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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스승님 보셨으면, 방정 떨지마라 하셨을텐데..

김기철 기자 입력 2013. 10. 18. 03:23 수정 2013. 10. 1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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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방일영국악상' 안숙선 名唱, 아홉살부터 가야금·소리 배워.. 남원에선 '아기 명창'으로 유명

"만정(晩汀) 김소희 (金素姬·1917~1995) 선생님이 살아계셨으면 '너 방정 떨지 말고 더 잘해!'라고 다그치셨을 텐데…. 그렇게 말씀해줄 분이 안 계셔서 담도 울도 없는 집처럼 허허롭네요."

서울 세곡동 자택에서 만난 안숙선 (安淑善·64) 명창의 표정은 뜻밖에 쓸쓸해 보였다. 제20회 방일영 국악상 수상자로 선정된 안숙선 명창은 1994년 제정된 방일영국악상 제1회 수상자인 만정의 제자다. 그해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축하 무대에도 섰다.

"60년대 말쯤 고향 남원으로 전화가 왔어요. 만정 선생이 찾으신다고…. 해외 공연에 데려갈 만한 실력이 있는지 한번 보시겠다는 거예요. 동생(안옥선)과 함께 올라가서 소리도 하고, 춤도 추고, 설장구에 가야금까지 다 조금씩 했어요. 선생님이 딱 한마디하셨습니다. '싹수가 있구먼'."

안 명창은 고향 남원에서 아홉 살 때부터 이모(강순영)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외삼촌 강도근과 주광덕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어릴 적부터 소리가 빼어나 '남원의 아기 명창' 소리를 들었다. 만정의 '호출'을 받고 1970년쯤 서울에 올라와 비원 근처 만정연구소에 매일 출근했다. 심부름도 하고, 소리를 배우면서 간간이 공연에도 끼었다. 1972년 향사(香史) 박귀희(朴貴姬) 선생에게 가야금 병창을 배운 것도 만정 문하에 있었을 때다.

향사는 옷차림과 몸가짐까지 꼼꼼하게 챙길 만큼 엄격한 스승이었다. "머리는 단정히 빗어 넘겨서 뒤로 묶어야 했고, 평소에도 어깨가 드러나거나 짧은 치마는 못 입게 하셨어요. 한번은 파마를 근사하게 하고 공연하러 갔는데 당장 머리 묶고, 파마 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소리를 제대로 하려면 몸가짐과 내면이 모두 정돈돼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서는 춘향과 심청을 도맡았다. 연습실도 변변히 없어 극장 지하 보일러실에서 밤늦게까지 소리를 하다가 귀신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 "지하에서 개 짖는 소리, 새 소리도 내고, 귀곡성(鬼哭聲)이 나오니까 수위가 전등불을 비추고 들어오다가 깜짝 놀랐대요."

1986년부터 국립극장에서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 공연을 해냈고, '춘향가'와 '적벽가' 완창 음반을 냈다. 1990년대 서구 재즈 음악가들과 협연한 음반 '웨스트 엔드' '지음'(知音)은 젊은 판소리 애호가들이 요즘도 찾는다. 안 명창은 1980년대부터 유럽 7개국·미주 7개국 순회공연, 프랑스 아비뇽축제를 비롯해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뉴욕 링컨센터 초청 '춘향가' 완창부터 지난 6월 한·영 수교 130주년 및 정전 60주년 기념 런던 공연까지 해외에 우리 소리를 알리는 데 맨 앞줄에 섰다. "처음엔 소리 다 하기도 전에 관객이 나가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자막도 없고 줄거리만 대강 알려준 게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소리가 끝날 때까지 나가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판소리가 보통 노래가 아니구나, 서양인들도 춘향과 심청이를 이해하는구나, 되레 제가 자긍심을 느끼게 됐어요."

안 명창은 "감정을 절제하면서 웅숭깊고, 품격 있는 소리를 하고 싶다"면서도 "판소리의 중요한 대목을 뽑아서 대중 가수들처럼 뮤직비디오 같은 것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안 명창은 "우쭐한다거나 반대로 소리가 잘 안될 때 종종 만정 선생께서 생전에 적어준 메모를 꺼내본다"고 했다. 만년에 병원에서 썼다는 스승의 글씨는 삐뚤삐뚤하지만 결기가 담겼다. 안 명창이 보여준 메모 제목은 '주의사항'. '차원 높은 예술인이 되려면 품위를 지켜야 한다. 무대에서 판소리 속에 있는 대사 외에 딴 양념을 넣으려 하는 것 자체가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자기선전일 뿐이다.'

[20회 맞은 방일영국악상은] 최고 名人에만 수여… '국악계 노벨상' 불려

1994년 출범한 방일영 국악상은 방일영 선생과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이 설립한 방일영문화재단이 국악 전승과 보급에 공헌한 명인 명창에게 수여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국악상이다.

첫 회 수상자인 만정 김소희 선생을 비롯, 이혜구(2회·국악이론) 박동진(3회·적벽가) 김천흥(4회·종묘제례악, 처용무) 성경린(5회·종묘제례악) 오복녀(6회·서도소리) 정광수(7회·춘향가,수궁가) 정경태(8회·가사) 이은관(9회·서도소리) 황병기(10회·가야금) 묵계월(11회·경기민요) 이생강(12회·대금산조) 이은주(13회·경기민요) 오정숙(14회·춘향가) 정철호(15회·고법) 이보형(16회·민속악) 박송희(17회·흥보가) 정재국(18회·피리정악 및 대취타) 선생에 이어 작년의 성우향(춘향가) 명창까지 최고의 국악계 스타들이 상을 받았다. 소리를 하는 이들은 올해 20회를 맞는 이 상을 '국악계 노벨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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