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터에 호텔 짓는 몰상식한 나라 어디 있나"

노재웅 기자 2014. 4. 1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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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정부가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가라오케나 단란주점 등 청소년 유해시설만 없다면 학교 주변에도 고급 관광호텔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법 개정에 따라 대한항공의 염원인 종로구 송현동 일대 호텔 건립 사업의 현실화 가능성이 부쩍 높아졌다.

이 호텔 부지는 풍문여고, 덕성여중·고와 인접해 학교 반경 200m 이내에는 관광호텔을 신·증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게다가 경복궁 바로 인근에 자리한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는 "국가가 이 땅을 공공적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학교 옆 관광호텔' 혹은 '경복궁 옆 7성급 호텔'로 불리는 이곳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을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기업 사익 위해 법 바꾸는 일 없어야

- '학교 옆 호텔'과 관련한 정부의 규제 완화 결정에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들과 서울시·종로구청이 나서서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반대 이유는 그 땅이 단순히 학교와 가깝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공간이 갖고 있는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생각했을 때, 한 기업을 위해 법을 고쳐서라도 호텔을 짓는 것은 앞으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기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다.

- 문화적·역사적 가치라 함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

▶ 대한항공이 호텔 건립을 추진 중인 자리는 송현동 49-1 일대(면적 3만6642㎡)로 옛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숙소 부지다. 이완용과 함께 대표적 친일파로 손꼽히는 윤덕영의 형이자 순종황제의 장인인 윤택영이라는 사람이 소유하다 식산은행으로 넘어가 일본식 적산가옥이 됐고,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들어와 점령해 미국대사관 직원숙소가 됐다. 즉, 역사적으로 뼈아픈 기억이 자리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무엇보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데 어느 몰상식한 나라가 왕궁 터에 호텔을 짓는 행동을 하는지 반대로 묻고 싶다.

- 대한항공이 호텔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 이전에 삼성이 소유하던 땅이다. 대한항공이 이 땅을 삼성으로부터 구입해서 호텔을 짓는다는 얘기는 이미 2008~2009년부터 나온 얘기다. 하지만 학습권이라든지 여러 가지 반발요소에 부딪쳤고, 중부교육지원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지만 대법원까지 가서도 패소했다.

- 대한항공 측은 단순한 호텔이 아닌 문화복합시설로 짓기 때문에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해치거나 역사적 거리에 유해환경을 조성할 여지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 고급 영빈관과 공연장, 갤러리 등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겉치레를 한들 결국 호텔은 호텔이다. 심지어 그들의 계획에 따르면 7성급 호텔로 지어진다. 그 정도 급의 호텔에는 주점은 물론 도박시설도 들어서는 게 보통이지 않은가. 차라리 등급별 호텔 규정이 정확히 못 박아져있다면 믿을 요지라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본다.

대한항공의 7성급 호텔 건립 예정 부지인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일대 전경.

◆ 어느 나라 왕궁 앞에 호텔이 있나

- 주변 경관에 맞춰 한옥 콘셉트로 개발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일각에선 유서 깊은 공간에 잘 매칭된 고급호텔이 들어서는 것도 관광적인 측면에선 긍정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 관광산업의 일환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는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들이 지금까지 각종 문화재나 역사적 장소를 관광적인 측면으로 이용하면서 얻은 수익을 반대로 문화재 복원을 위해 기부한 적이 있었나. 아니면, 호텔이 들어서는 게 정말로 지역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할 것인가. 말이 대한민국 관광을 위한 일이지, 결국은 기업의 이익증대를 위한 핑계이지 않은가.

- 개인의 재산권을 과하게 억제하는 건 아닐지.

▶ 경복궁과 가깝고 한옥마을인 북촌 초입인 데다 여중·고 4곳이 몰려있는 곳이다. 개인의 영리를 목적으로 사용하기보다 공공성이 확보된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종로구의 기본 방침이기도 하다.

- 대안도 필요할 듯싶다. 대한항공에게만 무조건 양보하라는 입장은 무리로 보인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개인의 재산권보다 위에 있는 것이 국가의 법이며 정책이다. 지금 그 규제를 완화해 허용해주겠다는 것인데 물론 대안이 없진 않다. 사실 경복궁 같은 경우 궁궐의 경관 때문에 5층 이하로 높이 제한을 한다. 기업의 이익 증대를 위해서도 7성급 호텔을 짓기에는 안 좋은 조건이 아닐까. 지금 종로구청 자리가 그쪽으로 가서 대한항공하고 대토를 한다면 공공시설인 종로구청이 1,2층으로 들어오고 나머지는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한다면 오히려 더 좋은 대안일 수 있다고 본다.

- 지난 2002년에도 덕수궁 터인 옛 경기여고 부지 내 미국 대사관 건립 계획에 맞서 4년6개월여 만에 해당 계획을 백지화시킨 걸로 안다. 이번에도 끝까지 투쟁할 생각인가.

▶ 우리 문화유산인 덕수궁 터를 파괴하고 미국 대사관을 짓겠다는 한·미 정부에 끝까지 맞서 결국 지켜낸 바 있다. 이번에도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의 잘못된 계획을 바로잡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본 기사는 < 머니위크 > (

www.moneyweek.co.kr

) 제32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학교 옆 관광호텔' 주민·지자체 반대로 불투명 말 많은 '여학교 옆 호텔' 바닥 다진 정부 가라오케만 없으면 여학교·경복궁 옆 호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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