. 가르치고 함께 놀아주는 건 좀 못해줘도 취학 전엔 먹는 건 정성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최선을 다해왔건만, 이마저도 올 여름엔 무너지고 말았다.

식판 다섯 칸 모두 채워야 하는 가정식백반에서 일품요리로 점점 바뀌고 있는 요즘의 아이들 밥상. 손잡이 있는 그릇에 담아 차려주면 세 살인 산들이도 제가 알아서 반은 먹어주기에 비빔밥, 볶음밥, 카레, 짜장, 스파게티, 잔치국수 이런 종류로 밥상을 차려준 후 나도 선 채로 한 그릇 후루룩 먹는다. 그리곤 얼른 막내 이유식을 만들어 먹성 좋은 막내 앞에 대령한다. 하루가 다 간 것 같은데 아직도 아이들이 자려면 9시간이나 남았다.

▲ 천하무적

세남매

ⓒ 정가람

[오후13 : 30]세 아이 외출 준비하기

주 2회 옆동네 사회복지관에서 하는 유아발레에 다니고 있는 까꿍이. 오후 2시 35분에 오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선 1시 반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다행히 막내가 살짝 낮잠에 들었다. "아가 잘 때 어서!"를 외치며 두 아이에게 세수와 양치질을 하게 한다. 고양이 세수 하는 게 뻔하지만 아이들에게 맡겨놓고 서둘러 두 녀석 외출복을 챙기고 나도 옷을 갈아입는다. 대충 물만 찍어 바르고 온 까꿍이 머리를 빗긴다. 숱이 많고 잔머리가 많은 까꿍이 머리 빗기는데 시간이 걸린다.

어린 시절 곱게 머리를 길러 예쁘게 하고 다니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는데, 왜 엄마가 날 짧은 머리로 키우실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래도 교사이셨던 엄마는 방학 때가 되면 조금이라도 내 머리를 길러 땋아주곤 하셨다. 몇 번의 그 기억이 참 좋았고 까꿍이도 예쁘게 머리 묶는 걸 좋아하지만, 자다 깨서 우는 막내 젖 물리며 허리를 튼 채로 까꿍이 머리를 묶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빨리 머리를 묶어준다. 언제쯤이면 딸아이의 곱슬거리는 머리를 빗겨주며 다정하게 머리를 묶어줄 수 있을까….

까꿍이 머리 손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막내가 깨서 운다. 4년째 듣고 있는 갓난쟁이 울음소리이지만 당최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애 셋 키우면 그러려니 할 만도 한데 난 아직도 아기가 울면 신경이 곤두선다. 잘 놀던 두 녀석에게 애꿎은 화살이 돌아간다. 우는 막내를 업고 겨우 애들 옷을 갈아입히고 화장실 볼 일까지 마친 후 신발을 신겨 현관을 나선다. 엘리베이터에 타서야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그야말로 '쌩얼'에 4년째 목 늘어난 수유티에 질끈 묶은 머리, 참 볼 품 없는 애 셋 딸린 아줌마다. 예쁘게 가꾸며 애 키우는 엄마들도 많던데 난 왜 늘 이럴까…. 한숨이 나오려는데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걸로 첫째와 둘째가 또 싸운다. 아이고!!

[오후 3시]큰아이가 발레를 배우는 동안에도 여전히 바쁜 나

▲ 누나가 발레하는 동안

떠돌이 신세

ⓒ 정가람

오전 내내 집안에 있던 아이들은 밖으로 나오자 싸운 건 그새 잊고 그야말로 돌멩이 하나에도 숨이 넘어가게 웃고 장난치며 노래를 부르며 뛴다. 셔틀버스를 타고 복지관에 도착해 발레 수업에 까꿍이를 들여보낸다. 아직 기관에 한 번도 다니지 않아 혼자 받는 수업이 조금 걱정됐지만, 그 어떤 기관에도 다니지 않아 그 누구보다 더 신나고 재밌게 발레 수업을 받고 있다. 그러나 까꿍이가 수업을 듣는 동안 남은 셋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마땅치 않다.아이가 하나인 엄마들은 발레 수업하는 동안 책도 읽고 커피도 한 잔하며 다른 엄마들과 수다도 떨지만 난 더운 날씨에 막내 업고 낮잠 잘 시간이라 보채는 산들이 달래느라 방황 아닌 방황을 계속 해야 한다. 모유수유실은 커녕 시원한 휴게실도 마땅히 없어 등나무 그늘, 커피숍, 복지관 1층 로비, 편의점 등을 돌아다니는 한 시간이 열 시간처럼 느껴진다. 어떤 날은 두 녀석 모두 똥을 싸 기저귀교환대 없는 좁은 화장실에서 비지땀을 흘리기도 했다.

큰애 한 명 좋자고 이 고생을 계속 해야 하나, 이것도 엄연히 사교육의 시작이라 고민이 되었지만 뭔가를 배우고 싶고, 일주일에 단 두 번이라도 동생들의 방해 없이 또래집단 속에서 마음껏 놀고 싶은 까꿍이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산들이도 버스를 타고 복지관에 가고 오는 시간을 즐겨 까꿍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까진 넷이서 발레든 뭐든 다녀야 할 것 같다. 아이 혼자선 집 앞 놀이터에 나가는 일도 위험해진 세상이 그저 야속할 따름이다.

[오후 3시 30분]놀이터는 절대 그냥 못 지나가

발레에서 돌아오는 길, 놀이터 앞을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아이들. 마침 남편도 회식이 있어 늦는다 하니 저녁상 신경 쓸 부담이 없어 놀기로 했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막내 젖을 물리며 까꿍이와 산들이 노는 걸 눈으로 쫓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입으로 잔소리를 한다. 막내도 바깥 구경하며 애 셋이 다 잘 노는가 싶다가도 넘어지고 싸우고, 셋이 번갈아가며 울다가 동시에 울어제끼면 더운 놀이터가 더 더워진다.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을 구슬리고 협박해 집으로 데리고 온다.

▲ 출동 놀이터로!

유모차 밀고 자전거 밀고

ⓒ 정가람

막내를 업고 두 녀석을 씻기기 시작한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은 머리를 감는 중에도 장난을 치고, 웃고 싸우고 운다. 업힌 채 좁고 더운 욕실에 있어야 하는 막내는 막내대로 운다. 내 목소리도 따라 올라간다. 까꿍이의 긴머리를 자르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누르며 둘을 씻겨 나와 잠옷으로 갈아입힌다. 막내는 계속 운다. 애들은 폭풍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계속 장난을 친다.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도저히 식판 가득 저녁을 차릴 기운도 시간도 없어 또 볶음밥을 해 저녁을 차린다. 애들이 저녁을 먹는 동안 계속 등에 업혀 울고 있었던 막내를 내려 목욕을 시켜 젖을 물린다. 이가 나고 키가 크려는지 요즘 들어 부쩍 잠투정이 길어진 막내는 길 때는 저녁 내내 보채기도 한다. 괜히 회식 중인 남편에게 원망을 퍼붓는다.

▲ 아빠 나무

삶의 무게

ⓒ 정가람

[오후 8시 30분]자는 아이들은 모두 천사

발레도 다녀오고 놀이터에서도 놀아 몸도 마음도 가뿐한 아이들은 오후 8시 반, 자러 들어가자는 말에 순순히 응해준다. 아빠 얼굴을 못보고 자는 게 안타깝지만, 남편이 늦게 오는 날은 일찌감치 저녁 먹여 재울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자리에 누워서야 첫째 까꿍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늘 미안한 게 많은 내 첫아이, 우리집 큰딸 까꿍이…. 남동생 둘을 둔, 기관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엄마의 육아 짜증을 다 받아내는 까꿍이에 대해선 따로 일기를 한편 쓰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정리해야겠다.

참 길고 길었던 아이들의 하루가 드디어 끝이 났다. 자정 무렵 막내가 다시 깨어 나를 찾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퇴근이다. 설거지, 욕실, 거실 정리, 빨래는 내일로 미루더라고 일단 땀범벅이 된 내 몸부터 씻어야 하는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 남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으려나, 전화라도 해봐야 하는데, 아, 자꾸만 눈이 스르르 스르르 감긴다.

▲ 엄마 나무

삶의 무게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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