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년 만에 호남 인구가 충청에 추월당한 이유는?

광주 2013. 8. 21. 13:4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 말 광주와 전남·전북을 합친 호남 인구가 대전과 충남·충북을 합친 충청권에 추월당했다. 차이는 408명으로 매우 근소했지만 조선시대 이후 처음으로 인구 수가 역전(逆轉)된 것이어서 양 지역 모두에서 파문이 일었다.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일제강점기나 광복 후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충청권보다 적게는 1.5배, 많게는 2배 가까이 많은 인구가 모여 살았던 호남으로선 충격을 넘어 '굴욕(屈辱)'이나 마찬가지였다.

2개월이 올 7월 말엔 인구 격차가 6656명으로 벌어졌다. 이 추세라면 시간이 갈수록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호남의 가구 수는 조선 태종 때 호구조사에서 2만9441호로 충청의 1만9560호보다 훨씬 많았다. 정조 때(1798년) 인구는 122만6000여명으로, 충청의 87만1000여명에 앞섰다. 일제강점이 시작된 1910년 호남 인구는 249만8000여명으로 영남의 296만4000여명보다는 적었으나, 충청(143만3000여명)보다는 100만명 이상 많았다. 1925년에는 449만여명으로, 충청(265만여명)은 물론 영남(348만여명)을 앞지르기도 했다. 1940년에도 434만여명으로, 영남(492만여명)보다는 다소 적었으나, 충청(267만여명)보다는 167만명가량 많았다.

◇호남 인구가 충청보다 줄어든 건 조선시대 이후 처음있는 '굴욕'적 사건

광복 후에도 이 같은 차이는 여전했다. 1949년 전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호남 25%, 충청 16%, 영남 31%였고, 1960년에도 각각 24%, 16%, 32%로 비슷했다.

이렇듯 오랜 기간 유지되어온 지역별 인구 구성비율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다. 산업화와 수도권 집중이 시작되면서 각 지역에서 이농(離農)과 인구유출이 시작됐다. 특히 호남의 인구유출은 다른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급속하게 진행됐다. 당시 경부축을 중심으로 한 국토개발 및 산업화 정책에 따라 지역 간 불균형이 갈수록 심해졌다. 변변한 공장 하나 없는 호남에선 서울로, 부산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길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된 영남과,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충청은 인구유출 속도가 훨씬 느렸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차지하는 호남의 인구 비율은 1970년 20%, 1980년 16%, 1990년 13%로 곤두박질친다. 1960년에 비해 12%포인트가 떨어져 거의 반토막으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충청은 6%포인트, 영남은 3%포인트 감소에 그쳤다.

이 기간 전남의 인구는 1968년 413만8000여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1970년대까지 400만명 안팎에서 정체기를 맞는다. 당시 높은 출산율과 급격한 인구증가를 고려하면, 대규모 인구유출이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1985년 370만명대로 떨어졌고, 1986년 광주가 직할시로 독립해 나가자 280만명대로 주저앉았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는 1년에 10만여명씩 줄어들기도 했고, 이후에도 해마다 평균 3만5000여명이 전남을 떠나 작은 군(郡)이 한 개씩 사라진다는 말이 돌았다. 마침내 2004년 마지노선이라 여겼던 인구 200만명이 깨졌고, 지난 7월 말 현재 190만6000여명으로 190만명 선을 위협하고 있다.

전남 해남군과 고흥군은 1968년 인구가 각각 23만7000여명, 23만3000여명에 달했으나, 지난해 말엔 각각 7만8000여명과 7만1000여명으로 3분의 1로 줄었다.

전북도 마찬가지다. 1966년 252만3000여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이래 감소세로 돌아서, 2001년 200만명이 깨졌고, 2009년 185만4000여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엔 187만3000명이었다. 이환의 전북지사 시절(1968~1971년)의 '250만 전북 도민'이란 도정 구호와 홍석표 지사 시절(1986~1988년)의 '300만의 전진 대전북 건설'이란 구호는 희미한 옛 기억일 뿐이다.

◇호남 각 지자체 마다 인구 지키기 위해 必死的 노력, 마땅한 '카드'는?

이 같은 인구감소에 제동을 걸기 위해 민선시대 이후 각 자치단체들은 인구 지키기에 사활을 걸고 각종 시책을 펼쳐왔다. 전남도는 2004년 박준영 지사 취임 직후 인구 감소의 근본 원인을 분석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없으니 젊은이들이 떠난다. 산업화시대 불균형 개발이 지속된 때문이다. 여기에 교육·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인구유출의 원인으로 지목됐다."(기획관실 손명도 주무관)

전남도는 이에 따라 기업 유치와 친환경농업을 핵심으로 한 '3농정책'(농업·농촌·농업인 살리기), 미래자원의 보고 바다경영, 1시·군 1명품고교 육성을 추진했다. 출산장려 시책과 각 읍·면 공중목욕장 설치, 한옥과 민박·체험프로그램을 아우른 '행복마을', 농어촌 뉴타운 건설 등 정주여건 개선사업에도 땀을 쏟았다. 하지만 인구감소세를 꺾지는 못했다. 근본적 처방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에 따라 기업유치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나머지 시책들도 급격한 인구유출을 다소 진정시키는 효과에 그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인구 감소와 지역 침체를 반전시킬 만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서남해안관광레저도시개발(일명 J프로젝트)은 정부의 관심 부족으로 10년째 지지부진이다. 무안기업도시 개발도 투자자를 찾지 못해 결국 무산됐다.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는 당초 계획보다 3년가량 늦어져 최근 이전기관 1곳이 입주한 상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시도들이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 이후 다시 수도권 집중과 지역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건철 전남발전연구원장은 "최근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면서 수도권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인 땅들이 대규모로 풀렸다"고 했다.

그는 "J프로젝트도 이명박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가져줬다면 훨씬 빨리 추진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지역의 대형 프로젝트에 대해 지원 의지만 표명해줘도 기업 투자유치 등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 문화·관광·해양이 주목받는 추세를 고려할 때 청정 환경과 온화한 기후, 긴 해안선과 갯벌, 2000개가 넘는 섬 등 전남이 가진 비교우위 자원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기대가 섞여 있다. 천성권 광주대 교수는 "웰빙 바람과 함께 전원생활을 원하는 도시민들의 귀농·귀촌이 점차 늘어나고, 수도권 집중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 언젠가는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도는 최근 서남해안 해양자원을 산업으로 연결하기 위한 서남권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지부진하던 J프로젝트도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양복완 전남도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10년간 인구 지키기를 도정의 화두로 삼아 모든 시책의 출발점으로 한 결과, 연평균 3만명을 넘던 인구감소 추세가 최근 4000~5000명 선으로 둔화됐다"고 말했다.

chosun.com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