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해법은 고사하고.. 정부가 직접 소송 내기도

류호성기자 2014. 1. 18.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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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잉 손배소송, 국가의 대책은형사 이어 민사 '이중 처벌'"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 노사문화, 선진국에 100년 뒤져"영업손실까지 배상 지나치다" 손배금지 법개정안 국회 낮잠"도덕적 해이" 반대 목소리도

노조에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하는 한국의 노사문화는 선진국에 비해 100년은 뒤처져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역사적으로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통제는 형사적 처벌에서 민사적 처벌로 옮겨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서구 선진국에서는 노조의 존재를 인정하고 손해배상도 제한해 왔다. 한국처럼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21세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대전지법 최누림 판사는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쟁의행위에 대한 통제는 형사면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민사상 대응까지 가중되는 매우 열악한 상황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주요 국가기관들은 손을 놓고 있다. 법원은 대부분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거액의 손해배상을 선고하고 있고,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은 국회에서 진전이 없고, 정부는 해법을 찾기는커녕 스스로 소송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손해배상 양산하는 사법부의 잣대

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판단하는 법원의 잣대는 쟁의행위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고 기업의 손해배상 범위를 인정하는 데는 관대하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90억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약 47억원 등 노조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문에는 똑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근로자의 쟁의행위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첫째 그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하고, 둘째 그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간의 자치적 교섭을 조성하는 데 있어야 하고, 셋째 조합원의 찬성 결정 등 법령이 규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넷째 그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는 등 반사회성을 띤 행위가 아니어야 한다' 노조의 파업이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주체ㆍ목적ㆍ절차ㆍ수단 4개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합법파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사내 하청 노조가 쟁의에 나서면 주체에서 문제가 되고, 구조조정에 반대하면 목적 때문에 정당성을 상실하고, 분쟁이 격렬해져 공장 점거가 발생하면 수단이 불법이 되는 식이다. 법원의 쟁의행위 정당성 판단 중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목적이다. 대법원은 정리해고를 포함한 기업의 구조조정은 경영상 결단에 속하기 때문에, 민영화는 정부의 정책사항으로 근로조건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의 김태욱 변호사는 "대법원이 정당한 파업의 목적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불법파업을 양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측은 노조의 쟁의를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하고 성실히 교섭에 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노조는 더 과격한 수단에 끌리게 되고 수단에 의해서도 불법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오는 이유는 법원이 기업의 영업손실을 손해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불법쟁의행위로 인하여 노동조합이나 근로자가 그 배상책임을 지는 배상액의 범위는 불법쟁의행위와 상당 인과관계에 있는 모든 손해'로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조업중단으로 인한 매출이익 감소와 고정비(세금 공과금 감가상각비 보험료 등) 지출을 손해액으로 산정한다. 쌍용차 손해배상의 경우 법원은 2009년 77일간의 파업시기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의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생산차질 대수를 정하고 여기에 차종별 1대당 공헌이익(매출액-변동비)을 곱해 손해액을 정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인 권두섭 변호사는 "파업을 해서 일을 안 하면 임금을 못 받는다. 그것으로 노조는 근로제공 거부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폭력이나 파괴에 대한 부분은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영업손실까지 배상하라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고 말했다. 조경배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는 "파업이 있으면 집단적인 근로제공의 거절로 인한 손실, 즉 영업손실은 사용자가 감수해야 하는 당연한 몫이 된다. 그것이 파업의 본질적인 요소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영업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노동자의 요구를 거절할지 아니면 들어줄지를 전략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영업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다면 사용자가 양보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밝혔다.

국회서 잠자고 있는 개정 법률안

손해배상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한 대법원의 판례는 동산의료원의 파업에 대한 판결로 1994년에 나온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각급 법원은 이 판례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노조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부과하고 있다. 권두섭 변호사는 "법원이 판례를 바꿔주면 좋지만 사람이 죽어도 요지부동이다. 입법을 통해서라도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3조를 개정할 필요가 있鳴?지적한다. 현행법은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얼핏 노조의 손해배상을 면해주는 내용인 것 같지만 '이 법에 의한'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 조항은 현실에서 종종 무력해진다. 노조법은 쟁의행위를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으로 정의하는 등 촘촘하게 노조 활동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어기면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노조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2012년 7월 노조법 3조를 '사용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및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다만, 폭력이나 파괴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안은 여전히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심상정 의원실의 김가람 보좌관은 "영업손실 등 단순한 노무제공 거부로 인한 손해배상을 제한하고 폭력 등으로 직접 피해가 발생한 부분만 책임을 묻자는 취지다. 손해배상의 사회적 폐해가 크기 때문에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여당이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법개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사상 책임을 없애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당장 현안 하나를 해결할 순 있겠지만 그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손해배상을 금지하는 것은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 정권 시절인 1982년 '노동분쟁에 기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어떠한 소송도 제기할 수 없다'는 법이 통과됐지만 위헌 결정을 받았다.

손해배상 주체로 나서는 정부

정부가 손해배상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적도 있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씨의 분신 직후인 그 해 3월 정부는 노동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불법파업이라도 비폭력일 때는 손해배상 가압류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12월에는 노동부장관, 노사정위원장, 한국경영자총연합회 회장, 한국노총 위원장 명의로 손해배상 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문도 나왔다. 하지만 이 합의는 결국 말 잔치로 끝났고 이후 정부는 손해배상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관계자는 "2003년 노사정의 합의는 권고이지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로서는 손해배상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민사 소송은 당사자들끼리 하는 것이니까 국가기관이 관여할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왜 이렇게 불법쟁의와 손해배상이 반복되는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 급한 것은 노조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불법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손해배상의 상당 부분은 정부와 정치인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정부가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체로 나서고 있다. 경찰은 2009년 쌍용차 파업 진압 중 장비가 파손되고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노조를 상대로 14억7,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해 11월 손해액의 90%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0년 강희락 경찰청장은 "민주노총과 쌍용차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는데 민사적 대응이 효과적이라는 점이 입증됐다. 앞으로 불법 집회나 시위 과정에서 경찰에 인적ㆍ물적 손해가 발생하면 예외 없이 손해배상 소송을 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2011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 노조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1억1,400만원을 청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국가가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과거에는 없던 흐름"이라며 "공무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충돌에 대해 형사 처벌을 하면서 여기에 더해 손해까지 배상하라고 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을 벼랑으로 내모는 행위"라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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