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돗자리 전쟁', 주민들이 이겼다

2014. 1. 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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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술 기자]

7.6.5 전쟁을 아시나요? 밀양 할매, 할배들이 지팡이 들고 뛰어든 싸움터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0월 1일부터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싸움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대학가 등 전국 곳곳에 '안녕 대자보'가 나붙는 하 수상한 박근혜 정부 1년, < 오마이뉴스 > 10만인클럽은 시민기자로 현장리포트팀을 구성해 안녕치 못한, 아니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밀양의 생생한 육성과 현장 상황을 기획 보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 편집자말 >

할머니 한 분이 경찰에 포위된 주민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다 지쳐서 경찰의 다리 밑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 김종술

오늘은 돗자리 하나를 들이려는 주민과 이것을 빼앗아 가려는 경찰과의 밀고 당기는 전쟁이 지속되었다. 경찰이 돗자리와 일회용 비옷을 빼앗아 가고 있다.

ⓒ 김종술

돗자리 하나를 들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눈물로 버틴 끝에, 밀양시의 장례 지원, 분향소 설치 등 밀양시와 유족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주민들은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벌인 1박 2일간의 연좌농성을 풀었습니다(관련 기사 : 페트병에 소변... 밀양시장 너무한다).

지난 27일,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와 유족, 주민 40여 명은 시청 인근에서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이전 설치해 달라며 엄용수 밀양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밀양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는 영남루 건너편 체육공원 입구에 있었지만, 그곳 상인연합회가 분향소 철거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었습니다.

1박 2일 동안 경찰과 밀양시와의 줄다리기 끝에 28일, 합의안이 도출되었습니다.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밤새 경찰에 포위된 주민들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경찰의 포위망이 좁아졌다.

ⓒ 김종술

28일 오전 2시. 기자는 전날 기사를 보내고 다시 밀양시청 앞 농성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한기가 들면서 추위가 엄습해 오지만 경찰에 포위된 주민들은 침낭 3~4개로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밖의 상황은 더 열악해서 얇은 이불과 담요 한 장으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불 하나 차지하지 못한 연대자는 아스팔트 바닥에서 눈만 감은 채 식어가는 핫팩만 연신 흔들고 있습니다.

오전 7시 40분. 추위에 뜀뛰기를 하고 있을 무렵 대책위 차량이 아침 식사를 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차량을 세우지 못하게 하면서 한참을 실랑이만 하다가 어렵게 아침을 내렸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전날과는 다르게 잠시 여유로운 시간이 흘러갑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 중단이 곧 희망이다', '전기보다 생명이 더 소중합니다'란 피켓을 누군가 화단에 꽂아 놓았습니다. 그 옆에는 어제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생수병만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오전 10시. 삼문동에 있던 시민분향소를 밀양시청 공무원들이 철거하는 모습을 본 주민의 제보가 들어 왔습니다. 2~3명을 그곳에 보내려고 했던 대책위는 포기한 듯 전화로 물품만 돌려받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때 또다시 현장에서는 주민과 경찰의 언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주민이 "국민은 헌법에 보장된 이동권이 있는데 경찰이 헌법 위에 있습니까?, 왜 사람을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느냐?"고 따졌습니다. 경찰지휘관은 "(포위된 분들은) 나오셔도 됩니다. 감금도 아니고요, 방조하면 난로도 천막도 설치할 수 있으니까 미리 방지하는 겁니다"라고 맞대응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 경찰에 포위된 주민들이 걱정된 할머니는 작은 몸을 경찰들 다리 사이로 밀어 넣어 보지만 제지를 당합니다. 다시 경찰들 사이를 들여다보지만, 꼬부랑 할머니의 체격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급기야 화가 나셨는지 욕설을 하면서 "왜 못 들어가게 하는데, 들어 가서 얼굴 보고 얘기만 하고 나오겠다는데 와 막노"라며 다시 큰소리를 치면서 흙까지 뿌려 보지만 결국 경찰에 떠밀려 나옵니다.

오전 11시 18분. 경찰에 포위된 주민들 사이로 밀양시 공무원이 들어갑니다. 주민들도 몰려들어 "불법 고착에 감금까지 하면서 침구류, 목도리, 박스까지 못 들어오게 하고 주민도 차단하던 경찰이 왜 공무원은 들어가게 하느냐"고 따지면서 또다시 소란이 일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던 한 감독은 카메라를 돌리며 공무원을 찍었습니다. 그러자 공무원이 카메라 마이크를 쥐고 흔듭니다. 공무원을 끌어내기 위해 경찰과 승강이를 벌여 보지만 경찰은 오히려 "(카메라) 그게 시빗거리가 되잖아요"라며 감독만 몰아붙입니다.

경찰 작전명 : '돗자리를 빼앗아라'!

돗자리 하나를 빼앗기 위해 경찰이 주민의 옷을 잡아끌고 있다.

ⓒ 김종술

오후 2시 47분. 포위 당한 주민들 옆에서 농성을 하던 주민이 돗자리 하나를 가져오자 이를 빼앗기 위해 경찰이 몰려들면서 현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주민을 밀치고 끌어내고 하면서 주민이 깔고 앉아 있던 돗자리를 빼앗아 갑니다. 주변에 있던 작은 방석, 일회용 비옷까지 다 주워서 가져갑니다. 다 빼앗긴 주민과 연대자가 억울했는지 서로 껴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습니다.

한 주민은 또다시 작은 돗자리를 가져옵니다. 돗자리 하나가 뭐라고 경찰은 또 달려들어 잡아당기면서 몸싸움을 하더니 "일반 도로에서 돗자리를 깔면 안 됩니다"라며 30여 명의 경찰이 투입되면서 덮치고 밀치고 당기고 하면서 화단 주변이 전쟁터로 변합니다. 경찰은 빼앗은 돗자리를 의기양양하게 가지고 떠납니다.

주민들은 "돗자리 하나가 뭐라고 지난번에는 커피 믹스 훔쳐 갔다고 하더니 이제는 돗자리냐, 그 돗자리로 올 설에 제사 지내고 잘 살아라"며 바닥에 찢어진 손바닥만한 돗자리 조각까지 던져 줍니다. 이번에는 대책위 여성 간사가 다쳤는지 할머니 품에 안겨서 큰 소리로 울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이금자(83) 할머니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돗자리가 흉기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라고 하소연합니다. 이 할머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교도소 범죄자들 다 내보내고 너희가 돗자리 가지고 들어가 살아라, 대가리를 깨버려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점잖아서"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더니 끝내 눈물을 흘립니다. 이후에도 '돗자리 사건'은 2차례나 더 있었습니다.

밀양시장, 분향소 설치-유족·주민 극적인 합의

오후 4시. 농성 현장 인근에 밀양경찰서 정보과장과 유족·주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정보과장이 시장과의 면담을 주선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유족의 요구사항이 경찰에게 전달됐고, 그 자리에서 전화 통화로 시장에게 내용을 알리면서 중재안이 마련됐습니다.

오후 6시 길벗한의사회 소속 한 한의사가 주민들의 건강 체크를 위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막아서는 경찰에게 "30시간째 노숙하는데 쓰러지고 나서야 병원에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냐"고 항의를 하면서 한참 동안 실랑이 끝에 안으로 들어가 주민들의 건강을 살핍니다.

진료를 마친 한의사는 말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혈압도 높고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럽고 이런 증상들이 많아서 상당히 위험한 상태다. 경찰들이 공간을 좀 더 넓혀 줘야 하는데 좁은 공간에 갇히면서 심리적 압박의 강도도 높다. 그리고 보온이 안 돼서 감기 증상이 있다.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경찰들과 실랑이를 하기 싫어서 참고 있어서 불편하고 밤에는 추워지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라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시간 유족이 이계삼 사무국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였지만 현장에서 만난 한 경찰은 "서로 요구사항이 맞지 않아서 합의가 안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협의가 끝난 것으로 보였으나 쉽지 않은가 봅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틀렸구나, 했습니다.

오후 8시 30분. 김준한 신부와 이계삼 사무국장, 유족이 밝은 표정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경찰에게 포위당한 주민들까지 다 나오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김준한 신부는 "어제 오늘 너무 많은 고생을 하셨다. 분향소를 옮기려고 했던 것은 밀양시의 불성실한 대응 때문이었다. 이아무개 어르신이돌아가셨을 때는 이 자리에 밀양시와 원활한 협조 속에서 분향소를 설치했었다"며 "유한숙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경찰이 어르신의 사인을 왜곡하고 이에 밀양시가 동조하면서 우리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50일이 넘게 싸웠어도 답이 없다가 1박 2일 만에 답이 나왔다. 유족·주민들·연대자의 승리이다. 밤을 새워 포위되어 가면서 버티고 싸워준 덕분에 100%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답을 받아 왔다."

이어 이계삼 사무국장이 합의 내용을 밝혔습니다.

"첫째로 장례가 진행될 수 있도록 밀양시가 최대한 협조를 하겠다. 둘째로 분향소 위치를 제3의 장소인 삼문동 체육공원 아래쪽으로 했으면 좋겠다. 컨테이너를 설치해주고 전기를 넣어주며 장례가 끝날 때까지 분향소를 지원하겠다고 상주에게 약속했다."

이 사무국장은 "앞으로 한국전력으로부터 받아낼 사과와 책임 있는 보상,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공사 중단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유족과 대책위, 주민이 장례투쟁을 함께하겠다"며 "내일부터 설 명절에 들어가야 하므로 분향소를 오늘 철수하여 너른마당(대책위 사무실)에 임시로 설치하고 명절이 끝나고 바로 새로운 분향소로 들어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유한숙 어르신의 큰아들 유동환씨는 다음과 같이 심경을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54일째 되는 날이다. 하루하루가 안개 속을 헤매는 형국이었다. 그 힘든 상황 속에 할머니·할아버지·연대자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가 없었다. 이제 조금 가져왔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싸우겠다."

1박 2일 농성에 참여했던 주민들은 시청 앞마당을 청소했습니다. 그리고 삼문동 너른마당으로 분향소를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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