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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하십니까" 일상의 질문에 청년세대 움직였다

입력 2013. 12. 15. 20:10 수정 2013. 12. 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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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고려대생 주현우씨 '손글씨 대자보'에 뜨거운 사회적 반향

"안녕 못합니다" 응답 대자보 줄 잇고 "좋아요" 수십만명

"안녕들 하십니까?"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

사회자가 묻자, 300여명이 한목소리로 답했다. 14일 오후 3시께, 눈발이 날리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후문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27)씨가 지난 10일 교정에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손글씨 대자보에 호응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몰렸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철도 민영화와 파업 참가자 직위해제 논란, 경남 밀양의 송전탑 사태,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등 우리 사회가 마주한 현실에 대해 주씨가 던진 질문은 온·오프라인에서 뜨거운 반향을 불러오고 있다.

이날 오후 이화여대 학생회관 휴게실에선 이 학교 학생 최아무개(27·생명과학)씨가 굵은 유성펜을 들고 있었다. 최씨는 '우리는 안녕한가요'란 제목의 대자보에 "시절이 하 수상하다는 표현이 입밖으로 자주 새어나온다. 이런 숨막힘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고 썼다. 이처럼 고려대뿐 아니라 전국 대학에서 '응답 대자보'가 줄을 잇는다. 주씨가 만든 공식 페이스북을 보면, 이날까지 고려대에서 50건, 서울대 22건, 중앙대 5건, 성균관대 3건 등 100건이 넘는 손글씨 대자보가 붙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응원의 메시지는 집계할 수 없을 만큼 많다. 15일 저녁까지 18만명이 넘는 누리꾼이 주씨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찾아 '좋아요'를 눌렀다.

최근 들어 대학가에서 존재감이 사라졌던 대자보 하나가 이처럼 거대한 신드롬으로 확산된 것은 '정치적 구호'와는 다른 '일상적 언어'가 공감을 불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고려대 행사에 참여한 고려대생 전현식(22)씨는 "보통 대자보는 '~합시다'라고 주장하는데, 이 대자보는 우리에게 안녕하냐고 질문을 던진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수학과 서진솔(20)씨도 "대자보를 읽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보통 대자보는 정보를 전달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이 대자보는 감정을 자극했다. 그동안 안녕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말했다. 문화학자 엄기호씨는 "이른바 진보라는 사람들이 생산하는 뉴스나 칼럼, 정치적인 대자보 등은 딱딱하고 학술적인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에 정서를 움직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친구들과 평소에 사용하는, 일상적인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소박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풀이했다.

이날 행사에 모인 인파는 고려대 정경대 후문을 가득 메운 데 이어 건물 계단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빵과 음료수, 우산 등을 한켠에 쌓아뒀다. 마이크를 잡은 주씨에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워낙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에 호응이 뜨거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말은 허락받고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주씨의 말이 공감대를 얻은 데는 '불안한 미래'를 눈앞에 둔 청년세대의 동질감도 작용했다고 학자들은 풀이했다.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나 같은 처지라는 공감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는 "성장주의 세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기성세대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20~30대의 세대론적 박탈감을 표현한 '88만원 세대'라는 자각이 청년들을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로 내몰았다면, 이번에는 사회적으로 누적돼 온 불만이 '안녕하십니까'라는 보편적 언어로 표현되면서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열심히 스펙을 쌓아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라고 가르쳐 왔는데, 그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 언어에 마음 움직여…"안녕 못하다" 공감의 물결

"보통 대자보는 '~하자' 쓰는데주씨는 질문을 던져서 인상적"'누구나 같은 처지' 동질감 느껴미래 불안·민주주의 위기 인식철도파업·밀양 송전탑 갈등 등'우리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여

이날 행사에는 고려대생뿐 아니라 국민대·서강대·연세대·한국외대·한신대 등 각 대학 학생들이 두루 참여했다. 이들은 철도파업과 밀양 송전탑 갈등, 국정원 사태 등의 현안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씨와 함께 행사를 주최한 고려대생 강태경(25·철학과)씨는 "철도노조원들에 대한 직위해제가 이뤄진 뒤 울분과 부당함을 느꼈다. 대자보만으로는 안 된다, 행동으로 보여줄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오늘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신대 김현정(21)씨는 "한번도 집회에 나와본 일이 없지만 대자보 글을 접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민영화를 막겠다며 파업에 나선 철도노조 조합원 수천명을 직위해제한 것은 너무 부당하고 후진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경북 봉화에서 일부러 상경했다는 고교생 김현곤(17)군은 "국정원을 수사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검사 등이 사퇴하고 징계받는 게 이상했다. 세상이 잘못됐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느꼈지만 내가 사는 대구·경북 지역에선 공감하는 사람도 없었다. 대자보를 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일마저 금기로 치부되는 '자유의 억압', 국정원 사태를 통해 극단적으로 드러난 민주주의 제도의 '근본적 위기'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서강대 정다운(24)씨는 "왜 가해자를 벌하지 않고 침묵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지, 왜 우리는 이런 강자들을 매력적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대생 이현민(21)씨는 "이번 대자보들을 보고 사람들이 참 할 말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억눌려온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철 한신대 교수는 "국정원 사태를 비롯해 민주주의 제도를 원초적으로 역전한 일련의 상황들이 대학생들을 발언하게 만들었다. 청년들 스스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친 참석자들은 같은 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밀양 주민 유한숙씨 추모 문화제'에 참석해 "안녕들 하십니까.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구호를 주민들과 함께 외친 뒤 핫팩과 음료수 등을 전달했다. 한 학생은 "밀양의 눈물로 만든 전기를 쓸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었다. 이어 이들은 서울역 광장으로 이동해 '철도 민영화 저지, 노동탄압 중단 범국민대회'에 합류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문구가 담긴 손팻말을 든 300여명의 대학생이 도착하자 2만여명의 노동자 사이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일회적인 현상이라는 평가도 있고, 새로운 대학문화 형성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택광 교수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말은 아직까지는 하나의 이미지에 가깝다. 결국 그 이미지에 어떤 내용을 채울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송호균 김효실 이재욱 김미향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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