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르노삼성자동차에 성희롱을 묻습니다

이대욱 기자 입력 2014. 2. 6. 09:42 수정 2014. 2. 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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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현장21은 4일 '갑의 희롱, 을의 비명' 편을 통해 르노삼성자동차 내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과 성희롱 피해자를 돕는 동료 직원에게까지 징계를 내린 회사의 행태를 고발했습니다. -

르노삼성자동차를 다니는 30대 중반의 김미정(가명) 과장은 지난 2012년 봄 새로 발령 온 팀장에게서 1년 동안 성희롱을 당했습니다. 팀장은 대학생 딸을 두고 있는 유부남 팀장이라고 했습니다. 팀장은 혼자 사는 그녀의 집에 '놀러가겠다', '오일 마사지를 해 주겠다', '보고 있어도 그립다', '중국에 같이 놀러 가자', '사랑한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개인적인 만남을 계속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받은 심리적 고통은 친구들에게 보낸 문자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정말 다 아는데.. 하루하루가 죽고 싶어..)

(팀장이 계속 찝쩍거리는 건 정말 하루에도 일하다 오바이트가 나올 것 같아)

(아침에 버스타고 오는데 이대로 사고 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그녀는 취재진에게 당시 1년 동안의 상황을 '꼼짝없이 쥐덫에 갇힌 느낌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팀원으로 미움 받고 싶지 않았는데 성희롱 당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그 중간에 타협점을 아무리 제가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버티지 못한 김 과장은 회사에 성희롱을 신고했지만 신고 이후 회사에 이상한 소문이 돌면서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먼저 꼬셨다'는 소문이 돌면서 오히려 그녀가 가해자로 몰린 겁니다.

김 과장은 팀장과 인사팀 직원들이 이런 소문을 냈다고 분노했습니다. 실제로 취재진은 인사팀 직원이 이런 소문을 내고 다닌 정황이 담긴 문자 메시지 내용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수치심과 절망감에 김 과장은 자살까지 생각하고 회사 옥상에 오르려 했다고 합니다. 그때 유일하게 그녀의 손을 잡아준 동료가 있었습니다. 정수인(가명) 대리는 김 과장과 통화하는 동안 그녀가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것 같았다고 기억했습니다.

"이건 너무 똑똑하게 기억해요. '내가 회사 옥상에서 떨어져 죽어야 회사가 자기의 억울함을 알아줄까.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제가 기억에는 전화로 하신 것 같아요. 제가 놀라서 달려갔어요."

김 과장은 정수인 대리의 도움을 받아 가며 가해자와 인사팀 직원,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불똥이 정수인 대리에게 튀었습니다. 회사가 정수인 대리에게 정직 1주일의 징계를 내린 겁니다. 징계 이유는 정수인 대리가 지각과 조기 퇴근을 밥 먹듯이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한 징계라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부당 징계 판정 이유를 보면 회사의 치졸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정수인 대리의 부서는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어서 지각, 조기퇴근은 의미가 없으며, 1000명의 직원 가운데 유독 정수인 대리를 상대로 6개월 동안의 근태 시간을 조사해 징계한 건 형평에 어긋난다.'

회사의 압박은 계속됐습니다. 부당 징계라는 판정이 내려진 이틀 뒤 회사는 다시 정수인 대리에게 '직무정지와 대기발령' 조치를 내립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자료가 '사규를 위반해 취득한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직무정지 처분을 받고 짐을 싸서 나서는 정수인 대리를 붙잡아 회사 서류를 훔치려 했다며 절도죄로 형사고소까지 한 겁니다.

회사 측은 성희롱 피해자와 피해자를 돕던 직원에게 끊임없는 징계와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성희롱 가해자인 팀장에게 내린 징계는 정직 2주입니다. 정직 2주의 징계 이유는 '성희롱'뿐만 아니라 '회사 시험용 차량을 몰고 음주운전을 한 것'입니다. 결국 성희롱 자체는 그리 중요한 징계이유가 아니었던 겁니다.

여성발전 기본법 제 3조, 제 4호엔 성희롱이 이렇게 정의돼 있습니다.

"지위나 업무와 관련해 성적 언동 등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르노삼성자동차가 생각하는 성희롱의 개념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 [현장21] 직장 내 성희롱 실태 보고서 영상 보러 가기 이대욱 기자 idwoo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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