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과로 순직 이신애 중위 아버지 이재학씨 "최전방 만삭 여군 근무 배치 배려했더라면"

김한솔 기자 2013. 9. 1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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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딸 대신 손자 키우며 '육아일기'로 마음 달래"군내 산부인과 의사도 늘려서 이런 일 다시 없길"

이재학씨(57)는 요즘 딸이 '마지막 선물'로 남긴 손자(생후 7개월)의 '육아일기'를 쓰며 아픔을 달래고 있다. 딸을 잃은 애통함과 평균 체중보다 훨씬 적게 세상에 나온 손자의 건강을 기원하며 시작한 일기 쓰기는 어느덧 7개월이 지났다.

"딸을 잃은 뒤 너무나 슬프고 비통했습니다. 애절한 마음과 손자에 대한 이야기를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여자들만 가입하는 인터넷 육아카페의 카페지기에게 연락해 가입한 뒤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씨는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만삭의 몸으로 근무하다 지난 2월 과로로 순직한 이신애 중위(29)의 아버지다. 16일 오후 대전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2월 임신 중 과로로 사망한 후 최근 순직을 인정받은 이신애 중위의 아버지 이재학씨와 어머니 윤미숙씨가 16일 대전 대사동 자택에서 이 중위의 사진첩을 보고 있다. 가운데는 생후 7개월 된 이 중위의 아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이씨는 대뜸 "인터넷 육아카페에 직접 쓴 일기들을 인쇄한 것"이라며 두꺼운 종이뭉치를 내밀었다. 일기에는 이 중위가 군 숙소에서 갑작스럽게 쓰러진 지난 2월2일 당시의 상황과, 손자가 태어나는 순간 등이 세세하게 담겨 있었다.

이 중위는 구토 등 이상증세를 보이다 2월2일 오후, 퇴근을 한 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고 아이를 조산한 뒤 다음날 오전 숨을 거뒀다. 이씨는 이날의 아픔을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신애 엄마와 함께 신애의 이곳저곳을 주무르면서 일어나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딸은 눈을 뜨지 못했다. 눈가에 눈물만 맺혀 있었다. 열심히 머리를 감싸고 기도를 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비는 것 외에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월3일 7시47분. 신애가 하늘나라로 갔다. 아무 생각이 없다. 밤새 신애 엄마는 통곡을 하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아쉬움이 많은 채 신애는 갔다. 그리고 내 딸 신애는 없다…."

이씨에게 이 중위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이씨는 "딸이 여고 졸업 후 일반 대학에 입학한 뒤 '군인이 되겠다'고 했다"며 "여군사관 시험에 가산점을 주는 태권도를 연습하는 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한번도 군인이 되라고 권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원동기에 '아버지의 군복을 입은 모습이 늘 좋아 보였다'고 쓴 것을 보고 기쁘면서 딸이 기특했습니다."

육군 중령이었던 이씨는 자신과 6·25 참전용사인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되겠다는 딸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딸의 체력시험을 앞두고는 '체력훈련 지도'도 해줬다. "1차 시험 통과 후에 있는 체력시험에 대비해 한 달간 경기 남양주의 체육문화센터를 다니며 딸과 함께 훈련을 했어요. 비 오는 날이면 우산 들고, 시간 측정기로 시간을 재며 딸 옆에서 1㎞씩 같이 뛰었죠."

2010년 10월1일 딸은 그토록 원했던 소위로 임관한 뒤 첫 복무지로 강원 인제군의 최전방 부대 발령을 받았다. 성실했던 이 중위는 임신 상태에서도 초과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이 중위는 숨지기 한 달 전인 1월, 50시간23분을 초과근무했다. 이씨는 "딸이 3월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어 일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중위가 근무하던 인제군에는 산부인과 병원이 한 곳도 없다. 이씨는 "속초병원, 강릉병원까지 옮겨지는 과정에서 혈압이 많이 높아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당연히 딸이 순직 처리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육군본부는 지난 4월 "군복무가 임신성 고혈압의 발생에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며 딸의 순직을 부결했다. 이씨는 이를 그냥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딸에게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이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권익위를 찾았다. 권익위는 "급격한 직무 과중 등으로 뇌출혈과 임신성 고혈압이 발생하거나 악화됐다"고 판단했다. 권익위는 지난 10일 국방부에 이 중위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권고했고, 육군본부는 재심의를 열고 순직을 결정했다.

"군내 산부인과 의사 수를 늘리고, 임신한 여군은 부대 인근에 산부인과가 있는 곳에 배치를 하는 등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이씨는 "신애는 가고 없지만 부디 제2, 제3의 신애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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