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BBK 의혹 '140억 송금' 베일 벗는다

2014. 2. 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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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건 피해자 옵셔널벤처스, 미국서 소송 승소… 다스 실소유자 둘러싼 의문 밝혀질 듯

목요일 밤, 기자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장용훈 옵셔널벤처스 대표였다.

1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항소법원은 다스가 가져간 김경준 측 스위스 계좌의 돈은 옵셔널벤처스로부터 횡령한 돈이 맞다는 판결을 내렸다.

140억원 송금의 비밀. 그동안 이 사건과 얽힌 3자, 김경준 측과 다스, 그리고 옵셔널벤처스의 복잡한 소송에서 핵심 키워드다. 종전까지의 소송 결과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다스와 김경준의 소송에서 다스는 패했다. 옵셔널벤처스는 김경준과의 소송에서 횡령해 간 돈 371억원의 소유권을 가리라는 판결을 받았다(2011년 1월 4일).

그런데 소송에 이김으로써 돌려줄 필요가 없는 140억원을 김씨 측이 스위스계좌로부터 다스에 넘겨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다. 나중에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인출날짜는 2월 1일이었다. 그 뒤인 2월 중순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이 한국에 들어와 검찰 조사를 받는다. 최종적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은 3월이었다.

지난 2007년 김경준씨 한국 송환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인천공항에서 BBK 실소유자 의혹을 제기하며 후보교체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남호진 기자

원래 스위스계좌는 관할법원에 의해 동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다스가 소를 취하하자 동결이 풀린다. 그 틈을 타 140억원이 송금된 것이다. 소위 '이면거래설'이 불거지게 된 이유다.

의혹의 근거는 많다. 다스가 140억원을 송금받은 2011년 2월은 MB 집권 시기였다. 옵셔널 측의 변호를 맡은 메리 리 변호사는 2012년 출판한 책 < 이명박과 에리카 김을 말한다 > 에서 비밀송금을 전후로 한국대사관 담당 법무관으로부터 다스 소송과 관련한 문의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의문을 던졌다. "국영기업도 아니고 다스라는 민간회사의 소송에 왜 그렇게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을까."(161페이지)

"다스에 140억원을 송금한 이유는 MB의 대통령직이 종결된 후에 밝히겠다." 김경준씨가 2012년 출판한 자전적 책 < bbk 배신 > 에서 밝힌 내용이다.(31페이지) 하지만 김씨의 공언은 아직 이행되지 않았다. 왜 김씨 측은 아직까지 침묵하는 걸까.

김경준-다스 뒷거래 의혹 부른 송금

MB가 퇴임한 뒤 국내 언론을 달구던 '140억 송금 논란'에 대한 관심이 가라앉은 뒤에도 옵셔널 측의 소송은 계속되고 있었다. 소송은 크게 두 갈래였다. 첫째는 연방법원의 몰수청구사건에 묶여 있는 김경준 자산의 국고몰수를 주장하는 미국 연방검찰과의 다툼이다. 둘째는 2011년 12월 다스 및 다른 관련자를 '사기성 이체'와 횡령으로 캘리포니아 주법원에 고소한 건이다.

지난해 5월, 미국 연방법원은 연방검찰이 압류한 김경준과 에리카 김의 자산은 옵셔널의 소유라는 판결을 했다. 몰수된 자산은 미국 정부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옵셔널벤처스의 것이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두 번째가 1월 15일 내려진 판결과 관련된 사안이다.

"간단히 말해 김경준 쪽은 빠지고 앞으로는 옵셔널이 MB·다스에게 진실을 끌어내는 싸움이 된 것이다." 1월 23일 < 주간경향 > 과 통화한 메리 리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이번 승소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저쪽에서는 다스와 김경준 측의 '콘피덴셜 어그리먼트'(confidential agreement), 즉 이면합의가 미국 소송법이 보장하는 소송특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옵셔널의 소송을 기각해 달라는 것이었고, 1심에서는 기각당했다.

1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항소법원이 "스위스의 알렉산드리아 은행 계좌에서 다스로 돈이 이체된 행위는 소송특권에 해당되지 않으며, 이 돈은 한국 옵셔널벤처스로부터 나온 돈"이라고 결정한 판결문. | 메리 리 변호사 제공

옵셔널은 이에 즉시 항소했고, 1년 반의 항소법원 싸움 끝에 결과를 뒤집어 '다스가 스위스 알렉산드리아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이체받은 행위는 소송특권에 해당하지 않고 스위스은행 계좌에 있던 돈은 한국의 옵셔널벤처스 소유라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김경준 측이 밝히지 않더라도 140억 송금과 관련한 이면계약의 실체는 밝혀지게 될까. 시일은 걸리겠지만 그럴 것으로 보인다. 메리 리 변호사는 "지금까지의 재판에서는 증거를 누락시켜도 증거 채증을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번 판결로 송금의 불법성을 입증하기 위해 다스 측의 출두요구를 할 수도 있고,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미언론인 안치용씨는 "140억을 환수하기 위해 다스의 미국공장에 대한 압류조치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소송에 패한 다스 측은 누가 움직이고 있을까. 한 다스 측 관계자는 "지난해 이시형 경영기획실장의 미국 출장이 잦았는데, 미국 현지 공장 설립 이외에 재판 관련 업무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시형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장남이다.

지난해 8월 미국에 설립된 '다스 노스아메리카 잉크'의 이사로 시형씨가 선임된 것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송에 시형씨가 간여했는지 여부는 드러나지 않는다.

다스 경영기획실 관계자는 "시형씨가 기획담당 실장을 맡고 있지만 실제 재판에 관여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다스를 상대로 어떤 재판이 진행되는지 전혀 아는 바 없으며, 경영기획실 내에 미국에서 소송을 담당하는 부서나 개인은 없다"고 덧붙였다.

김재수 전 LA총영사 청문회 때 등장

메리 리 변호사에 따르면 이번 판결에 앞서 지난해 12월 17일 열린 청문회에서는 MB정권 시절 LA 총영사를 역임한 김재수 변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리 리 변호사는 "판결문을 보면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그레고리 리 변호사가 다스 측을 대리하고 있는데, 법률사무소의 한국 쪽 파트너가 바로 김재수 변호사"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해외대책팀장으로 BBK 의혹사건을 전담했었다. 영주권자인 김 변호사가 이례적으로 총영사에 임명된 뒤로는 "BBK 의혹 방어의 공으로 영사가 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동포사회에 돌았었다.

사실 BBK-다스 실소유자 의혹과 관련해 가장 많은 정보를 수집해놓은 그룹은 역설적으로 친박 쪽이다. 지난 1월 20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지난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군포에 출마한 유영하 변호사는 2007년 미국 교도소에 수감된 김경준씨를 만나 여러 차례 의견을 청취했다.

MB정권 시기에도 여러 의혹이 '친박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다스의 싱가포르 본사 이전설'을 꺼낸 것도 이혜훈 위원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들 친박인사는 김경준-BBK 건과 관련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김경준씨 관계자는 'MB의 임기가 끝났는데도 김경준씨를 송환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풀이했다. "우리가 전해 듣기로는 MB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친이 측에서 박근혜에 대한 핵심정보를 많이 확보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약 박 대통령이 김씨 송환 등을 매개로 MB 측을 건드리면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확보한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비공식적으로 통보했다고 들었다."

이번 판결 결과에 대해 김씨 측의 공식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김씨는 박근혜 정부 임기 말인 2017년까지 감옥에서 복역해야 한다.

하지만 '140억 송금 이면계약'의 내용이 항간의 추측대로 '잔여 형량 집행의 순서를 바꿔 김씨 미국 송환'이나 'MB 임기말 잔여형량 면제'였다면 이미 그 약속은 MB 측이 지키지 않은 것이 된다. 김경준의 미국 송환 요청 등이 모두 거절되었기 때문이다.

김씨 입장에서는 이미 다스에 넘어간 돈에 대해 다스 편을 들어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 주간경향 > 이 접촉한 김경준씨 관계자도 "(기자와) 같은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김씨는 지난해 5월부터 편지 검열, 접견권 침해 등을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벌이고 있다. 김씨 재판의 다음 심리는 2월 12일 열린다. 김씨의 공식 입장 표명은 그 전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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