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 데이터 무임승차 금지.. 네이버·카톡도 영향받나
구글·네이버·카카오톡과 같이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인터넷망(網)을 소유한 통신업체에 이용료를 지불해야 할까. 지금까지 정답은 '노(No)'였다. 이미 이용자들이 통신업체에 데이터 사용량(Data Traffic)에 따라 돈을 내고 있어, 콘텐츠업체가 이중(二重)으로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이런 정답을 뒤집는 판결이 나와 국내 통신·콘텐츠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인터넷 정책 흐름을 줄곧 따라왔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국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1위 이동통신업체인 버라이존이 국가기관인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를 상대로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해야 한다"며 낸 소송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미 법원은 "인터넷망은 공공재가 아니기 때문에 망중립성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FCC의 인터넷 규제 원칙인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을 법원이 부정한 것이다.
미국 2위 이통사 AT&T도 이달 초 '망중립성'을 무력화시키는 새 요금제를 선보였다. 데이터 사용 요금을 이용자 대신 콘텐츠 제공업체나 앱(App) 개발업체에서 지불하는 새로운 과금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망중립성은 '모든 데이터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KT와 같은 통신망업체가 '우리와 제휴한 업체의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이용자에게 전달하고 제휴하지 않은 업체는 불통돼도 신경 쓰지 않겠다'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카카오톡이다. 카카오톡은 무료 문자를 하루에만 수십억건 전달하며, 무선망을 소유한 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유료 단문 메시지 서비스(SMS)에 큰 피해를 입히며 수천억원대 매출 손실을 끼쳤다. 하지만 '망중립성' 원칙에 따라 이를 제재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미국 법원의 판결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국내 통신업체들은 "미 법원의 결정이 우리나라 정책에도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통신업체의 인터넷망을 이용해 상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득을 보는 기업으로부터 이용료를 받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를 이 부회장은 '호텔론'으로 설명했다. 수조원을 들여 광대역LTE, LTE-A 등 최고의 인터넷망, 즉 5성급 호텔을 건설했더니 갑자기 인터넷 기업이 들어와서 로비에서 장사한다는 것이다. 호텔이 이들에게 따로 가게를 열고 고객 통로는 비워달라고 요청하니, '우리가 좋은 상품을 팔아서 호텔 고객이 많아졌으니 오히려 감사하라'며 반발하는 격이란 주장이다.
콘텐츠업체들은 "인터넷 발전을 막는 이런 판결이 국내에선 나오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아예 망중립성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미 FCC처럼 망중립성을 가이드라인으로 정해놓은 상태다. 망중립성 원칙이 무너지면 국내 인터넷 벤처의 혁신이 멈춘다는 게 콘텐츠업계의 입장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통신업체들이 트래픽을 핑계로 진입을 막거나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카카오의 이석우 대표는 "미 법원의 판결은 FCC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으로 정한 망중립성을 통해 통신업체의 위반을 규제할 수 없다는 의미로 안다"며 "인터넷의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큰 후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도 가이드라인 수준이 아니라 법제화를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윤종록 제2차관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슈이기 때문에 연구하고 있다"며 "망중립성을 올 한 해 중요한 어젠다로 삼고 접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망(網)중립성(Network Neutrality)
인터넷망을 공공재(公共財)로 보고 누구나 차별 없이 쓸 수 있도록 한다는 원칙. 예컨대 KT나 SK텔레콤이 스마트폰에서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특정 앱이나 콘텐츠를 제한할 수 없으며, 해당 업체로부터 망 이용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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