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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침몰> 27명 구조한 낚싯배선장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

입력 2014. 04. 17. 13:42 수정 2014. 04. 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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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여느 날처럼 평온한 아침이었다. 낚싯배 명인스타호(9.77t) 선장 박영섭(56)씨는 16일 새벽 조업을 마치고 귀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따뜻한 아침밥 생각이 간절하던 때 날카로운 무전 신호가 박 선장의 귀에 날아들었다. 수협 목포어업통신국이 오전 9시3분 송신한 긴급 구조 요청 신호였다.

병풍도 북쪽 1.5마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박 선장은 바로 뱃머리를 병풍도 쪽으로 돌렸다.

오전 10시30분께 사고 현장에 도착한 박 선장은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국내 최대 여객선 세월호는 이미 심하게 기울어 침몰하기 직전이었다.

잠시 망연자실했던 박 선장은 곧 마음을 고쳐먹고 해경과 함께 구조작업에 참여했다.

박 선장은 명인스타호를 세월호 바로 옆으로 몰아 바다로 뛰어내린 승객 27명을 배에 태웠다. 구조된 승객들은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분들 심정은 제가 잘 압니다. 배가 침몰하면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뱃사람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섬에서 태어나 평생 바닷일을 하며 살아온 박 선장은 수차례 어선 침몰 사고를 겪었다.

"저도 침몰사고 피해잡니다. 제가 젊을 때는 지금처럼 좋은 배가 없었어요. 나무배를 타고 바닷일을 하다 보니 침몰도 몇 번 겪었습니다.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지만 그때는 '정말 죽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명인스타호에 구조된 승객은 다양했다. 연세 지긋한 관광객도 있었고 남녀 고교생도 있었다. 이들 중 누구도 말문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추위와 공포에 지쳐 울음을 터뜨릴 힘조차 잃어버린 듯했다.

"도저히 말을 걸 수 없었습니다. 모두 넋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이었고 몸을 가눌 힘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분들을 최대한 빨리 항구로 옮기는 것뿐이었습니다"

박 선장은 27명의 조난객을 태운 채 전속력으로 내달려 1시간여 만에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뭍에 발을 디디고서야 세월호 승객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박 선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7일 오전 통화한 박 선장은 이날도 세월호가 침몰한 현장에 나가 있었다. "실종자가 발견되면 손을 보탤 일이 있을까 해서…"라고 했다.

"아직 200명도 넘는 사람이 갇혀 있다고 합니다. 생존자가 있으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박 선장의 명인스타호 외에도 사고 당일 구조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달려온 어선은 20여척에 이른다.

이들은 해경과 함께 바다로 뛰어든 승객 50여명을 구조했다. 생계를 중단하고 달려온 어선들 덕에 그나마 인명피해가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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