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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5,60대가 던져주는 힐링에 넘어가선 안돼"

입력 2014. 02. 25. 06:03 수정 2014. 02. 2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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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극복해야지 힐링, 치료 대상 아냐

[CBS 시사자키 제작진]

- 지금 20대들이 힘들게 사는 시대 만든건 5,60대.

- 오늘날 5,60대 역사상 가장 완고하고 똑똑하고 힘센 집단

- 진실을 힘으로 막는 것이 정치적이라며 프랑스 만화축제에서 일본 부스 철거 명령

- 나는 영원히 싸우는 자유로운 의지이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4년 2월 24일 (월)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현세 (세종대 만화애니매이션학과 교수)

◇ 정관용 > 한국인이 좋아하는 만화가 1위, 또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가 1위,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만화가 분야 선호도 1위. 누구인지 아시겠죠? 바로 이현세 씨를 수식하는 말들입니다. 얼마 전에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위안부 전시회 여는데 공동조직위원장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신 바 있고, 최근에 또 에세이집을 펴내셨어요. 만화가 들어가 있지 않은 책은 처음 내셨다고 하는데요. 한국의 대표 만화가 세종대 만화애니매이션학과의 이현세 교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현세 > 안녕하세요.

◇ 정관용 > 요즘 아주 활발한 활동하고 계신데. 먼저 그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이게 뭡니까? 이게 세계 최대 만화페스티벌, 이렇게 불려지던데.

◆ 이현세 > 네, 그리고 최고입니다. 가장 오래된 건데요. 그러니까 유럽 13개국이 프랑스에서 작가주의 성향의 작가들이 모여서 만화 축제를 하는 건데요. 지금은 전세계 대회가 됐는데, 가장 크죠. 작가주의 대회로는 가장 큽니다. 영향력도 가장 크고요.

◇ 정관용 > 몇 개의 나라 정도에서 어느 정도의 작품이 모이는 겁니까, 이게?

◆ 이현세 > 일단 작가들만 해도 4, 50개국 정도 작가들이 모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이라든지 또 프랑스, 일본, 이런 만화 선진국에서 많은 돈을 지원해 주고 있는 대회죠.

◇ 정관용 > 여기에 한번 우리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뭔가 해 보자. 그래서 공동조직위원장까지 맡으셨는데, 처음에 어떻게 얘기가 시작돼서 이렇게 진척이 된 겁니까?

◆ 이현세 > 이 앙굴렘에는 우리가 매년 참가를 하고 있습니다. 만화영상진흥원 또 문화체육부 이쪽에서 참가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매년 우리가 테마를 정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전세계인들이 너무 모르고 우리 한국, 아시아인들만 알고 떠들고 있으니까 문제가 있다. 이번에는 전세계인들이 다 알 수 있도록 진실을 알리는 기획전을 해 보자. 이렇게 시작했는데, 다행히 이제 여가부에서도 지원을 해 줘서 이번에 기획전을 열게 됐죠.

◇ 정관용 > 그래서 국내 작가 한 20여 편의 만화작품들, 그다음에 애니메이션도 한 4편정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연 인원 몇 만 명 대단히 많은 관람객들을 모았고.

◆ 이현세 > 네. 2만 명 이상이 이번에 관람을 했습니다.

◇ 정관용 > 일본이 또 집요하게 방해하고 이랬다면서요? 그래서 더 화제가 됐다면서요?

◆ 이현세 > 네, 첫날에는 아주 애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첫날 기자회견이 잡혀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조직위에 얘기를 해서 그 기자간담회가 무산됐죠. 그래서 분위기가 아주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조직위에서 일본 사람들이 거기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자기들이 위안부라는 사실은 역사에 없었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다라는 반대 기획전을 옆에서 열려고 부스를 얻었습니다. 그게 이제 조직위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본격적으로 그 다음날 논의를 했는데 진실을 알리는 것은 정치적인 게 아니지만 진실을 어떤 힘으로 막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그래서 일본 정치부스는 철거명령이 내려졌고, 한국은 부스를 그대로 전시를 하게 됐죠. 그러니까 외려 그때부터 관람객들이, 특히 작가들이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인가.

◇ 정관용 > 그러니까 화제가 되니까.

◆ 이현세 >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자기들이 유럽 작가들이 알고 있는 건 나치시대 때의 전범밖에 모르고 있는 거거든요.

◇ 정관용 > 그렇죠.

◆ 이현세 > 그 범죄밖에는. 그런데 그게 아시아에서도 있었다라는 걸 알게 되니까 확 확산이 돼 버렸죠.

◇ 정관용 > 조직위원회가 아주 제대로 판단을 한 거네요.

◆ 이현세 > 그 부분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 또 일본이 지나치게 무리수를 뒀군요. 무슨 반대 기획전을 하겠다고 그랬다고요?

◆ 이현세 > 그게 자기들 기득권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앙굴렘에 매년 대회비 30% 정도를 일본 출판사들이 대주고 있었거든요.

◇ 정관용 > 일본이 만화 선진국이니까.

◆ 이현세 > 네. 거기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죠.

◇ 정관용 > 그 힘을 믿고?

◆ 이현세 > 아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 하다가 결국은 큰코다친 셈이네요.

◆ 이현세 > 네. 그런데 그게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의 가치를 아는 프랑스 작가들의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100% 작가들이 조직위에 다 들어가 있으니까요.

◇ 정관용 > 결과적으로 유럽권에서도 그리고 유럽의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재가 조금씩이라도 알려지게 되는, 그런 첫 계기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이현세 > 작가주의 작가 성향들이 강한 사람들이니까 아마 원래부터 한 몇 분 정도는 작품이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취재를 해서요. 왜냐하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그 범죄는 자행됐던 거니까요.

◇ 정관용 > 그렇죠. 말씀대로 그분들의 눈으로, 그분들의 작품으로 유럽에 더 알려지게 되네요.

◆ 이현세 > 네. 그러면 아마 세계적으로 울림이 더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 아주 큰 일 하셨습니다.

◆ 이현세 > 특히 유럽에 알려졌던 젊은 작가들의 힘이 이번에 컸습니다. 저는 뭐 일러스트 하나 출품인데. 그 작가들은 100쪽씩 이렇게 작품을 해 줬거든요.

◇ 정관용 > 그 젊은 작가들은 유럽에 팬층도 있는 작가들인가요, 이미?

◆ 이현세 > 그렇죠. 매년 한국에서 번역을 해서 유럽에 알려질 수 있을 만한 작가주의 성향의 작품을 저희들이 거기에 알리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작가들은 크든 적든 유럽에 인지도가 있는 작가들 순서대로 그 작품을 의뢰를 했었죠.

◇ 정관용 > 그러니까 더 효과가 있을 것이고.

◆ 이현세 > 아마도요.

◇ 정관용 > 그 작가들은 유럽 작가들하고 친분도 있을 것 아닙니까, 나름대로.

◆ 이현세 >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 그 친분을 통해 취재가 들어올 것이고.

◆ 이현세 > 네. 어쩌면 뭐 협업이 될 수 있겠죠.

◇ 정관용 > 그렇죠? 함께 작품을 만들 수도 있고요. 뭐, 유엔에 가서, 미국의 각 주의 무슨 의회에서 이런 것도 또 필요하지만, 이렇게 문화계에서 이런 노력이 정말 어떻게 보면 파급효과가 훨씬 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이현세 > 그러게요. 요즘 일본의 우경화를 보면 작가들이 그 부분을 많이 나서서 작업을 해야 되지 않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게 아차 잘못하면 옛날에는 반일, 반공 뭐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작가들이 조금 일본하고 연관된 그런 작품들을 좀 회피하는 성향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기회로 우리 한국 작가들도, 특히 젊은 작가들이 한일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 정관용 > 그리고 알릴 건 분명히 알려야 되고 진실은 밝혀야 되고.

◆ 이현세 > 네.

◇ 정관용 > 알겠습니다. 자, 큰일 하셨다, 칭찬 먼저 드리고.

◆ 이현세 > 고맙습니다.

◇ 정관용 > 웬 에세이집이십니까? 그 동안 펴내신 만화책은 모두 몇 권정도 되죠?

◆ 이현세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 정관용 > 셀 수도 없을 정도인가요?

◆ 이현세 > 너무 많아서 그렇다기보다는요. 제가 한번 작업을 한 건 속편을 그리지 않거든요. 또 새로운 소재에 도전을 하다 보니까 제 자신이 앞에 어떤 만화에 대한 목록을 스스로 준비해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세히는 모르겠고요.

◇ 정관용 > 그런데 만화가 한 컷도 들어가 있지 않은 책은 이번에 처음 내셨다고요.

◆ 이현세 > 네, 처음입니다. 그런데 책은 처음인데요. 에세이라기보다는 이런 잡기는 띄엄띄엄 썼었고. 그 다음에 한번 오래전에 일간지 신문에 한 1년 정도 칼럼을 연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썼던 글이 이런 저런 게 많은데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얘기를 다 '고등어와 크레파스' 그리고 '천재와 싸워 이기는 법'이라는 그런 글이 인터넷에 작년부터인가 굉장히 많이 돌아다니더라고요. 그걸 출판사에서 보고 모두가, 사회가 힐링, 힐링 치료받아야 된다고 하는데. '인생은 남을 믿어서는 안 되고 너를 믿고 가라' 그렇게 얘기하는 메시지가 지금 현재 괜찮은 것 같다고 그래서 아마 책을 내게 된 것 같습니다.

◇ 정관용 > 책 제목이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 이렇게 딱 붙이셨어요.

◆ 이현세 > 네.

◇ 정관용 > 그리고 방금 설명이 요즘 막 여기저기에서 막 힐링, 힐링 그러는데, 그거 아니다 이겁니까?

◆ 이현세 > 네.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힐링이란 이미 터지고 난 뒤에 치료를 하는 건데. 치료하기 전에 우리가 자기의 길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어렸을 때는 사실 스트레스라는 말이 없었거든요. 스트레스라는 말이 제 기억에는 나타나기 이전에 모든 고난과 고통 이런 것들은 극복하는 것이었었지. 치료받으러 가야 될 병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게 병이 되어 있으니까.

◇ 정관용 > 스트레스는 병. 이건 치료받으면 돼, 이렇게?

◆ 이현세 > 네. 그래서 너무 나약한 거다. 물론 지금 20대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 사회를 만든 건 저 같은 5, 60대가 만든 거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젊은 사람들한테 저도 학교에서 항상 수업 전에 사과를 합니다. 이런 세상을 만들고 또 물려줘서 미안하다. 그런데 제가 보면 문제는, 제가 같이 호흡하고 있는 이 5, 60대가 우리 역사상 가장 완고하고, 가장 힘도 세고, 가장 강력한 집단이라는 거예요. 많이 배웠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다 경험했고, 자기가 제일 똑똑하다고 하고, 자기가 이 사회를 만드는데 특히 경제나 이런 걸 만드는데 자기들이 힘이었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이 아버지 세대하고 지금 2, 30대가 사회를 두고 경쟁을 해야 되는 거거든요. 이 5, 60대를 싸워서 이겨나가려면.

◇ 정관용 > 극복해라.

◆ 이현세 > 네. 힐링만 갖고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지금 아버지 세대가 역대 가장 강력한 세대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 정관용 > 듣고 보니 그러네요. 저희 젊었을 때 우리 아버님 세대는 사실 배운 것도 부족하고, 또 경제성장도 별로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식들을 어렵게 노력해서 대학 보내고 이러면 이제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우리가 뭘 아니, 이러셨는데.

◆ 이현세 > 지금은 반대입니다. 너희들이 뭐 아냐? 아직 멀었어. 그5, 60대를 가지고 사회, 정치, 경제 이런 부분을 경쟁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5, 60대가...

◇ 정관용 > 젊은이들 더 힘내서 도전해라, 이 말이군요.

◆ 이현세 > 네. 5, 60대가 이렇게 던져주는 힐링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보죠.

◇ 정관용 > 우리 이 교수님께서는 언제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셨어요?

◆ 이현세 > 저는 고등학교 때 대입을 두고 미대를 가려고 했었는데요. 그때 제가 색약이라는 것이 판정되어서 미대가 좌절되고 난 뒤에.

◇ 정관용 > 아, 색약이세요?

◆ 이현세 > 네. 색약이라서 제가 가지고 있는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것이라고는 쓰고 그리는 것밖에 없는데. 흑백으로 도전할 수 있는 만화라는 세계밖에 없더라고요.

◇ 정관용 > 그때는 다 흑백이었죠, 사실.

◆ 이현세 > 네. 그래서 그때 제가 뭐라고 그러죠? 운명 같은 만남이 있다고 그럴까요. 그때 교과서에 나왔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제가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래, 어차피 한 길은 못 가니까 나머지 한 길을 가는데 내 의지대로 가겠다고 생각을 했죠. 어떤 운명에 떠밀리는 게 아니라, 운명이 한 길을 정해 주면 그 길을 적극적으로 내 의지대로 개척하면서 걸어가 보고 싶었죠.

◇ 정관용 > 그 당시에 사회분위기는...

◆ 이현세 > 만화가가 되는 건 범죄자죠.

◇ 정관용 > 만화책을 모아서 불태우던 시대였지 않습니까?

◆ 이현세 > 네, 그리고 학교에서 만화책을 보면 압수당하고, 만화가게에 들어가면 정학처분을 받았을 때니까. 만화를 선택한다는 건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는 거죠.

◇ 정관용 > 그걸 알면서?

◆ 이현세 > 알면서도 쓰고 그리고 싶은 이 본능이 너무 큰 거예요. 그걸 양보를 못하겠는 거예요. 그리고 물론 이제 집이 쭉 아버지 대에서 연좌제가 있어서, 초등학교 1학년 학교 들어가서부터 선생님들 눈치를 봤거든요. 나는 빨갱이 자식이니까 말 잘 듣지 않으면, 행동 잘 하지 않으면 나는 큰일 날지도 몰라. 이렇게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공무원이라든지 이런 것은 전혀 꿈을 꿀 수가 없었죠. 연좌제가 있는 사람은 못 들어가니까. 그러니까 공무원, 이런 것 못하죠. 자연계 전혀 못 들어가죠.

◇ 정관용 > 큰 기업도 못 들어가잖아요.

◆ 이현세 > 당연히 안 되죠. 해외도 못나가고 그랬으니까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아주 좁았습니다. 그러니까 카드게임을 얘기를 하자면 저한테 날아온 카드가 너무나 힘들었던 카드였던 거죠. 이건 뭐 같은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숫자가 같은 것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굉장히 다행이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다가 그땐 아마 제가 뜻을 잘 몰랐을 겁니다. 어쨌든 어디서 주워 담았는지 '나는 자유로운 의지이다'라는 이 글귀를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어느 날 사는 저를 봤죠. 제가 처한 형편이 너무 그렇다 보니까, 뭔가 하나 위로 받고 싶었겠죠.

◇ 정관용 > 중 2때?

◆ 이현세 > 네.

◇ 정관용 > 본인이 쓴 글귀예요?

◆ 이현세 > 제가 써 가지고 붙였죠. 그런데 그 글을 어디서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정관용 > 어쨌든 마음에 쏙 드니까 붙였을 거 아닙니까?

◆ 이현세 > 그렇죠. 그러니까 나를 위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글귀였던 거죠.

◇ 정관용 > 나는 자유로운 의지이다.

◆ 이현세 > 네. 그래서 이번에 에세이집을 내면서 이렇게 찾아보니까 로맹 롤랑이라는 아주 프랑스의 유명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의 소설에 나오는, '장 크리스토프'라는 소설에 나오는 글귀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영원한 평화란 없다. 그 전쟁터에서 피해서 하늘에서 내다보고 쭉 살 수 있는 운명이란 건 없다는 거죠. 나는 영원히 싸우는 자유로운 의지다 라는 글귀가 있더라고요.

◇ 정관용 > 나는 영원히 싸우는 자유로운 의지이다.

◆ 이현세 > 네. 그러니까 그 글귀가 그 어린 나이에 뭔가...

◇ 정관용 > 딱 들어왔어요?

◆ 이현세 > 전체적인 소설을 이해를 잘 못했을 거라고 분명히 생각합니다. 힘든 소설이니까. 그런데 그 글귀만 들어왔겠죠. 그 당시 힘든 자기의 입장에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죠.

◇ 정관용 > 그래서 이 책에 첫 대목에 보면 '책상머리에 붙여놓은 한 문장의 힘'이라는 챕터가 있군요.

◆ 이현세 >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 그게 바로 그 문장이로군요.

◆ 이현세 > 네.

◇ 정관용 > 그 힘으로 자유롭고자 했고, 그 힘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자 했고. 그것이 비록, 물론 선택지가 좀 좁아서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던 길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가겠다라고 결심하고 선택하셨다, 이거죠.

◆ 이현세 > 네.

◇ 정관용 > 특히 남이 가지 않은 길이니까 더 가보겠다, 그런 거죠?

◆ 이현세 > 네.

◇ 정관용 > 그리고 잘 오셨잖아요. 이렇게 오리라고 예상 못하셨죠, 솔직히?

◆ 이현세 > 못했죠. 못했습니다. 그냥 막연한 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어린 나이에도 보면 외국에 디즈니의 위상이나 또 프랑스의 뱅뱅의 작가나 또 일본의 그런 사회주의 작가들의 사회적 위치를 봤을 때 유독 한국만 그랬었거든요. 다른 나라는 엑스맨이나 스파이더맨 작가들이 아주 우상이 되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 정관용 > 이미 그때부터.

◆ 이현세 > 네, 그러니까.

◇ 정관용 >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이건 보셨겠군요.

◆ 이현세 > 네. 그때 가능성을 준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던 친구가 보낸 만화책 한 권이 확신을 줬죠.

◇ 정관용 > 누구의 어떤 책이었습니까?

◆ 이현세 > 일본 작가인데요.

◇ 정관용 > 일본.

◆ 이현세 > 네. 부인이 조총련계 한국인이고 시라토 산페이라는 사회주의 작가입니다. 그 작가가 그린 적목이라는 만화였습니다. '토끼의 눈'이라는 뜻인데요. 빨간 토끼 눈. 망나니 쇼군한테 부인을 잃은 농부가 민자 쪽에 들어갔다가 온 천지를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사이비 토끼교를 만들어서 망나니 쇼군에게 복수를 하는 얘기였는데 민중의 힘을 그린 거죠. 그때 양장도 아주 고급스러운 양장이었고요. 그림도 물론 잘 그렸고 내용이.

◇ 정관용 > 의미가 심장하다.

◆ 이현세 > 네.

◇ 정관용 > 역사가 담겨 있고.

◆ 이현세 > 만화가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아무리 만화가 나쁘다고 해도 나는 이런 예술을...

◇ 정관용 > 이런 정도의 작품을 내가 하겠다?

◆ 이현세 > 하고 싶다, 그렇게 했죠.

◇ 정관용 > 그리고 한 길을 쭉 걸어오신 거고.

◆ 이현세 > 네.

◇ 정관용 > 한번 그리기 시작하면 3일 밤낮 새신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 이현세 > 그건 뭐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젊었을 때 가장 제가 이해를 못 했던 게 우리가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얼굴에서 팔, 다리, 이렇게 그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팔, 다리 그리다 말고 배가 고프다고 밥 먹으러 가고...

◇ 정관용 > 그럴 수 없다, 이거죠.

◆ 이현세 > 네. 화장실 가고 그런 동료들을 가장 이해를 못 했죠. 어떻게 그림을 그리다 말고 배가 고파질까? 그런데 그건 이제 그 사람들이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제가 약간 별났던 거죠. 좀 즐거운 편집광이라고 그럴까요? 일단 몰입에 들어가면 모든 걸 놓쳐버리는 그런...

◇ 정관용 > 바로 그런, 지금 말씀하신 내용이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의 소챕터 제목에 다 나와 있습니다. 제가 보니까.

◆ 이현세 > 네.

◇ 정관용 >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 한다고 믿는 일, 남들이 가지 않더라도 대신에 집요함을 가지고 승부를 걸고 세계의 대가들과 겨루고, 이러면서 자기 길을 가고 도전하고 돌파해라. 그 말씀 아니겠습니까?

◆ 이현세 > 그것밖에 없다고 보죠. 확신이라는 것. 그러니까 사실 저만 해도, 근거 없는 확신이거든요. 그런데 근거 없는 확신이라도 젊은이들은, 특히 20대 때는 나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이제 30대가 되면 저는 선택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죠. 이 길을 과연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포기를 하려면 30대에 포기를 하는 것이 맞다고 보는 거죠.

◇ 정관용 > 알겠습니다. 요즘 좀 나약해지고 있는 젊은이들. 물론 우리 젊었을 때보다 좀 더 경쟁이 치열해 지고 어려운 세상인 건 맞습니다마는, 이들에게 도전 의식, 돌파 의지, 자유의지 같은 걸 심어주시는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라는 에세이집을 펴내신 우리 이현세 교수님과 함께 만났습니다. 시간이 너무 짧네요. 다음에 또 한 번 모실게요.

◆ 이현세 > 고맙습니다.

◇ 정관용 > 고맙습니다.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jcn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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