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뉴시스

이 시대 영원한 소리꾼, 정옥향 명창을 만나다

박생규 입력 2013. 10. 10. 15:52 수정 2013. 10. 10. 15:52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서울=뉴시스헬스/뉴시스】 "'잡초는 밟아도 일어난다'는 말을 좋아한다. 예술을 하며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근성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준보유자로 국악로문화보존회와 양암원형판소리보존연구원의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정옥향 명창의 말이다.

친언니의 집에 놀러 갔다 밖에서 우연히 들려온 판소리를 듣고 매력에 빠져 이후 평생을 '소리꾼'으로 살았다는 그는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10일 '2013 국악로 대축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옥향 명창(60)을 만나 그의 인생 스토리를 자세히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처음 소리를 시작하게 된 건 16살 여름방학 때였다. 친언니의 집에 놀러 갔다가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해 배우게 됐다. 계속 듣고 싶은 끌림이 판소리에 있었다"며 운을 뗐다.

이후 그는 집안의 심한 반대도 무릅쓰고 우리 소리에의 매력에 빠져 국악을 위한 삶을 살게 됐다.

소리를 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2003년도에 사할린에서 했던 공연이다"라고 답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그는 "사할린에서 만난 조선족들이 아리랑과 쾌지나칭칭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민족들은 제사상에 비빔밥을 올릴 정도로 향수가 짙었다"고 회상했다.

또 봉사활동의 차원에서 20년간 해온 어르신을 위한 무료공연인 '찾아가는 무형문화재 작은 음악회'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공연은 과거 종묘공원 안에 있던 기와집에서 시작됐으며 장소가 사라진 후에도 복지회관에 찾아가는 방법을 통해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

정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준보유자로 '양암 원평 판소리 보존 연구원'에서 후학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또한 '국악로문화보존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오는 12일 개최되는 '국악로 대축제'와 같은 다양한 전통문화예술 행사를 주최하고 예술단을 만들어 많은 예술인이 무대에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등 우리의 예술을 활성화하는 것에 앞장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료공연, 후학양성을 위한 수련원 운영, 청소년 경연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해내며 '국악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전통문화예술에 지원이 미비한 것을 꼬집으며 그는 "'잡초는 밟아도 일어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며 "예술을 하는 데 있어 '정직'과 '진실'은 알아줘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또 "국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지원돼야 한다"며 "재능 있는 학생을 무료로 가르쳐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 명창에게는 앞으로도 '소리꾼'으로 살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는 "앞으로 보유자로 인정받고 수궁가를 알리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며 "'우리 소리'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후학양성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류지혜기자 ryu-1@newsishealth.com

(관련사진있음)

ⓒ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