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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망중립성과 언론의 중립성

입력 2014. 01. 20. 18:02 수정 2014. 01. 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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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기자]재판 관련 기사를 쓰는 건 참 어렵다. 판결문 자체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제대로 읽어내는 것조차 힘들다.

가뜩이나 생소한 판결문을, 그것도 영어로 읽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처럼 보통 정도 영어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겐 꽤 성가시고 힘든 작업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판결문은 미괄식으로 구성돼 있다. 정확한 내용을 알기 위해선 최소 50쪽 이상 되는 판결문을 꼼꼼하게 다 읽어봐야 한다.

2012년부터 시작된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을 다루면서 '판결문의 저주'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가능하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판결문을 입수해 읽어보곤 했지만, 시간과 능력 부족으로 중간에 그만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최근 또 다시 그런 경험을 했다. 지난 주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망중립성 무효 선언'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 망중립성 판결을 둘러싼 호들갑 때문이었다.

◆항소법원, '오픈인터넷 규칙' 평가 아니라고 강조

항소법원 판결은 연방통신위원회(FCC) 망중립성 원칙의 근간이 되는 '오픈 인터넷 규칙'을 사문화한 건 아니었다. ▲차단 금지와 ▲차별금지, 그리고 ▲망 투명성 공개 등 오픈인터넷 3대 원칙 중 망투명성 공개 요구 권한은 FCC가 계속 갖는다는 게 판결 골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판결의 밑바탕엔 버라이즌이 공중통신사업자(common carriers)가 아니라 정보서비스 사업자로 분류된 부분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정보서비스사업자에게 공중통신사업자에 준하는 규제를 한 것은 잘못이란게 항소법원의 판결 취지였다.

여기까지 파악하는 덴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 몇몇 전문가들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이번 판결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는 그 이상일 수도 있단 지적들을 했다. 그래서 판결문을 구해 찬찬히 읽어봤다.

예상대로 판결문은 길고도 어려웠다. 분량부터 81쪽이나 됐다. 게다가 생소한 용어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 읽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통신 전문가가 아닌 기자가 읽어내기엔 만만찮은 문건이었다.

우선 눈에 띈 부분은 법원이 이번 판결의 의미를 과잉해석하는 걸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our task as a reviewing court is not to assess the wisdom of the Open Internet Order regulations, but rather to determine whether the Commission has demonstrated that the regulations fall within the scope of its statutory grant of authority."

재판부의 임무는 오픈인터넷 규칙의 지혜를 평가하는 게 아니란 것. FCC가 자신들에게 부과된 권한을 벗어났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게 이번 판결의 초점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가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지난 1996년 제정된 미국 통신법 제706조였다. 통신법 706조는 FCC가 오픈인터넷규칙을 적용하는 근거 규정 역할을 하는 중요한 조문이다.

706는 FCC가 통신서비스에 대해 규제 권한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문에 따르면 FCC는 지역 통신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공익, 편의, 가격 규제 등의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통신법 706조의 '규제 권한' 인정받은 건 FCC의 소득

이런 배경 지식을 이해하면 크게 두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우선 항소심 재판부는 애당초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할 의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 재판의 초점은 FCC가 권한을 넘어선 행동을 했느냐는 부분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다. 버라이즌이 FCC를 제소한 진짜 이유다. 이 부분에 대해선 미국의 애틀랜틱(The Atlantic)이 잘 지적했다.

애틀랜틱은 버라이즌이 이번 소송에서 재판부에 요구한 것은 단순히 FCC의 망중립성 원칙 만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FCC가 인터넷 기반 서비스에 대해 규제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라는 것이 버라이즌의 주장이었다. 이번 재판에서 그 부분에 대한 확고한 판례를 받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버라이즌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FCC는 자칫 무력화될 수도 있었다. 수 년 내에 거의 모든 서비스가 인터넷 기반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버라이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통신법 706조가 FCC에 규제 권한을 준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이었다.

애틀랜틱은 이런 논리를 근거로 항소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망중립성 무력화'라고 비판하는 건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FCC 입장에선 건질 건 다 건졌다는 것이다.

그 동안 FCC는 '망중립성'을 원칙 수준이 아니라 아예 법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그 때마다 법원이 권한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항소법원의 이번 판결로 FCC는 망중립성 법제화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1996년 통신법 706조로도 충분히 권한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좀 더 거대한 맥락에서 접근하려는 노력 필요

자,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보자. FCC와 버라이즌 간의 '망중립성 공방'을 지켜보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나를 포함한) 기자들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이런 관행이 자칫하면 큰 맥락을 잘못 해석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이번 망중립성 공방에서도 맥락을 벗어난 보도가 적지 않았다. 그건 미국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USA투데이 같은 신문은 이번 판결로 넷플릭스가 엄청난 추가 요금을 내게 생겼다는 기사까지 쏟아냈다. 전형적인 옐로우 저널리즘이란 비판을 받아도 할 말 없을 정도였다.

어떤 쟁점 사안이 발생했을 때 언론들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길 좋아한다. 하다 못해 프로야구 팀 간 트레이드 발표가 나도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라는 식의 분석 보도를 내놓는다. 이번 망중립성 판결을 놓고 국내외 언론들이 전체 맥락과 다른 보도를 쏟아낸 것도 이런 관행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기자는 사실을 보도할 뿐 아니라 해석할 권리까지 갖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해석을 할 땐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게 저널리즘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의무라고 믿는다. 이번 건을 계기로 이런 원론에 대한 책임감을 새롭게 다잡아야겠다는 반성을 해 본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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