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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당해 낳은 아이를 국가人材로.. 母性, 르완다 일으키다

정지섭 기자 입력 2014. 04. 05. 03:01 수정 2014. 04. 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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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 르완다 소녀 다이앤 므로사 집의 가장은 어머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는 없었다. 평생 억척스레 일하며 딸을 키우고 공부시킨 어머니는 므로사에게 왜 아버지는 없는지, 아버지는 누구였는지 결코 말한 적이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므로사는 2년 전 "숨기는 게 뭐냐"고 어머니를 다그쳤다. 그제야 어머니는 "넌 20년 전 대학살 때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충격적인 비밀을 털어놨다. 그날 밤 모녀는 밤새 부둥켜안고 울었다. 므로사는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것도 르완다 역사의 한 부분이죠. 우리 엄마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성공할 거예요."

'아프리카 현대사의 참극'으로 꼽히는 르완다 인종 대학살은 1994년 4월 7일에 일어났다. 오는 7일은 정확히 20주기가 된다. 르완다는 벨기에 식민지로 있다가 1962년에 독립했다. 하지만 다수의 후투족과 소수의 투치족의 반목으로 정정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후투족 출신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이 전날(6일) 비행기 피격으로 사망하자 종족 갈등이 폭발했다.

석 달간 이어진 학살극에서 80만명이 숨졌다. 소수파인 투치족 출신 폴 카가메(현 대통령)가 이끄는 르완다 애국전선이 7월 4일 수도 키갈리에 입성하면서 살육은 멈췄다. 하지만 석 달간 계속된 내전이 남긴 상처는 깊었다.

아버지·남동생·아들을 잃은 여성이 속출했고, 남녀 성비는 3대7까지 벌어졌다. 25만 여성이 학살 와중에 성폭행을 당했고, 그중 3만5000명이 임신한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르완다 여성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남겨진 여성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터로 나섰다. 가디언은 "대학살 중 자행된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헌신적인 모성 덕분에 지금은 나라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2000년 과도정부를 거쳐 2003년 집권한 카가메 정권은 폐허 속에서 가정을 지켜낸 여성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우선 국회의원과 공무원의 30%를 의무적으로 여성으로 채우도록 법령을 개정했다.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재산 소유·유상 상속권을 보장했고, 여성 기업인은 남편 자산을 담보로 대출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했다.

르완다를 재건하는 과정에서는 여성 지도자들의 활약이 빛났다. 2012년 당시 48세의 나이로 숨진 여성가족부 장관 알로이시아 이늄바는 35세에 국가통합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전쟁 당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의 국내외 입양, 집 잃은 여성들의 구호 사업에 헌신했다. 이늄바 자신도 종족 간 내전으로 아버지를 잃고 우간다 난민 캠프에서 자랐다.

도미틸라 무칸타간즈와 전 국가사법위원장은 2002년부터 10년간 학살 가해자들을 재판하는 마을 법정 '가차차' 업무를 총괄하며 사회 통합에 기여했다. 여성들은 건설 현장·교통·농업 등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영역에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르완다의 효자 수출 상품인 '마라바(르완다 남부 지역) 커피'는 르완다 여성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인종 학살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이 주축이 돼 황폐화된 땅에 커피 농장을 일궜다"고 전했다. 연간 80t씩 생산되는 이 커피는 영국과 미국에 수출된다.

르완다 여성들의 활약상은 수치가 말해준다. 현재 대법관 14명 중 절반이 여성이다. 지난 9월 총선에서는 여성 의무 비율(24석) 이외에도 26명의 여성 후보가 추가 당선됐다. 전체 하원 의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64%에 이른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르완다 여성들은 국가의 찢어진 조각들을 깁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모양으로 디자인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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