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연의 사이아트/1월 20일] 창의성의 본질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2014. 1. 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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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정의하는 것과 문제 제기하는 것은 달라창의성 제고 위해 인문학과 예술 천착해야

시험공부 하지 않고 시험 치러 가는 꿈을 꿔본 적이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이면 십중팔구 그런 악몽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프로이드의 이론에 따르면, 평상시 받는 스트레스가 어린 시절의 잊혀진 기억을 자극해서 꿈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시험공부 꿈보다는 영어강의 꿈이 더 생생하고 농도도 진하다. 그러니까 수업이 막 시작되는데 강의를 전혀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 3D 영화처럼 리얼하게 펼쳐진다. 그것도 미국학생들 앞에서 영어로 강의해야 하는 시나리오다.

생전 처음으로 강의하게 된 곳은 미국 하버드대학이었다. 일개 강사로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영재들이 모여 있다는 하버드에서 강의하는 것은 매번 도살장에 끌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영어강의보다 더 스트레스받는 시간이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얼마 전에 미국 공학상을 받으신 내 옆 방 노 교수님은 정오만 되면 어김없이 내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함께 식사하러 가잖다. 도살장 같은 교수식당에 가면 십중팔구 나도 알지 못하는 교수들과 합석을 해야 할 것이고 필경 당신들의 분야에선 최고의 석학으로 알려진 분들일 것이다. 언젠가는 노벨 의학상 받은 분과 합석을 했는데 내가 주문한 샌드위치와 똑같은 샌드위치를 드시는 걸 보고 야릇한 동료의식을 느끼면서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었던 적도 있다. 아무튼, 미리 계획하지 않아서 사전 준비되지 못한 상황은 나로선 매우 불편하다. 무슨 대화가 테이블 위에 오를지 몰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강의야 미리 준비하면 되지만 점심 대화는 사전에 연습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대화의 소재는 다양하고 게다가 예측 불가능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특정한 수학문제가 나오면 그들이나 나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입시로 단련되지 않았는가? 외국에선 대학원에서도 나오지 않을 정도의 난해한 수학문제를 우리는 이미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풀어 본 경험이 있다. 그러니까 문제풀이에서는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 그들과 나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문제를 만들어 내는 능력, 즉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었다. 평상시 내가 간과하고 있던 미스터리 한 자연 현상들, 너무 어려워서 기술적으로 접근 불가능할 것 같았던 문제들, 그리고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회의 부조리, 비효율, 고비용 이슈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고 가끔 기막힌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자. 문제를 정의하는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복지를 더 늘여야 한다', '성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 등의 주장은 문제 제기이지 문제 정의가 아니다. 문제를 정의하려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지, 예상되는 부작용은 무엇인지,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은 무엇인지,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를 짚어 내야 한다. 또한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는 딜레마에 관한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딜레마를 해결하는 능력이 창의성의 핵심이라 보고 있다. 이런 능력을 타고 난 사람도 있긴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창의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 열쇠는 인문학과 예술이 쥐고 있다. 다시 하버드대의 교수식당으로 돌아가 보자. 보스턴 다운타운 교통문제를 논의하는데 그리스 신화, 애덤 스미스, 찰스 다윈, 심지어 영화 러브스토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소재들로부터 러시아워 교통체증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이에 대한 공학적 해결책이 제시된다. 문제정의의 중심에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경험이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매 순간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 산다. 이왕이면 남이 만들어준 문제를 해결하면서 수동적으로 살기보다는 내가 내 문제를, 이왕이면 멋있고 의미 있는 문제를 만들면서 살자.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나 묻지 말고, 오늘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해보자. 인문학과 예술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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