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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꺼리는 에이즈환자.. 병원 문 닫을 각오로 돌봐

박국희 기자 입력 2013. 12. 02. 11:19 수정 2013. 12. 0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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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에이즈의 날.. 국내 한 곳뿐인 '말기 환자 요양병원' 르포

수도권의 한 요양 병원. 40대 남성이 매점에 가려고 병실을 나섰다. 환자복 엉덩이가 피로 번져 있다. 간병인이 "피가 또 묻었다"며 환자를 부축했다. 그는 말기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다. 동성애를 하다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 상당수가 항문이 파열돼 자주 출혈을 한다. 하지만 간병인은 A씨의 병명을 모른다. 다른 환자와 동네 주민 누구도 이 병원에 말기 에이즈 환자 수십 명이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곳은 국내 유일의 에이즈 장기 요양 시설이다. 그간 한 번도 공개된 적은 없다. 200여 병상이 있는 이 병원에 현재 에이즈 환자 48명(여성 4명)이 입원해 있다. 한 병실 안에서 바싹 마른 남성 3명이 침을 맞고 있었다. 외관상 여느 환자와 차이는 없다. 이런 에이즈 병실 10개가 암· 치매·중풍 등 환자 병실 사이에 끼여 있다.

이 병원은 질병관리본부의 거듭된 '부탁' 끝에 2010년 3월부터 에이즈 호스피스 사업을 위탁받아 해왔다. 일반 병원이 "환자 떨어져 나간다"며 에이즈 환자의 장기 입원을 꺼려 에이즈 환자들은 갈 곳이 없었다. 병원 관계자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환자들도 있었다"고 했다. 12월 1일은 제26회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원장은 2009년 갈 곳 없던 지인의 남편을 입원시켜줬다. 에이즈 환자였다. '선의(善意)'는 금세 소문이 났고, "나도 입원시켜달라"며 감염인이 몰렸다. 질병관리본부 사무관이 찾아와 "큰일하고 계신다"며 사업을 위탁했다. 정부 지원은 간병인 십수 명의 인건비가 전부다. 보안 책임은 막중했다. 원장은 "비밀이 드러나면 다른 환자나 주민들 항의로 병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 했다. 현행법은 의료진을 제외한 누구에게라도 타인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누설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만큼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차갑다.

간병인들은 자기들이 돌보는 환자를 B형간염 환자로 알고 있다. 혈액·정액·질액을 통해서만 감염되는 에이즈는 일상생활로는 옮지 않는다. 환자를 대하는 수칙은 혈액 매개성 질환인 B형간염과 차이가 없다. 원장은 "전염성은 B형간염이 3배 더 높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목숨 걸고 일한다. 합병증으로 인지 기능이 나빠진 환자에게 주사를 놓거나 피검사를 할 때 환자를 찌른 주삿바늘에 간호사가 찔리는 '주사침 자상(刺傷)'이 흔하다. 즉시 소독하고 항바이러스 약을 한 달간 복용한다. 간호과장은 "환자의 가래가 눈에 튀는데, 욕창의 피고름을 매일 걷어낸다"며 "에이즈 환자 대변을 치우고 기저귀를 갈 때도 장갑을 끼고 늘 신경 쓴다. 사명감 없으면 못 한다"고 했다.

사업 초기 보안 문제 때문에 건강이 괜찮은 에이즈 감염인을 간병인으로 썼다. 한 간병인이 환자를 보며 자위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이후 조선족 간병인으로 교체됐지만 "환자가 성폭행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일부 환자는 감시를 피해 야외 주차장에서 성관계를 했다. 사회복지사는 "관리 부실이라는 비판을 받고 성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면 동성애 단체들이 에이즈 환자를 차별한다고 비난했다"고 말했다.

해고된 간병인과 에이즈 단체는 지난 5일 "병원에서 폭언과 구타가 상습적으로 있었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위탁 취소를 요구했다. 오히려 환자 보호자들이 나서 "갈 곳 없는 우리보고 죽으라는 거냐"며 반발했다.

일이 시끄러워지자 정부는 "국공립 병원이 에이즈 환자 위탁 사업을 맡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들을 선뜻 맡을 병원이 없다. 이전에도 경기도의 한 유명 호스피스 단체가 정부 위탁으로 사업을 하다 스스로 포기했다. 원장은 "이런 시설이 없어지면 결국 말기 에이즈 환자들은 거리로 내몰릴 것"이라고 했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의료 수가를 일반 환자보다 높게 책정한다. 일종의 인센티브다. 그 덕에 병원들이 자발적으로 시설을 갖추고 격리 병동을 만들어 에이즈 환자를 입원시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전국 18개 종합병원 감염내과에 상담 간호사를 배치하고 일정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 병원들조차 에이즈 환자 입원을 꺼리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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