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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드'의 진화, 들어는 봤나 '카톡 시월드'

황보람 기자 입력 2013. 09. 18. 07:21 수정 2013. 09. 18.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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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황보람기자][편집자주] 명절을 보내는 부부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명절이면 착한 아내, 순한 며느리로 온갖 노동에도 군말 없이 참아왔던 여성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바야흐로 '명절=고생'이라는 등식을 단호히 거부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의 시대가 왔다. 남성들도 변하고 있다. '돈벌어오는 기계'의 삶에 반발하며 명절이면 겪는 사위와 남편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이른바 '시월드'와 '처월드'의 애처로운 대결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명절 이후 이혼율이 증가하는 현상도 남의 일이 아니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공포로 다가오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 걸까. 머니투데이는 우리 시대 남편과 아내, 며느리와 사위의 육성을 통해 명절에 대처하는, '조금은' 지혜로운 자세에 대해 짚어봤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너무도 다른 뇌구조./사진 = 보건복지부 페이스북(www.facebook.com/mohwpr)

'처월드'가 모질다 한들 '시월드'엔 못 당한다. 사위들의 고충은 주로 '정신적' 측면이다. 딸 시집 잘못 보냈다는 장인어른의 한탄이나 '연봉'으로 대변되는 사위들 능력 비교. '용돈은 얼마나 드려야 하나'라는 일부 물질적인 고뇌도 있겠다.

시월드는 차원이 다르다. 시월드는 '가사 노동'이라는 '육체적' 문제가 핵심이다. 힘들게 운전해 내려온 귀한 아들은 푹 쉬고 차례상 앞에 큰절 몇번 하면 된다. 편안히 아들 차 얻어타고 온 며느리는 이제 일 해야지? 부칠 전이 태산이요 무칠 나물이 산더미다. 나이 어린 시누이는 대자로 누워 손 하나 까딱 안한다. 간이 짜네 싱겁네 거드는 소리에 뚜껑이 열린다. '너도 시월드 한번 입성해 봐라'. 혀밑에 차오르는 말을 꾹꾹 눌러 담는다.

◇며느리 기싸움. 시댁에 먼저 도착할 수록 '하수(下手)'

시월드에서 '서열'은 얼마나 '늦게' 귀성하는가에 달렸다. 추석 당일 차례 시간에 딱 맞춰 짠 하고 나타나는 막내 동서가 승리자다. 동서가 건넨 두둑한 흰봉투는 옵션. 밉상 중의 밉상. 진정한 승리자다.

#1

11년차 며느리 A씨는 지난달부터 매일 병원 신세였다. 회사일로 맘편히 쉬지도 못했다. 추석 연휴도 길겠다, 이 참에 짬을 내 하루 입원하기로 했다. 시어머니와는 추석 '당일'에 내려가기로 합의를 봤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동서가 아기 보느라 입안이 다 헐고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단다. 자기 혼자 애 낳아 키우나? A씨도 아들이 둘이다. "어쩌겠니...너라도 미리 와야지". 시어머니가 계약을 깬다.

'내가 바보구나' A씨는 장탄식을 뱉었다. 얄미운 동서는 미안하다는 문자 한 통 없다. 명절이고 뭐고 다 없어졌으면 싶다. 그동안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제사에 눈곱빼기 하나 비추지 않았던 동서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조언을 구했지만 허사.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시댁에 내려가지 말라는 '독한 처방'이 이어진다. 비현실적이다. 얻을 것도 없다. B씨는 결국 17일 근무를 마치자마자 밤차로 시댁에 내려가기로 했다.

◇들어는 봤나 '카톡 시월드'. 방패는 역시 '남편'뿐?

어린 며느리들은 조금 다른 노선을 택한다. 며느리가 어릴 수록 시어머니도 젊다. 충분히 타협점이 있다. 차례상을 간소화 하거나 완성된 차례 음식을 상에 올리기도 한다. 쿨한 시댁에서는 설날과 추석 번갈아 가며 친정을 다녀가도록 배려한다.

#2 새내기 며느리 B씨(30)는 시댁 어른들이 모인 '카톡방'에 매일 아기 사진을 올린다. 이유식을 잘 챙겨 먹였다고 칭찬받기도 하지만 '조언'을 빙자한 '잔소리'가 더 많다. 시댁은 멀수록 좋다고 했던가. 문명의 발달은 통설도 뒤엎었다. '카톡 시월드'가 시작됐다.

'시부모가 원하는 일들은 며느리 선에서 해결이 안된다'. 결혼 1년 만에 B씨도 도가 텄다. 시어머니는 이번 추석 B씨에게 '시월드 일주일'을 명했다. 갓난쟁이 손녀를 더 오래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원하는 바를 분명히 하되 대화 창구는 남편을 활용하라'. 남편이 중재에 나섰다. 일 하는 중간 집에 내려와 B씨를 '픽업'해 가기로 한 것. 덕분에 시월드는 3박4일로 줄고 남편의 처월드는 3일 더 늘었다.

남편 잘 만난 복일까? 물밑 작업은 B씨의 몫이었다. 아들은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B씨는 슬쩍 '갱년기 건강식품'을 시어머니께 건넸다.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지만 충분히 '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B씨는 말한다. 시어머니는 보답으로 "음식은 내가, 설거지는 며느리가"라는 통큰 결단을 내려 주셨다.

남자들은 묻는다. 이 정도면 시월드도 할만 하지 않느냐고. 야무진 새댁이라도 답은 쓰다. "지금껏 내가 공부했던 건 남녀평등 이런 거잖아. 결혼은 서열 세계야. 시월드에서 난 마지막 서열인 거. 내가 낳은 아기는 상전인데 난 밑바닥이야. 결혼은 약간 미친짓인 거 같아".

머니투데이 황보람기자 brid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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