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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올라가세요" 손님 왕대접에 망가지는 우리말

김종원 기자 입력 2014. 04. 04. 20:48 수정 2014. 04. 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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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커피 나오셨습니다. 그 상품은 없으십니다."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많이 듣고 있는 표현들입니다. 이렇게 상인이나 종업원들이 지나친 경어를 써서 우리 말을 망친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합니다.

김종원 기자의 생생리포트에서 알아봤습니다.

<기자>

햄버거를 주문하면서 맛을 물어봤습니다.

[베이컨 네 장이랑, 치즈 두 장 올라가세요.]

베이컨과 치즈가 빵 위에 '올라 가신다'고 높임말을 씁니다.

음료수도 존대의 대상입니다.

[(음료수 뭐 있어요?) 사이다 있으시고요. 콜라 있으시고요.]

화장품 가게에서도,

[바르고 주무시는 '슬리핑 팩'이시고요.]

커피숍에서도,

[스무디 종류 있으시고요. 좀 더 부드러우실 수 있으세요.]

물건에 깍듯이 높임말을 붙입니다.

동사나 형용사에 붙는 '시'는 사람을 높일 때 쓰이는데 손님에 대한 친절이 지나쳐서 물건까지 높이는 겁니다.

유통업계가 우리 문법을 파괴한다는 지적 속에 한 시민단체는 풍자 영상까지 만들었습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中/한글문화연대 제작 : 그 사물 들에게 우리는 존경의 마음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커피가 제 시급보다 더 비싸거든요.]

이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온 지 석 달 만에 조회 수가 5만 건에 이를 정도로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건범/한글문화연대 대표 : '높임말'은 우리말의 하나의 전통이고 하나의 가치 같은 건데, 높임말이 파괴되는 거죠.]

그런데 유통업계 종사자들이 할 말이 있다고 나섰습니다.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손님에게 버릇없다는 항의 몇 번 받아보면 어쩔 수 없이 말투가 변한단 겁니다.

[아르바이트 경험자 : '거스름 돈이요.'하고 드렸더니 (손님이) 자기한테 반말을 하는 거냐며 저한테 갑자기 동전을 던지시더라고요. (맞는 문법을 쓰는데도) 언어에 대해 우리가 못 배운 사람인 양 대하는 게, 저도 대 학을 나온 사람인데 (황당하죠.)]

손님의 항의가 도대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이기에 말투까지 변한다는건지, 심리극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말을 이렇게 건방지게 해? (죄송합니다.) 자네 내가 친구로 보여? (아니요, 전혀 그런 거 아닙니다.)]

상황극이 시작된 지 1분도 안 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아르바이트생은 울음을 터뜨립니다.

[점장 나오라 그래! (저 못하겠어요.)]

업무 중에 입에 붙어버린 국적없는 높임말은 평상시에도 긴장만 되면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가 됐습니다.

[아르바이트 경험자/실험 대상 : (아르바이트하면서 생긴) 습관인 것 같아요, 습관. 갑자기 기가 죽으니까 더 수그리고, 수그린 자세로 행동하더라고요. 말투 자체도 그렇게 (틀린 문법) 나오니까, 주변에서 지적을 받았었죠.]

[김영한/심리극 연구소장 : (고객 때문에) 자기감정을 자꾸 억압하다 보니까 자기 스스로 세운 올바른 가치관에 부정적인(틀린) 감정이 들어온 거 같아요.]

무조건 높이고 보자는 유통업계 어법도 문제지만 손님이 왕이다는 식의 비뚤어진 소비자 행태도 함께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취재 : 김현상·제 일·양두원·김승태, 영상편집 : 위원양, VJ : 유경하)김종원 기자 terryab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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