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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육아맘의 유모차 끌고 첫 버스타기 도전기

김지훈 입력 2013. 09. 06. 10:05 수정 2013. 09. 0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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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맘 먹지 않으면 유모차 끌고 밖에 못 나와요"【서울=베이비뉴스/뉴시스】김지훈·안은선 기자 = 언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냐는 듯 살랑살랑 바람이 불던 지난 2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사는 한다솜(33) 씨가 1시50분께 아들 서준이를 유모차에 태워 집을 나섰다. 이제 9개월인 서준이가 요즘 들어 부쩍 콧물을 자주 흘려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서다.이날은 한씨가 서준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처음으로 버스타기에 도전하는 날. 그는 뉴시스(대표 이종승)와 베이비뉴스(대표 최규삼)가 진행하는 '유모차는 가고 싶다' 연중캠페인(http://safe.ibabynews.com) 서포터즈다. 유모차를 끌고 버스 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동행 취재를 하고 싶다는 제안에 아이 키우는 부모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곤 흔쾌히 응했다.

아토피와 비염을 앓고 있는 서준이가 태어날 때부터 진료를 받았던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차로 이동해야 한다. 집에서부터 병원까지는 차로 10여분 정도 거리. 한씨와 서준이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집에서부터 버스정류장까지 가을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가을 햇살 아래 유모차를 밀며 걷는 한씨의 등에는 백팩이, 어깨에는 또 다른 가방 하나가 들려 있었다. 백팩 안에는 아기 기저귀와 물티슈, 아기띠 등의 유아용품이, 다른 가방 안에는 지갑과 개인 휴대용품들이 들어 있었다. 한씨는 유모차를 끌고 외출하더라도 아기띠는 꼭 챙겨 다닌다고. 갑자기 유모차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유모차가 편하긴 하지만 갖고 다니기가 불편하다보니 움직일 때는 오히려 아기띠가 나아요. 그렇다고 아기띠가 안전한 것만은 아니에요. 사실 버스를 타면 아기띠도 불편해요. 버스가 막 달리면 서 있자니 위험하고, 의자에 앉자니 아기가 불편해하거든요. 또 서 있을 때는 기둥을 잡고 있어야 하는데 버스가 움직이면 기둥에 아이 머리를 부딪칠 위험도 있어요. 특히 아기띠를 하고 버스에 타도 자리에 앉거나 말거나 기사님들이 그냥 출발할 때가 많아 정말 아찔해요."한씨가 아이와 함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병원행 버스가 도착했다. 부랴부랴 유모차에 있던 아이를 꺼내 안고, 유모차를 접어 버스를 타려는 순간 차가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한씨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버스 쪽을 향해 걸어가자, 그때서야 한씨를 본 기사가 버스를 세웠다. 버스 기사는 다급하게 버스에 오른 한씨에게 "타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를 하고 있어야지, 그렇게 꾸물거리면 어떡하느냐"며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진기자를 발견하고는 입을 닫았다.한씨는 편리한 이동을 위해 아이가 편안해 하는 디럭스형 유모차가 하나 있는데도 접이식 휴대용 유모차를 새로 구입했다. 무겁고 접을 수 없는 디럭스형 유모차는 저상버스가 아니면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저상버스는 교통약자인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등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오를 수 있게 차체 바닥을 낮게 하고 계단 대신 경사판을 설치한 버스로 국내에는 2003년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일반 시내버스보다 구입비용이 1억 원 정도 더 비싸고 유지 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아 전국적으로 많이 보급되지는 않은 실정이다.병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평일 오후 시간이라 빈자리가 꽤 많았다. 한씨는 우선 출입구와 가까운 빈자리에 유모차와 짐을 내려놓고, 서준이를 안은 채 다시 앞으로 나와 교통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찍었다. 그런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으려는데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씨는 재빨리 손잡이를 잡고 자리에 앉으며 서준이를 더 꼭 끌어안았다. 등에 맨 가방은 미처 내려놓지도 못한 채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10여 분을 달려 목적지인 서현역에 도착했다.버스에서 내려서부터 병원까지는 도보로 또 다시 10여 분 가야하는 거리.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씨 모자를 반긴 건 13개의 계단이었다. 작은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한참을 걸어도 계단만 있을 뿐 경사로는 보이지 않았다.한씨는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걷다가 경사로가 있는 비좁은 샛길을 겨우 찾았다. 도로가 울퉁불퉁해 병원으로 걸어가는 10여분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여섯 번의 크고 작은 건널목을 건너는 동안 건널목 경사로마다 흙이 있어 유모차가 여러 번 미끄러지기도 했다. 또 인도에 턱이 많아 유모차를 들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유모차가 차도로 향하곤 했다. 평범한 일상이 모험이 되는 순간이었다."그래도 여기는 인도에 주차된 차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에요. 유모차 끌고 동네 산책을 하거나 근처 마트를 다닐 땐 인도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아예 차도로 다니는 경우가 많아요. 전에 한 번은 집 근처 인도에 자주 트럭을 세워놔 보행을 막아 주인하고 시비가 붙은 적도 있어요."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했는데, 예약한 시간이 되려면 50분이나 남았다. 웬만해선 버스기사들이 유모차를 차에 태우지 않으려 한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하도 들었던 터라 혹시라도 버스를 오래 기다리게 될까봐 여유 있게 출발한 탓이다.평일임에도 이날 병원에는 유난히 아기와 함께 온 아빠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엄마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어렵다보니 회사에 반차휴가를 내고 자가용으로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왔어요." 이날 병원을 찾은 한 아이 아빠의 말이다.한씨는 진료 접수를 하고 대기실 의자에 앉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리곤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하소연을 했다."아기를 데리고 가끔 버스를 타면 기사 분 눈치를 보게 돼요. 아이가 혹시 칭얼대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아이가 울거나 칭얼대면 화를 내는 기사도 있다고 들었어요. 지하철 같은 경우엔 아이가 울면 내려서 달래고 다시타면 되는데 버스는 한 번 움직이기도 너무 힘들잖아요. 아기를 안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냥 가는 경우도 많대요. 아까도 버스카드 찍고 자리에 앉기 전에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타자마자 안 움직인 게 어디예요. 그런 기사님들 많아요. 기사님들도 자식이 있고 손주가 있을 텐데…"서준이가 병원 진료를 받는 동안 병원 창문 밖으로 길 건너편 풍경이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가방 두 개를 어깨에 메고 아기띠로 아이를 안은 한 엄마가 차도에 내려와 택시를 잡고 있었다. 불법으로 주차된 차량이 많아 차도까지 내려온 것. 이내 택시 한 대가 도착했는데 어느 샌가 옆에 있던 한 커플이 새치기를 했다. 그 뒤로도 아기 엄마는 한참을 더 그 자리에서 택시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서준이의 진료를 마치고, 오후 3시 30분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수월하게 첫 번째로 오는 버스에 탑승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마을버스를 이용했다. 한씨는 아까처럼 혹여 자리에 앉기 전 버스가 출발할까 겁이 나 버스기사 바로 뒷자리에 재빨리 앉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도 승객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아기 엄마가 한 손으론 애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들고 버스 타는 거 보면 안쓰럽긴 하지만 딱히 도와줄 방법은 없어요. 그저 빨리 출발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밖에 할 게 더 있나. 버스기사야 정해진 시간 안에 버스 운행을 해야 하니까 기사가 유모차를 들어주거나 할 수는 없지 뭐." 마을버스 기사의 말이다.

이 마을버스 기사는 "유모차 들고 버스 타는 게 쉽지 않다보니 이렇게 오늘 같은 경우는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그래도 마을버스는 주로 타는 사람들(동네 사람들)이 계속 이용하다보니 다른 버스들에 비해 좀 더 친절한 편이지. 일반 시내버스는 시간에 쫒기고 하다 보니 유모차뿐만 아니라 여행 가방이나 큰 짐을 들고 타려고 하면 그냥 외면하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짐 들고 타는 승객들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혹시 사고가 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면 기사가 책임져야 하니까 안 태우게 되는 거지."안전하게 마을버스에서 내려 아이를 다시 유모차에 태우고서야 한씨는 긴장의 끈을 풀고 여유를 되찾았다. "그래도 오늘은 이동거리가 짧아 크게 힘들진 않았는데 좀 무섭긴 했어요. 버스 출발할 때랑 급브레이크 밟거나 할 때는. 그래도 접이식 유모차라 접고 펴는 게 수월해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죠."정류장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한씨는 "걸을 수 있는 거리면 차라리 걸어 다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기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용기를 내서 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것이 맞냐"며 한숨을 쉬었다."유모차를 끌고 나오려면 정말 큰 맘 먹고 나와야 해요. 접고 펼 수 있는 휴대용 유모차라도 혼자 아이 안고 접었다 폈다 하려면 힘들고, 일반 유모차는 엄두도 못 내죠. 거리 다니다 보면 곳곳에 계단이 너무 많아요. 지하철이 편한데 지하철을 한 번 타려해도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많고요. 엘리베이터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경사로만 있어도 좋겠어요."한씨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버스 혹은 지하철을 타기까지 이동하는 데도 울퉁불퉁한 도로, 인도에 주차된 차들, 인도를 점령한 노점상 등 장애물이 너무 많아 불편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현실에선 유모차 끌고 외출하기가 불편하니까 버스를 타지 않더라도 나올 때 아기띠를 하고 나올 때가 많아요. 그런데 울퉁불퉁한 도로는 아기띠를 해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예요. 아이는 무겁고 바닥은 잘 안 보이는데 혹시라도 걸려서 넘어질 까봐 신경 많이 쓰고 걸어야 해요."집에 거의 다다를 즈음 서준이는 어느새 곤히 잠들어 있었다. "우리 서준이 오늘 고생 많았네. 얘도 많이 피곤할거예요. 지금 유모차에서 꺼내 안으면 금방 깰 텐데. 동네 한 바퀴 더 산책하다 들어가야겠어요."

jikime@newsis.comeun3n@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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