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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 2만3,000여명

박우진기자 입력 2013. 08. 22. 18:21 수정 2013. 08. 2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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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수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의 세 배 이상인 2만 3,000여명이라는 기록이 발굴됐다.

강효숙 원광대 사학과 교수는 "국가보훈처에서 1991년 발간한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Ⅲ): 독일 외무성 편(2)'에 포함된 '일본에서의 한국인 대학살(Massacre of Koreans in Japan)'이라는 제목의 사료를 최근 분석한 결과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수가 2만 3,058명으로 확인됐다는 기록을 발견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전까지 한·일 사학계에서 공식화된 피살 조선인 수는 6,661명이었다. 강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동북아역사재단이 22, 23일 여는 관동대지진 90주년 한·일 학술회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강 교수가 분석한 사료는 독일 외무성이 1924년 3월 작성한 것으로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참혹하게 학살당했다는 내용을 담은 본문 8매, 학살 증거 첨부 문서 3매로 구성되어 있다. 첨부 문서에는 ▦학살 장소와 시신이 모두 확인된 조선인 피해자는 총 8,271명 ▦장소 미확인·시신 확인 피해자는 7,861명 ▦장소 미확인·시신 미확인 3,249명 ▦경찰에 학살된 피해자 577명 ▦일본 기병(군인)에 학살된 피해자는 3,100명이며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한 조선인이 정보를 제공했다고 적시돼 있다.

이 사료는 일본 정부가 군경에 "모든 조선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리에서 눈에 띄는 대로 죽이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사료는 또한 대학살이 "일본인이 지진 때문에 느꼈던 분노와 절망을 조선인에게 분출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강 교수는 "이 사료는 종래 학계에서 참고로 한 사료 날짜보다 4개월 후 작성된 것이어서 지금까지 나온 관련 사료 중 최종적인 조사 결과물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사료가 국내 발간된 지 10여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됐다는 사실은 국내 관동대지진 관련 연구가 얼마나 미흡했는지를 드러낸다"며 "관련 논문이 고작 30여건에 머무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강 교수는 "향후 사료를 더욱 치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일본 도쿄를 비롯한 관동 지방에서 발생해 10여만명이 사망한 재난이다. 당시 혼란이 극심해지자 일본 정부는 국민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이에 분노한 군경과 자경단이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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