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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낮은 자'들 향한 눈물이 나를 이끌어"

박주연 기자 입력 2013. 10. 14. 22:18 수정 2013. 10. 1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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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서 인권·평화활동 25년 국제 NGO 활동가 곽은경씨

그의 눈가는 자주 젖었다. 별명이 '수도꼭지'라고 했다. 그런 여리고 결 고운 마음이 그의 삶을 지구촌 곳곳의 '낮은 자'들에게 이끌었음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눈물에는 고난의 현장에서 피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수많은 슬픈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맺혀 있었다.

그는 국제 NGO 활동가 로렌스 곽, 한국이름 곽은경씨(51)다. 스물다섯살에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래 25년간 전 세계를 누비며 학살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그들의 생존과 인권, 평화를 위해 국제 연대활동을 펼쳤다. 2008년부터 4년간은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 NGO '팍스 로마나' 세계사무총장으로 일했다. 지난해 9월 생애 첫 안식년을 맞아 최근 모국을 방문한 곽씨를 10일 명동성당 앞에서 만났다. 그는 "79학번으로 대학 4년을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거리의 시위대 속에서 보냈고, 졸업 후 잡지사에서 일하다가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가톨릭학생운동 아시아 대표로 일하라는 권유와 설득으로 1987년 10월 파리로 갔다"고 말했다.

"가족은 물론 친구들의 반대가 거셌어요. 한국이야말로 정치적 격동을 맞고 있는데 왜 이곳을 두고 떠나느냐는 거였죠. 프랑스라는 나라가 주는 환상을 좇는 것이 아니냐고도 물었어요. 저 역시 갈등이 컸지만 껍질을 깨고 나가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안식년을 맞아 모처럼 모국을 방문한 국제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로렌스 곽(한국명 곽은경)이 지난 1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웃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불어 한마디 할 줄 모른 채 시작한 파리생활. 처음 몇 달간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극복해냈다. 인도에선 사람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카스트 제도의 맨 밑 계급인 '달리트'를 위한 인권운동을 했고, 정부와 반군 단체의 오랜 내전에 시달려온 콜롬비아에선 주민들을 대상으로 '평화의 공동체' 캠페인을 벌였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도 사투를 벌였다. 그는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잊을 수 없는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준 곳"으로 꼽았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과 제도)가 무너지고 첫 흑인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봤지만 그에 앞서 흑인이 참여하는 첫 민주 총선을 4개월 앞두고 백인 정치세력의 사주에 의해 일어난 흑인들 간 대규모 살상현장(1993·12)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고된 행군 속에서 건강은 악화됐다. 출장길에 여러 번 기절하고, 귀 고막 한쪽을 잃었으며, 허리 디스크는 파열돼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 같은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매번 일어서게 만든 힘을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이웃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줄기 희망이라도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작은 힘을 보태면 그것이 모이고 쌓여 불가능한 기적을 만든다"며 시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한국 국적을 고집하다 신변보호 문제 등으로 2003년 결국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는 "곧 안식년이 끝나면 국제기구가 모여 있는 제네바에 사무실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작은 인권단체들을 위한 컨설팅 일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지구촌 아픈 역사와 함께 기록한 책 <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 > (남해의봄날)를 펴냈다.

<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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