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관세화 유예' 종료 째깍째깍..기로에 선 '식량주권'

2014. 4. 8. 20: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경제 쏙] '발등의 불' 쌀시장 전면 개방

국내 쌀시장 개방 문제가 다시 '발등의 불'로 닥쳤다. 지난 20년 동안은 '쌀 관세화 유예' 조처를 통해 시장 전면개방을 피할 수 있었으나 더는 그러기 힘든 시기가 임박한 것이다. 정부는 6월 말까지 쌀 관세화(수입 전면개방) 여부를 결정해 9월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해야 한다. 농민단체는 관세화되면 농업의 근간이 무너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양재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센터 앞. 점심 시간이 지나자 '쌀시장 전면개방 저지!', '식량주권 사수!'라고 쓰인 손팻말을 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50여명은 전국농민회총연합회(의장 김영호·이하 전농) 주최로 '2014 쌀시장 전면개방 저지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대정부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지난 정부는 협상을 하는 척이라도 했는데, 현 정부는 (세계무역기구와 쌀 관련) 협상도 하지 않고 포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 참석자들은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관세화 외엔 방법이 없다며 사실상 관세화 여론을 조성하고 있으며, 3월31일 산업통상부도 관세화 이행의 필요성을 밝혔다. 쌀 관세화가 진행돼 전면 개방된다는 것은 농업의 근간과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전농의 투쟁선언문 발표는 그렇게 끝났고, 참석자들은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주최로 열린 '쌀 관세화 유예 종료 대응방안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준원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6월 말까지 정부 방침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 1994년 UR 타결 이후 과정

쌀시장 개방 문제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된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시작된 이 협상이 타결되면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체제가 사라지고 세계무역기구(WTO)가 1995년 1월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각국 사이의 무역 과정에서 모든 농산물을 '예외없는 관세화'(tariffication without exception) 방식으로 개방하도록 결정했다. 이전에는 세계무역에서 수입 제한이나 수입 허가 등 비관세 장벽들이 많았다. 관세화란 이런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국내외 가격차만큼 설정된 관세를 납부하면 누구나 정부의 허가 없이 농산물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개발도상국으로서 쌀에 관해선 예외를 인정받았다. 즉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동안 쌀 관세화 유예가 가능하도록 '특별대우'(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 부속서 5)를 받은 것이다. 쌀은 개도국에서는 식량안보 등 측면에서 중요한 품목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신 10년 동안 국내 소비량의 1→4%까지 일정 물량을 의무수입해야 했다. 의무수입 물량(MMA:Minimum Market Access)은 1995년 5만1000t에서 2004년 20만5000t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은 2004년 세계무역기구와의 재협상을 통해 다시 10년 동안 쌀 관세화 유예 조치를 받았다. 그 대가로 의무수입물량은 2014년 40만9000t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는 2013년 기준 국내 전체 쌀 소비량의 9%에 해당한다. 한국과 함께 일본, 필리핀도 쌀 관세화 유예를 인정받았다. 일본은 그 뒤 1999년 관세화로 전환했다. 필리핀은 한국과 함께 10년간 유예 뒤 재협상으로 7년간 더 유예를 받았다가 2012년 6월 말 종료에 이른 뒤 2017년까지 5년 더 유예를 받겠다며 세계무역기구와 협의를 진행중이다.

농산물 '예외없는 관세화' 결정한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10년씩 두차례 유예 기간 끝나가정부 "6월말까지 방침 결정"'관세화'냐 '일시적 의무면제'냐이해득실 저울질 뒤 선택"식량 자급률 하락 위기인데농업 근간 포기하겠다는 것"농민들 '쌀 전면개방' 거센 반발

■ 기로에 선 정부

전농의 '현상유지' 요구에 정부는 난감해 하고 있다. 박수진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쌀을 관세화하지 않으면서 의무수입물량도 늘리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가능하다면 최선이나, 대다수 전문가는 법률적·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세계무역기구 회원국 중 주요 쌀 수출국들도 불가능하다는 의견이다. 한국과 함께 쌀 관세화 유예 조치를 받은 필리핀도 현상 유지가 불가능해 의무수입량을 늘리며 관세화 유예 연장을 시도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외국 쌀에 관세를 붙여 수입한 가격이 국산 쌀 가격보다 높으면 국내 시장에서 국산 쌀의 경쟁력은 유지될 것"이라는 점도 덧붙이고 있다.

정부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즉 쌀 관세화 유예를 지속하기 위해 필리핀처럼 '일시적 의무면제'(Waiver)를 얻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웨이버란 '예외적 상황'에서 일정기간 동안 세계무역기구 협정상 의무를 면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무역기구 회원국 4분의 3의 동의가 필요한데, 실제로는 컨센서스로 결정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박수진 과장은 "관세화와 웨이버 중 이해 득실 분석을 통해 최종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2년 6월 말 쌀 관세화 유예가 종료된 필리핀의 경우, 그해 3월 세계무역기구에 웨이버 요청 뒤 협의를 벌이는 중인데, 의무수입물량 2.3배 확대(35만t→80만5000t), 5년 뒤 관세화 등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웨이버는 의무수입물량 만큼만 쌀을 수입하는 장점을 띠고 있지만, 이를 얻기 위해선 의무수입물량 자체를 늘려야 하는 등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또 일시적 의무 면제이므로 기간이 끝나면 관세화를 해야 한다.

■ 강경한 농민단체

전농은 쌀 관세화를 통한 수입 전면개방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가적 식량관리가 민영화되는 것'으로, 곡물 메이저 등 자본의 통제를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밀과 옥수수에 이어 쌀까지 곡물메이저가 한국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농은 "2015년까지 30%로 식량자급률을 올리겠다는 정부의 계획과 달리 23%까지 연속 하락하고 있으며, 쌀 자급률이 80%까지 내려간 상황"이라며 쌀 시장 전면개방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한국은 세계 곡물 메이저의 사냥터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형대 전농 정책위원장은 "올해 쌀시장 전면개방이 결정된다면 농가들은 정부가 쌀을 포기했다고 판단하게 되고, 그것은 급격한 작목 전환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 쌀 관세화를 통한 전면개방은 앞으로 벼 재배 면적의 급감을 불러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쌀이 부족하고 자급의 심각한 위기가 닥쳤는데 쌀을 전면 개방해야 하냐"며 "우리의 식량주권 차원에서 쌀의 추가 개방을 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다른 나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전농은 "식량주권은 세계무역기구에 우선하는 권리"라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상대국과 쌀 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 전문가 견해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쌀 관세화 유예 연장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그는 "10년간 쌀 관세화 유예를 받고 다시 10년간 유예를 받았다"며 현상유지 요구는 국제사회에서 수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다. 최 교수는 "세계무역기구의 근본적 구조는 예외없이 시장개방(모든 것 관세화)을 하고 국내 문제는 보조금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춘권 농업경제연구소 유통연구실장은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면 최선이지만, 이게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상 가능한 것인지 궁금하다. 불가피하게 관세화로 가면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리스크에 대한 사전 대비책 만들어놔야 하는 것 아닌가. 쌀농가 부담 덜어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글·사진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칠곡 계모' 의붓딸들 학대할 때 친딸은…정몽준 "박근혜 대통령과 노래방도 몇 번 갔다…"[단독] 재벌총수 비자금 차명계좌 동원 임직원 수백명 범법자 된다안철수 '영수 회동' 거부당한 뒤 21시간 무슨 일이…[화보] 한국 현대사를 담은 '시대의 기억'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