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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교학사 교과서로 탐구문제 풀게 하니, 학생들 "3·1운동은 폭력적"

입력 2013.11.06. 08:20 수정 2013.11.0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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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북 군위고 교사, 2학년 학생 33명 대상 조사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도 "긍정 평가" 대답 많아

"학생들 예전 배운 내용과 달라" 역사 인식 혼란

남한호(50) 경북 군위고 교사(역사)는 지난달 2일 대구 시내의 한 일반고 2학년 학생 33명에게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탐구활동 지문을 읽게 한 뒤 교과서가 제시한 질문에 답을 적도록 했다. 각종 오류와 친일사관, 독재에 대한 긍정적 서술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가 학생들의 역사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 목적이었다. 교육학 박사인 남 교사는 경북대 역사교육과에서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학생들은 교학사 교과서 전체가 아니라 단지 탐구활동 지문만 읽었을 뿐인데도 일제에 항거한 3·1운동은 실패였다고 답하거나, 일제가 조선에 근대적인 시간관념을 보급한 것 같다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의하는 듯한 답변도 내놨다. 3·15 부정선거로 물러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배우게 될 경우 학생들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생길 것이란 교육계와 학계의 우려가 실증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254쪽 탐구활동에서 1919년 중국 베이징의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운동인 5·4운동과 인도의 반영운동을 소개하는 지문과 함께 "3·1운동이 갖는 한계점은 무엇이었을까"라고 물었다. 윤아무개 학생은 "운동으로 끝이 남"이라고 했고, 송아무개 학생은 "폭력성을 띤 운동"이라고 답했다.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시간을 정확하게 따르도록 한 내용을 소개하며 "일제가 이처럼 근대적인 시간관념을 보급하기 위해 힘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라고 질문(283쪽)한 데 대해서도 상당수의 학생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시간관념을 중시했기 때문에"(유아무개 학생)라는 식으로 식민지배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답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의 입장에서 쓴 글을 보여주며 "당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란 질문(190쪽)을 한 대목에서도 학생들은 "명성황후는 눈엣가시였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해할 수밖에 없었다"(손아무개 학생)는 식의 답변을 많이 내놨다.

교학사 교과서는 328쪽 탐구활동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을 자료로 제시했다.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당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라는 내용이다. 교과서는 이어 "하야를 결정하면서 무엇이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근심사였는지 생각해보자"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나라가 공산주의 체제로 변해가는 것"(민아무개 학생)이라는 식의 답변을 많이 했다.

남 교사는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탐구활동 내용을 본 학생들은 이승만이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꾀했다는 역사적 사실 대신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학생들과 후속 인터뷰도 진행한 남 교사는 "한 차례 한국사를 배운 2학년 학생들이기 때문에 교과서의 의도와 다른 답변도 있었지만,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반영한 답변을 내놨다. (예전에) 배운 내용과 너무 달라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21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고민'을 뺀 나머지 탐구활동 질문들을 일부 수정하거나 보완하라고 교학사 쪽에 권고했다. 하지만 교학사 쪽이 이 권고를 따를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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