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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日本軍이 위안부 조직적 동원' 日記 나왔다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2013.08.07. 03:13 수정 2013.08.0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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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싱가포르의 日本軍 위안소 관리인이 쓴 日記

일본군위안부가 전시(戰時) 동원 체제의 일환으로 일본군 주도 하에 여러 차례 조직적으로 동원됐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새로 발견됐다. 또 전선의 일본군 부대가 하부 조직으로 편성된 위안소와 위안부들을 끌고 다녔던 사실도 이 자료로 드러났다. 이는 일본군위안부 동원에 일본 정부나 군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일부 일본 인사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한국 경제사)는 1942년 7월 일본군위안부들을 따라 버마(현 미얀마)로 가서 1944년 12월 귀국할 때까지 버마와 싱가포르의 일본군 위안소에서 관리인으로 일했던 조선인이 남긴 일기를 6일 공개했다.

안 교수의 번역과 해제로 곧 간행되는 이 일기에 따르면 1942년 7월 10일 조선인 처녀 수백 명으로 구성된 '제4차 위안단'이 부산항을 출발했다.

일본군의 대리인이 선정한 민간 업자들이 모집한 이들은 군속(軍屬)에 준하는 신분이었으며 일본군이 발행하는 여행 증명서를 갖고 군용선 등 군용(軍用)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8월 20일 버마에 도착한 위안부들은 20명 안팎씩 나뉘어 일본군 주둔지와 주요 도시 지역에 배치됐다. 일본군 위안소는 형식적으로는 민간 업자가 경영했지만 일본군이 직접 관리·통제했다. 위안소는 일본군 부대에 전속(專屬)돼서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제출했으며 군의 명령에 따라 수시로 이동했다.

버마 지역의 조선인 일본군위안부 존재는 이 지역의 일본군위안부 출신인 고(故)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 등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문 할머니가 '제4차 위안단'의 일원이었으며, 이들이 시종일관 일본군의 명령을 따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안병직 교수는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발발 후 일본군이 몇 번에 걸쳐 위안부를 끌고 간다는 풍문이 돌았는데 이번에 공개된 일기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며 "일본군 위안소의 운영 실태를 보여주는 이 일기에 의해 위안소가 일본군 조직 편제의 말단에 편입됐고 일본군위안부들이 '성적 노예' 상태에 있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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