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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중국에 고려풍 일으킨 한류 원조.. 기황후의 능 복원해야죠"

김기중기자 입력 2014.04.01. 21:05 수정 2014.04.0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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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다식 거행한 행주 기씨 종중TV 드라마가 인기 끌며 경기 연천군 능터에 관심작년 향토 문화재 지정도"고국에 돌아가 묻히고자 이곳서 장사 지낸 기록.. 해마다 제사 올릴 계획

"문헌에 보면 '고국에 돌아가 묻히기를 원해서 연천에 장사를 지냈다'고 나오고 몽골양식 석탑도 발견돼 기황후의 능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근 TV 드라마 '기황후'가 큰 인기를 끌면서 실제 인물인 기황후 능터가 경기 연천군에 있는 것으로 전해져 이곳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천군 연천읍 상리 산 145번지 야산에 중국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순제의 황후가 된 기황후(중국명 완췌후두ㆍ完者忽都)가 묻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황후의 후손들인 행주 기씨 종중은 최근 이 곳에서 차를 올리는 헌다식(獻茶式) 열고 기황후의 넋을 기렸다.

행주 기씨 대종중 기순홍(69) 회장은 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평장(平葬)을 하는 몽골 장례 풍습상 봉분이나 묘지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기황후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공식 문헌으로도 남아있다"고 밝혔다. 조선 영조 때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연천현 동북쪽 15리에 원나라 순제 기황후의 묘와 석인, 석양, 석물 등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또 1899년 간행된 연천현읍지에는 '황후총은 동쪽 20리 재궁동(齋宮洞)에 있는데, 세속에서 전하길 원 순제 기황후가 고국에 돌아가 묻히기를 원해서 이곳에 장사 지냈다'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연천문화원은 이를 근거로 1995년 지표조사를 실시해 주변에서 나뒹구는 석물(石物) 2기를 수습해 문화원 뜰 앞에 옮겨 놓았다. 기황후 능터 주변에는 고려양식의 어글무늬 기와가 많이 발굴된 점도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기황후 능터는 지난해 연천군 향토 문화재로 지정됐다.

기 회장은 "인근에 사는 노인들은 일제 시대 기황후 능터로 지목된 곳에서 트럭으로 3대 분량의 부장품이 도굴됐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수습한 석물 2기는 몽골양식의 석물로 이곳이 기황후 능터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기씨 종중은 이 터를 가끔 찾아 관리하고 있으며 2008년에는 후손인 당시 주한몽골대사가 이곳을 찾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달 21일에는 이곳에서 행주 기씨 종중과 함께 헌다식을 처음으로 거행하기도 했다.

기황후는 고려 고종의 사위인 기온(奇蘊)의 손녀로 황후의 자리에 오른 이후 37년 간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원나라와 고려에 많은 영향을 미친 여걸로 알려져 있다. 고려 충렬왕 이후 80년 간 계속된 공녀제도를 폐지했고, 원나라 내부에서 종종 제기되던 입성론, 즉 '고려를 중국의 한 성으로 편입시키자'던 논의를 종식시키기도 했다. 또 원나라에 차 문화 등 고려풍을 일으킨 당사자로 고려시대 '한류의 원조'라고도 불린다.

기 회장은 "이번 헌다식을 계기로 매년 춘분에 기황후 능터에서 헌다식이나 제사를 지낼 계획"이라며 "연천군과 협의해 기황후 능을 복원하는 것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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