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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상태 임신 여성의 존엄이 태아의 생명보다 더 중요

주영재 기자 입력 2014. 01. 27. 16:20 수정 2014. 01. 2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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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채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의 뜻을 어기며 연명 치료를 해온 병원이 법원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서 태아의 생명과 뇌사 여성의 존엄이라는 양자택일의 상황이 불러온 '연명 의료' 논란이 일단락됐다.

임신한 채 뇌사 상태에 빠진 말리스 무뇨즈의 남편 에릭 무뇨즈가 지난 3일 아내와 아들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 앞에 서있다.텍사스주 태런트카운티 지방법원은 병원이 환자의 유지를 거부한 채 연명 치료를 해온 것은 잘못이라며 27일 오후 5시까지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했고, 병원 측은 항소를 포기하고 판결에 따라 26일 오전 무뇨즈의 연명 치료를 중단했다. 워싱턴포스트기사캡쳐(http://www.washingtonpost.com/business/family-brain-dead-texas-woman-off-life-support/2014/01/26/ceae8ca6-86f2-11e3-a760-a86415d0944d_story.html)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존 피터 스미스 병원은 26일 법원 판결에 따르겠다고 밝히며 이날 오전 11시 30분 뇌사자 말리스 무뇨즈(33)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했다. 앞서 24일 텍사스주 태런트카운티 지방법원의 R.H. 월리스 주니어 판사는 무뇨즈의 가족이 연명치료장치를 제거해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무뇨즈가 법적 사망 상태여서 '임신한 환자'로 볼 수 없다는 원고측 주장을 받아들여 병원 측에 27일 오후 5시까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응급구조요원으로 일하던 무뇨즈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지 14주째이던 지난해 11월 26일 폐 혈전으로 쓰러진 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이틀 후 뇌사 판정을 받았다. 소방관인 남편 에릭 무뇨즈(26)와 친정 부모 등 가족들은 말리스가 생전 이 같은 상황에 놓일 경우 존엄사를 택하겠다고 말했다면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병원 측은 임신한 환자에 대한 치료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텍사스 주법을 따라야 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무뇨즈 사건은 법적·의학적으로 사망 상태인 임신 여성이 태아를 위해 연명치료를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유족 측은 뇌사 여성이 "고장난 인공부화기처럼 기능하고 있다"며 고인의 인격권 훼손을 지적했다. 에릭 무뇨즈는 23일 제출한 법정 진술서에서 아내의 채취는 "죽음의 냄새"로 바뀌었고 한때 생기가 넘쳤던 눈은 "영혼 없는 상태"가 됐다며, 인공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고인의 뜻에 어긋나게 "신체를 잔인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반면 병원 측은 "주법이 명시한 대로 태아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법의 목적을 실현하지 않으면 임신 환자가 자신의 생명과 태아의 생명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병원은 법원 진술에서 현재 22주째인 태아가 성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기형을 갖고 있으며 뇌와 심장 문제 등으로 태어나도 생존가능성이 없다고 인정했다고 CNN 등이 전했다.

보수적 기독교 단체 회원들은 법원 바깥에서 "신은 생명의 편에 서있다"는 팻말을 들고 병원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법원은 임신 여성의 생명 유지 치료를 거부할 수 없다는 규정은 "뇌사로 인해 법적 사망상태인 여성"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병원 측이 법을 잘못 해석했다고 판단했다.

법원 판결이 관련 법 개정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텍사스주는 최근 태아가 고통을 느끼는 시기라고 판단한 20주를 기준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마련해 무뇨즈의 태아는 이 기준을 넘어섰다.

<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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